완전한 상속의 꿈

October 25, 2019

오늘은 쿤데라의 마지막 에세이 <만남>을 다룹니다. <만남>에서 쿤데라는 베이컨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군요. 화가 베이컨과 그의 작품에 대해서라면 이미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들뢰즈는 아예 자신의 저술 한 권을 통째로 베이컨의 작품을 해명하는 작업에 쏟기도 했고요. (물론 들뢰즈가 이 작업을 통해 베이컨과 그의 작품을 해명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베이컨의 작품에 기대어 자기자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구분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쿤데라가 베이컨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일반적으로 베이컨의 작품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살펴본 것처럼 쿤데라는 에세이라는 형식을 통해 소설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소설가로서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중간중간 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고스란히 쿤데라 자신과 그의 작품에도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에 따르면 소설가는 공평한 보존자가 아닌 편애하는 수집가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학사를 정리하는 이론 작업에서라면 기본적으로 작업자의 기호나 개인적인 호불호가 분류에 가급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지만 (그래야 문학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빠짐없이’ 온전하게 분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수집가라면 사정이 다를 겁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목록에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더 오래 머물고 싶고 더 오래 자신의 곁에 두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길게 늘릴 수도 있고요. 자신이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을 더 당겨 놓거나 이를 위해 다른 것들의 배치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쿤데라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 앞에 놓인 작품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요. 세르반테스의 이름은 맨 첫 장의 제목에 놓입니다. 카프카나 톨스토이 소설들은 장면들은 곳곳에서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라블레나 볼테르의 이름 또한 잊을 만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플로베르나 프루스트, 조이스와 울프의 이름도 물론 이 목록에 있습니다. 앞선 이름들에 비해 조금 생소할 수도 있지만 무질과 블로흐는 쿤데라가 대단히 아끼는 이름들입니다. 소설가라고 꼭 소설만 좋아하라는 법은 또 없습니다. <불멸>에서 직접 소환했던 베토벤이나 그가 각별히 좋아하는 스트라빈스키나 야나체크의 이름도 종종 불려 나옵니다. 자신이 소설을 구성하는 방법과 음악적 구성 사이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일화들을 인용하고 악보까지 그려가며 신나게 설명을 늘어 놓았었지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편애가 가능한 까닭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입니다. 퍽 편리한 핑계군요. 그런데 가만 보면 이제껏 이 목록 오르내리는 이름들은 죄다 문학과 음악의 이름이었습니다. 세상에 문학과 음악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닐 뿐더러 소설이 참조할 수 있는 어떤 힌트나 모티프를 가진 인간 활동 또한 문학과 음악에 국한되지 않을 텐데요. 

 

자 이 대목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입니다. 어느 날 쿤데라는 아르솅보로부터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에세이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습니다. 쿤데라에게 글을 부탁하며 아르솅보는 베이컨 또한 그것을 원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1977년 쿤데라는 베이컨에 대한 짧은 글을 써서 발표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르솅보에 따르면 베이컨은 쿤데라의 에세이를 다른 사람의 글에서 자신을 발견한 굉장히 드문 사례로 여겼다고 하는군요.

 

쿤데라는 베이컨의 작품에 대한 최고의 논평은 바로 베이컨 자신이 직접 진행했던 두 차례의 대담이라고 말합니다. 베이컨은 1976년 실베스터와, 1992년 아르솅보와 대담을 했고 두 대담의 기록은 모두 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쿤데라의 <만남>은 2009년 3월 파리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만남>의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이 일화를 쿤데라가 써내려간 시기는 아마 그것보다도 또 한참 전이겠지요. 여기에서 쿤데라가 언급하는 두 차례의 대담 외에, 프랑스의 에세이스트 프랑크 모베르가 약 10년 동안 베이컨을 만나면서 대화를 나눈 기록이 2009년 6월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니까 베이컨의 대담은 모두 세 편으로 늘어났군요. 모베르는 1982년 처음 베이컨을 만난 뒤 10년 가까이 그를 만나며 대화를 나눴는데, 국내에는 실베스터의 대담과 모베르의 대담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모베르가 출판한 이 기록의 원제는 ‘Avec Bacon’, 단순히 직역하면 ‘베이컨과 함께' 정도가 될 텐데, 한국에서는 <인간의 피 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는 제목과 험상궂은 표정의 일러스트를 표지에 얹은 모습으로 독자와 만나게 되었군요.

 

어쨌거나 쿤데라가 베이컨에게서 주목하는 요소는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쿤데라의 소설 안에서도 똑같이 발견할 수 있는 주제이고, 다른 하나는 쿤데라가 소설이라는 장르와 형식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바탕을 두고 있는 문제의식입니다. 첫 번째 요소는 바로 자아의 한계라는 주제입니다. 쿤데라의 지적에 따르면 베이컨의 초상화는 무엇보다 자아의 한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한 개인은 어느 정도까지 왜곡될 때까지 여전히 그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요? 얼마나, 어디까지 왜곡될 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로 남아 있을까요? 자아가 더 이상 자아이기를 멈추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이 주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롯해 <정체성>, <불멸>, <농담>, <우스운 사랑들>에 이르기까지 쿤데라의 작품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앞서 우리는 쿤데라를 따라 소설에서의 인간 행위라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전통적인 서사 예술에서 인물의 행위는 인물의 생각, 인물의 성격, 인물의 인품, 인물의 배경, 인물의 자유, 인물의 운명까지 모든 것을 드러내는 요소였고, 이야기를 끌고 나아가 서사로 구성하는 핵심 장치였지만, 소설에서 행위는 근본적으로 인물 바깥에서 인물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바로 이것이 소설의 가장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이고요. 세르반테스부터 발자크, 플로베르를 지나 카프카, 프루스트, 조이스와 베케트, 무질, 블로흐를 경유하면서 어떻게 행위가 인물을 배신하는지, 그러면서도 인물 자신이 모르는 그의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여주는 것은 소설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성취였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베이컨이 처한 상황입니다. 쿤데라에 따르면 베이컨은 자신이 속한 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사람입니다. 베이컨은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길을 닫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쿤데라는 말합니다. 대담에서 아르솅보가 어떤 현대 예술가가 중요하냐고 베이컨에게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입니다. 반복해서요. “피카소 이후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로열 아카데미에서 팝아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 (중략) … 그곳에 모인 그림을 모두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 제 생각에는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비었습니다, 완전히 텅 비었어요.” 무려 저 유명한 워홀도 그곳에 있었는데요. 베이컨이 대답합니다. “저에게 그는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피카소 이후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쿤데라는 베이컨이 마치 고아처럼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컨이 고아라고 생각해요. 쿤데라에 따르면 길을 열었던 사람들은 동료들, 해설자, 숭배자, 지지자, 동행자, 추종자에 이르기까지 무리 전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길을 닫는 사람의 사정은 다릅니다. 베이컨이 다시 대답합니다. “같이 작업하는 여러 예술가 중 한 명이 된다면 더 신이 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중략) …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유쾌한 일일 것 같아요. 지금은 같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피카소 시대에 모던하다는 것과 위대한 그 모더니즘이 문을 닫는 시대에 모던한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베이컨은 고립된 것입니다. 과거 쪽에서도, 미래 쪽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습니다. 같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조차 전혀 없을 만큼! 

 

쿤데라에 따르면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언제나,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바로 그 점이 예술가의 판단이 흥미로운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니 앞서 이전 시기의 다른 소설가들이나 스트라빈스키나 쇤베르크 등의 작곡가에 대한 언급도, 여기에서 베이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결국  쿤데라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언급을 이루는 셈이지요.


 

… (후략)

2019. 10. 25.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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