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July 30, 2019

긴 항해를 마치고 항구에 돌아온 슐레밀은 여관에 들러 짐을 내려놓자마자 토마스 씨의 집으로 향합니다. 토마스 씨의 동생이 그에게 보내는 편지를 항해에서 받아 돌아왔기 때문이지요. 토마스 씨는 마을에서 소문난 부자인데다가 마침 그날은 그가 사람들을 초대해 큰 연회까지 열었던 날이었기 때문에, 슐레밀은 자신에게도 어떤 보답이 돌아오진 않을까 내심 큰 기대도 가지고 있습니다.

 

연회에서 토마스 씨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현관 입구에서 문지기에게 잠시 제지당하긴 했지만 다행히 초대장 덕분에 연회장에는 들어갈 수 있었고, 연회장에 들어간 다음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슐레밀은 토마스 씨에게 다가가 동생의 편지를 건넸지만, 불행하게도 연회를 찾으며 그가 기대했던 반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토마스 씨는 딱 ‘부자가 가난뱅이에게 보일 법한' 관심만을 비치면서, 편지만 건네받고서는 슐레밀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자랑하기에 바빴으니까요.

 

연회인 만큼 참석한 사람들은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흥겨운 모습을 보입니다만, 슐레밀은 어쩐지 소외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슐레밀로서는 긴 항해를 마치고 오랜만에 돌아온 도시가 영 어색한데다, 낯선 사람들이 주고받는 낯선 대화에 도무지 함께 어울리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연회 분위기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이 엉거주춤 사람들 주변을 서성이던 슐레밀의 눈에 문득 회색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들어옵니다. 조금 전 한 여자 손님이 장미 가시에 손을 찔렸을 때 외투 주머니에서 반창고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던 사람입니다. 토마스 씨가 다른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하인을 불러 망원경을 찾자,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토마스 씨에게 건네기도 합니다. 슐레밀은 그가 주머니에서 커다란 망원경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저런 커다란 망원경을 어떻게 주머니에 넣고 있었을까' 놀라며 감탄하기도 하지요. 

 

연회는 계속 진행됩니다. 계속 흥겨운 대화가 이어지고요. 사람들이 풀밭에 모여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 터키산 양탄자가 여기에 깔려 있었다면 근사했을 것이라고 소리치자, 회색 외투의 남자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금실 자수의 양탄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 펼쳐 놓았습니다. 어림짐작해도 길이가 10m는 충분히 넘을 법한 커다란 양탄자를요. 이 모습을 본 슐레밀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경악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이 양탄자 위에 모여 앉아 대화를 이어갑니다. 슐레밀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회색 옷의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그냥 모르겠다는, 별 쓸데없는 일에 관심을 다 갖는다는 투의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지요. 

 

시간이 흘러 햇볕이 내리쬐자 누군가 그늘막을 찾았고, 이번에도 회색 옷의 남자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주머니에서 아까 꺼낸 양탄자를 전부 덮고도 남을 만큼 큰 그늘막을 꺼내 펼치기 시작했으니까요. 천막뿐 아니라 말뚝이며 밧줄이며 그늘막을 치기 위한 다른 사물들도 줄줄이 함께 꺼내 놓았습니다. 이쯤 되자 슐레밀은 신기하고 놀란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주머니에서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계속 꺼내놓는 회색 옷의 남자도 이상하고, 그런 광경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문득 공포에 질린 슐레밀은 얼른 자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연회장에서 빠져나가지요. 

 

탈출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뭐 애당초 연회에서 슐레밀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토마스 씨에게 적당한 자리를 부탁하지 못한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도시에 돌아온 이상 그건 내일이든 언제든 다시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슐레밀은 조금 전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의심하면서, 또 두렵고 놀란 마음과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마을을 향해 한참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어느 풀밭에서 잠깐 멈췄을 때 소스라치게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틈엔가 회색 옷의 남자가 슐레밀을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모자를 벗으며 슐레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서는, 회색 외투의 남자는 슐레밀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며 허락을 구합니다. 바로 슐레밀이 가진 그림자를 자신에게 줄 수 없냐는 부탁이었지요. 생전 처음 듣는 기이한 부탁을 받은 슐레밀은 당황스럽습니다. 조금 전 연회장에서 목격했던 장면의 충격이 아직 채 가시기도 전인데요. 거기다 의문의 수상한 그 인물이 (사람은 맞는 걸까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쫓아와서는 그림자를 넘기라는 말도 안 되는 괴상한 부탁을, 어울리지 않게 정중한 태도로 건네는 상황이라니요. 

 

여전히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슐레밀은 조심스럽게 남자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남자 또한 만만치 않군요. 끈질기게 슐레밀을 설득합니다. 살면서 언제 굳이 그림자가 필요하거나 유용했던 적이 있었느냐고, 앞으로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물으면서요. 앞서 연회장에서 남자가 선보인 바 있는 주머니도 다시 등장합니다. 자신의 주머니에는 귀중한 세상 보물들이 잔뜩 있다면서, 슐레밀이 그림자만 자신에게 넘긴다면 그 중 어떤 것이라고 슐레밀에게 주겠다고 남자는 제안합니다. 어떤 문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의 뿌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약초, 매번 뒤집을 때마다 동전이 새로 쏟아져 나오는 마술 동전, 펼치는 순간 원하는 음식을 차려 놓는 식탁보,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램프, 소원을 들어주는 모자… 어떤 것이든 그림자만 준다면 슐레밀이 원하는 보물을 주겠다고요.

 

잠자코 남자가 늘어 놓는 보물 목록을 듣고 있던 슐레밀은 문득 요술 주머니 이야기에서 남자의 말을 가로챕니다. 포르투나투스의 복주머니라고 불리는 요술 자루는, 아무리 꺼내도 마르지 않고 금화를 계속 쏟아내는 보물입니다. 회색 남자는 외투 주머니에서 요술 자루를 꺼내 슐레밀에게 건네줍니다. 시험 삼아 자루에 손을 넣고 돈을 꺼내 보라고요. 떨리는 마음으로 슐레밀은 자루에 손을 넣고 금화 열 개를 꺼냅니다. 그리고 다시 손을 넣어서 또 열 개, 그리고 다시 또 열 개를 꺼내 봤지요. 금덩이를 손에 쥔 바람에, 혹은 헛소문으로 치부했던 요술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연회장에서의 두려움도 잊었는지 슐레밀은 이내 남자에게 손을 내밉니다: “좋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자루를 내게 주고 내 그림자를 가지시오.”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는지도 잊은 걸까요? 그림자를 판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 (후략) 

 

 

   

2019. 7. 30. / 수유리콜라보

info@labyrinthos.co.kr

Please reload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