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와 계획

June 4, 2019

“Le but de cet conférence consist à montrer que le temps n’est pas le fait d’un sujet isolé et seul, mais qu’il le la relation même du sujet avec autrui.”

“시간은 주체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사실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바로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강의의 목표입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레비나스는 먼저 강의 기획을 소개합니다. ‘주제와 계획’이라는 소제 아래 레비나스는 시간이 타자와의 관계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강의의 내용을 이룰 것이라고 밝히지요. 우리 손에 들린 <시간과 타자>라는 텍스트는, 레비나스가 1946년부터 1947년 사이에 진행했던 강의의 기록입니다. 레비나스가 당초 원고의 발표나 출판을 목적으로 진행했던 강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의 저작으로서 꼼꼼하고 체계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 공개적인 강연, 즉 말하기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런 만큼 생생한 즉흥성을 음미할 수 있겠지요.

 

흔히 시간이라고 하면 공간과 함께 세계를 이루고 있는 물리적 구조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현대 물리학은 세슘 원자의 진동 간격을 시간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공준하고 있지요. 물론 강의에서 레비나스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이 이런 의미에서의 시간은 아닙니다. 시간이 타자와의 관계 자체임을 밝히고자 하는 강의의 목적을 소개하면서 레비나스는, 이것이 사회학적 관심, 즉 인간 사회가 시간을 어떻게 측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작업이 될 것이라는 발언을 덧붙입니다. 또 강의의 내용은 인간학적 분석과도 상이한 맥락에서 전개될 텐데, 시간이라는 주제, 그리고 시간과 타자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 또한 단순히 인간학의 커다란 두 줄기, 즉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동물로서 인간의 생리와 행태를 다루는 차원에도, 또 인간이 자기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발전시켜 나아가는가를 다루는 정신적 차원에도 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아직 다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아직은 말 그대로 강의의 기획을 소개하는 정도니까요. 자세한 내용들은 강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차츰 확인할 수 있겠지요. 레비나스는 자신이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탐구를 개진할 것을 천명한 다음, 하이데거를 비판하며 고독의 문제를 다시 검토하는 것을 가장 먼저 수행할 과제로 제시합니다. 레비나스는 1928년경 프라이부르크 유학 시기에 하이데거를 사사합니다. 그가 하이데거로부터 받은 영향은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시간과 타자> 강의는 물론 <존재에서 존재자로> 같은 다른 저작에서도 하이데거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또 사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어떤 접근법이나 사고 방식에 있어서는 하이데거와 상당히 유사한 성향을 보일 때도 많지요.

 

자, 레비나스는 시간이라는 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존재론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고독의 문제를 먼저 살펴볼 것을 제안합니다. 하이데거를 향해 비판적 시선을 돌리면서요. 어쩌면 하이데거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레비나스를 이해하는 과정에도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겠지만, 하이데거의 사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레비나스가 이 강연에서 중요하게 참조하고 있는 <존재와 시간>을 촘촘하게 파악하는 것 또한 그것만으로 녹록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레비나스가 직접 인용하는 내용 정도만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지요.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미리 주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그런 다음 고독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하이데거의 접근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존재자들이 서로 함께 있다는 사태는 세계의 본질적인 상황입니다. ‘현존재(Dasein)’로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다른 존재자들과 교섭하면서 살아가지요. 물론 하이데거의 통찰은 단순히 이런 상식적인 세계 인식을 반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자들, 즉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세계와 교섭하는 방식은 (우선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른 목적과 필요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이데거는 의식의 주관성에 대한 분석이나 세계의 도구화에 대한 분석, 나아가 이러한 교섭의 구도 속에서 은폐될 수밖에 없는 세계의 본래성을 어떻게 다시 정립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다루기까지 이르니까요.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레비나스로 돌아와볼까요, 하이데거와 달리 레비나스는 고독이야 말로 존재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고독에서 어떤 교류나 관계들로부터의 단절이나 공동체성이나 집단성을 결여한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고독의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밝히면서요.

… (후략)

2019. 6. 4. / 하루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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