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과 증상

May 17, 2019

프로이트에 따르면 신경증은 기본적으로 리비도의 발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발생합니다. (물론 어떤 증상을 이론적으로, 또 임상적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프로이트가 제시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별히 예민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충동의 발달 과정에서 리비도는 특정 단계에 고착되거나 특정 단계로 퇴행할 수 있습니다. 발달 과정에서 충동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 특정 단계에 멈춰버린 것을 고착이라고 한다면, 발달 과정을 거친 이후에 발생한 문제로 인해 과거의 어떤 단계로 충동이 회귀하는 것을 퇴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고착과 퇴행 가운데 프로이트가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퇴행인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이트는 퇴행을 두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초기의 리비도가 관심을 가졌던 특정한 대상으로 퇴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기 자체로 충동 전체가 퇴행하는 것입니다. 대상으로의 퇴행은 특정 시기에 리비도를 만족시켰던 대상을 향한 관심으로 리비도가 퇴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양한 유형의 도착적인 관심을 떠올려볼 수 있겠지요. 충동 전체의 퇴행은 충동이 단순히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도착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시기 자체로 회귀하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특정한 조건이 만들어지면 언어 습득 이전의 유아기적인 행태를 보인다거나 하는 식의 증상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퇴행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프로이트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리비도의 좌절을 지목합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리비도는 기본적으로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을 갖습니다. (프로이트는 우선 리비도의 이러한 특성을 쾌락 원칙이라고 명명하는데, 강의 시점 이후인 1920년대 이후부터 쾌락 원칙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쾌락 원칙을 중심으로 리비도의 문제를 다뤘던 기존의 접근에 대해서도 얼마간 수정, 보완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 문제는 우리 세미나의 3부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강의 시점에서 쾌락 원칙과 리비도의 문제를 다루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발달 과정에서 리비도는 충동의 대상과, 그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 양쪽 모두에 걸친 변화를 겪습니다. 익히 알려진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 운운하는 이야기가 이 내용에 해당하겠지요. 리비도의 발달 과정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충동이 만족과 쾌락을 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대상이 무엇이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신경증은 바로 리비도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박탈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현실에서 충동이 충족되지 않으면 바로 신경증에 걸리는가, 하면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이라는, 무려 원칙이라는 수준으로 제시하는 충동의 기본 성향은 사실 무척이나 강력해서, 때로 현실에서 충동이 좀처럼 충족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만족과 쾌락의 획득이라는 차원을 회복하고야 맙니다. 우선 하나의 충동이 다른 충동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여행에 너무나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 만한 여건이 되지 않을 때, 음악을 듣는다거나 산책에 나선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다거나 하는 식으로, 무언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충동은 계속 그 어려운 상황에 머물기보다는 획득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충동의 대상이 바뀌는 것은 오히려 간단한 일이겠지요. 햄버거를 먹고 싶어서 찾아간 식당이 문을 닫았다면 계속 배가 고픈 채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식당에서 국수를 먹거나 집에 돌아와 치킨을 배달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얼마간 기다린 다음 다시 그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식당이 영업을 중단했다면 계속 그 식당만 생각하며 주린 배를 붙잡고 괴로워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쉽지만 마음에 드는 다른 식당을 찾겠지요. 짝사랑하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 동안은 괴로워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레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에 대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떤 방법으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라면 마음을 단념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다른 짝을 찾겠지요. 어려운 표현 쓸 것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프로이트는 충동의 이러한 특징을 탄력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탄력적으로 자신의 양식과 대상을 조정하면서 충동은 어쨌거나 만족과 쾌락의 획득이라는 구도에서 탈선하지 않는 것이지요.

 

쾌락과 만족을 중심으로 한 충동의 이러한 특징은 기본적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치 가려운 등이 왼손과 오른손과 효자손을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요.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대상을 구분하지요. 갈증은 맑은 약수와 고인 물을 구분하지 않지만, 원효의 의식은 그 물이 담긴 해골을 지각할 수 있으니까요. 알았다면 마시지 않았겠지요. 설명을 위해 상황을 이렇게 단순화 시켜볼 수도 있겠지요. 충동과 그것의 시행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 겁니다. 하고 싶다, 하지만 하면 안 된다, 할 수 없겠다, 하는 여러 갈래의 생각들이 부딪치면서요. 프로이트는 이런 상황을 심리적 갈등이라고 부르는데, 심리적 갈등은 증상 형성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충동이 지속적으로 좌절되면, 대상을 바꾸고 방향을 바꾸는 식으로도 어떻게든 쾌락과 만족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전 단계에서, 즉 과거에 자신이 만족과 쾌락을 얻었던 대상이나 시기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증상 또한 심리적 갈등 과정에서 발생한 타협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쾌락 원칙을 따르는 리비도가, 심리적 갈등 과정에서 쾌락 원칙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지요. 흐르는 물을 가로 막으면 어떤 식으로든 벽을 우회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모두 막힌다면 결국엔 흐를 수 있는 틈이 있는 곳으로 스미기 마련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증상을 대하는 프로이트의 관점 자체가 퍽 흥미롭습니다. 우선 도착과 신경증을 구분하면서, 자아가 리비도의 퇴행적 전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로서의 도착은 의외로? 신경증과는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신경증은 자아가 리비도의 퇴행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것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정하니까요. 즉 이유가 뭐가 되었든 현실의 관계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좌절되었을 때 리비도는 쾌락을 얻을 수 있는 대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데, 그것을 자아가 스스로 잘 납득하면 그것은 도착적이지만 병리적이지는 않은 사태가 될 것이고, 사소할지언정 자아가 리비도의 방향 전환을 납득하지 않고 의식적인 수준에서 그것을 용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질병이 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만족을 추구하는 리비도는 이러한 퇴행적 방향 전환을 통해서 결국에는 쾌락을 획득하는데, 의식적 차원에서 이러한 만족을 용인하지 못하는 자아는 리비도가 획득하는 쾌락을 저항과 거부감으로, 즉 불쾌와 괴로움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 (중략) …

불안에 대한 프로이트의 강의는 퍽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진행했던 강의 내용에 비춰 본다면 굳이 이 자리에서, 이 순서에서 다룰 만한 주제인가 싶어 의아할 정도로요. 기본적으로 프로이트는 감정을 기억의 잔재라는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요즘 세간의 분위기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사정을 퍽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실은 서구의 지적 전통에서 마음과 감정의 문제는 인간의 이성과 사고와 성격과 품성의 문제에서 항상 부차적인 것인 경우가 오히려 많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겁니다. 대강이나마 이런 사정까지 헤아려본다면 감정을 기억의 잔재 취급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는데, 결국 사람이 언제 기뻐하느냐, 어떤 일 앞에서 화를 내느냐, 어떤 상황에서 좌절하느냐,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따위의 사정들은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학습되고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불안이라는 감정은 퍽 독특합니다. 불안은 우선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인접해 있는데, 불안할 만한 상황이나 대상이 있다면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감정의 일반적인 흐름이지 그 앞에 멈춰 서서는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비합리적인 감정의 흐름이니까요. 요컨대 감정이 특정한 경험적 사태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인간의 내적 작용 가운데 하나라고 했을 때, 대상이라고 할 만한 경험적 사태 앞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의 효용이 무엇인가 하면 이상할 정도로 별 기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가올 시험 생각에 불안하다면 불안해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할 것이고, (혹은 일찌감치 공부할 생각을 단념하고 시험을 포기했다면 불안할 까닭도 없을 것이고,) 어떤 위험 앞에서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응당 그에 대한 대책을 고민하는 것이 합당하지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느 모로 보나 불합리한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프로이트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갖는 이러한 특징을 우선 신경증에서 증상이 갖는 위상에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증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분석이 그것을 밝히기 전이라고 해서 원인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증상이라는 결과가 곧 원인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니까요. 원인으로서의 문제적 상황과 결과로서의 증상이라는 구분을 따라갔을 때, 증상을 일으킬 만한 문제적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혹은 않는다면) 환자의 상태는 점점 나빠져야만 합니다. 또는 결과로서의 증상이 사라지거나 완화되었다면 원인으로서의 문제적 상황 또한 사라지거나 개선되었어야만 하고요. 문제는 프로이트가 보기에 환자들이 증상이라는 방식을 통해 마치 특정한 문제적 상황에 꼭 결부된 것처럼,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위협 앞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불안해 하고만 있는 이상한 감정 상태와도 비슷하게.

자, 어쨌거나 프로이트의 강의는 막바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습니다. 불안에 대해서라면 프로이트 말고도 키에르케고르나, 또 가장 잘 알려진 것처럼 하이데거의 중요하기 짝이 없는 논의들도 얼마든지 있으니 앞으로 언젠가 다시 살펴볼 기회가 또 있겠지요. 이번 시간에는 리비도의 작용이 증상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이론과 사례를 검토했으니, 다음은 특수한 방식의 작용에 대한 검토를 수행할 차례겠지요. 쾌락 원칙에 입각해 충동과 대상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그리고 충동의 좌절과 증상의 관계를 살펴봤을 때 퍽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증상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충동의 대상으로서의 자기자신이라는 나르시시즘의 문제와, 분석 과정에서 거의 예외없이 나타나는 전이라는 문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문제에 대한 프로이트의 관점을 살펴보고, 강의를 마치며 프로이트가 밝히는 분석 치료의 의미에 대한 소회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9. 5. 17.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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