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ation: 프로이트의 교차로

March 15, 2019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인류가 다섯 차례의 혁명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간주합니다. ‘혁명적인 사건’ 내지는 이따금 몇몇 기업들이 내세우는 ‘서비스 혁명’과 같은 수사적인 표현을 제외하면, 또 중국의 신해혁명이나 한국의 4.19 혁명처럼 지역적인 사건들도 제외하고 인류 보편적인 사건의 수준에서 논하자면 대체로 그렇습니다. 의외로 세간에는 많이 회자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 12세기 교황 혁명부터, 16세기의 종교개혁, 17세기 영국의 명예혁명, 18세기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의 대혁명까지가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리겠군요.

 

흔히 혁명이라고 하면 폭력과 물리적 충돌을 포함한 과격한 사회 변혁을 떠올리기 쉽지만, 낱말이 가진 본래의 뜻을 생각한다면 폭력이나 충돌은 혁명의 부수적인 효과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방금 언급한 다섯 차례의 혁명 중에서도 교황 혁명과 명예혁명의 경우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폭력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요.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의 어근은 회전 운동을 의미하는 ‘revolve’가 되겠지요. 물론 여기에서의 회전은 어떤 축을 기점으로 한 회전을 뜻합니다. ‘revolve’는 구르다, 돌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volvere’와 다시를 뜻하는 ‘re’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낱말인데, 한 번 둘러 돌았던 자리를 다시 지나가려면 중심을 가진 회전 운동이라야 하겠지요? 중심을 가진 회전 운동에서 고대인들이 떠올린 것은 바로 천체의 운동입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회전하는 하늘의 천체들의 모습처럼, 그러니까 ‘레볼루션’이라는 개념은 어떤 질서와 그 질서를 창출하는 원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역사학자들이 앞서 언급한 다섯 사건을 인류의 혁명이라고 일컫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질서랄까요, 세계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원리와 기준을 만들어낸 사건이자, 오늘날의 세계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사건들이기 때문이지요.

 

자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역사학자들의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도 꼭 모두 이렇게 생각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예컨대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역사란 대체로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로서, 선사시대와 이후의 역사를 탐구한다고 해봤자 지구 전체의 역사나 생물 전체의 역사라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지엽적인 영역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을 나누고 구분하고 사건을 구획하고… 하는 작업들은 정말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타 분야를 매도하는 생물학자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또 모르지요.)

 

생물학자들도 혁명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제까지 간단히 언급했던 역사학계에서의 혁명에 대한 합의와 비슷하게, 생물학계에서도 생물학적 혁명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무엇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존재합니다. 생물학자가 생각하는 역사라면 역시나 생물이 탄생한 이후부터의 역사겠지요? 생물학자가 생각하는 세 가지 중요한 혁명 가운데 첫 번째 혁명은 생명 자체의 탄생입니다. 약 35억 년 전의 일로 추정되지요. 그 뒤로 25억 년 동안은 대체로 잠잠합니다. 탐구의 단위를 생물이라는 차원으로 확장한다면 탐구의 시차는 벌써 세기 단위를 어설프게 적용할 수 있는 규모를 훨씬 벗어나니까요. 약 10억 년 전쯤에 다세포 생물이 탄생합니다. 두 번째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건이지요. 이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입니다. 복수의 세포를 가진 생물은 세포가 결합하는 갈래와 방식에 따라 셀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진화하고, 바다나 육지 등 지표에 가까운 거의 모든 곳에서 다양한 생물군이 이루는 생태계가 만들어졌지요. 시간이 다시 한참 지나면 생물학자들이 꼽는 세 번째 혁명이 도래하는데, 바로 의식의 탄생입니다. 약 250만 년의 일이지요. 이제 생물은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행위나 그것이 자신과 다른 개체에 미칠 효과를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자, 이 세 가지 사건이 생물학자들이 꼽는 혁명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작성한 목록과는 조금 다르지만, 앞서 살펴본 혁명이라는 개념에 비춰 본다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흔히 의식이라고 부르는 생명체의 자기 인식이라는 것은 사실 여전히 미지의 대상입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 문제와 씨름해왔지만 사실 냉정하게 진단했을 때 오늘날까지도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손에 쥐고 있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수준이니까요. 예컨대 개구리의 생식 과정이나 운동하는 물체의 낙하 원리에 대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수준과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인간이 알고 있는 내용을 견주어 보자면 그렇습니다. 유럽의 지적 전통에서는 시대에 따라 영혼이나 정신, 이성 등의 개념을 통해 의식이라는 문제를 인간의 특권적 영역으로 상정하고 탐구해왔지만, 최근에는 의식이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만의 특권적인 능력이라는 믿음이 시험대 위에 오르면서 의식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인간처럼 정교한 수준은 아니지만 영장류를 포함해 개나 고양이 같은 일부 포유류에게도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에 대한 인식이 존재한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어떻게 생명체에게 의식이라는 능력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탐구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가능할 뿐더러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 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다룬 방대한 연구가 이미 존재합니다만 이 문제의 중요성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 의식이 개체 단위로 발생하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단위로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장류 동물들에 대한 연구 역시 인간 의식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시사점을 지니겠지요.

 

자, 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일단 생물학자들을 믿어 보기로 합시다. 어쩌면 머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니까요. 이번 세미나에서 우리는 조금은 과감한 관점으로 세미나의 주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앞서 여러분을 세미나에 초대하면서 인류사에 있었던 몇 가지 방향 전환을 언급한 적이 있지요. 칸트의 용례 이후 거의 관용구처럼 자리 잡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의 코페르니쿠스에 대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다윈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자기 인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던 프로이트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삼라만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생각은 코페르니쿠스의 발견과 함께 산산조각 납니다. 앞서 혁명이라는 낱말의 본래 뜻을 살펴봤을 때 중심축을 가진 회전 운동, 천체 운행의 질서라는 내용을 언급했었지요?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고대인들이 생각한 천체의 운행, 즉 우주의 중심은 지구였습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통해 인간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퍽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그리고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속력이 붙습니다.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포함한 다른 천체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인류가 인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교한다면, 그로부터 태양 역시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생각에 인류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훨씬 빨라졌으니까요.

 

우주의 사정은 그렇고 다시 지구로 돌아옵시다. 16세기 중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깨졌지만 인간이 지구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1859년 항해에서 돌아온 다윈이 그야말로 혁명적인 저작을 발표하는데, 바로 <종의 기원>입니다. <종의 기원> 역시 처음 등장했을 때 코페르니쿠스와 마찬가지로 온갖 비판과 비난과 비방에 시달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시나 다윈의 생각이 옳았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은 신의 명령을 받은 지구의 지배자라고 자신을 간주하는 믿음을 더 이상 맹신할 수 없게 되었지요.

 

프로이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교차로의 복판에 서 있는 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생물학에서 말하는 세 가지 혁명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프로이트의 발견은 의식의 출현 만큼이나 강력한 함의를 갖는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은 의식의 저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인간의 의식만으로 해명되지 않는 정신 작용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니까요. 아주 보수적으로 평가한다면 의식의 새로운 측면에 대한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의식이라는 영역의 확장이라고 할 수도, 아주 살짝 과장을 보태 조금 더 과감하게 평가한다면 네 번째 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만한 발견입니다. 바로 스스로를 의심하는 정신, 반성하는 정신의 출현이니까요.

 

일단 의심하는 정신, 반성하는 정신의 의미는 세미나를 통해 차츰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은 프로이트가 서 있는 교차로의 갈래를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지요. 유사 이래 인류는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우리는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부터 출발해볼까요. 동서고금을 통틀어 탈레스 이전에도 세계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이해가 존재했습니다만, 탈레스의 기획에 무려 최초의 철학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꼬리표로 달려 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바로 탈레스에 이르러서부터 세계를 서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넘어 개념적으로, 원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이행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잘 알려진 사실처럼 탈레스가 품었던 질문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였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무려 오늘날까지도 유효하고요.) 탈레스가 제시한 해답은 ‘물’이었습니다. 물론 은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지요. 만물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가리키는 표현일 텐데, 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상은 물론 물과 상극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대상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탈레스가 몰랐을 리 없습니다. 탈레스가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 비춰 봐도 마찬가지겠고요. 탈레스 이후부터 만물의 근원은 불이나 공기, 흙 따위로 제시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겠지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흐름을 상세히 다루는 것은 우리 세미나의 시간을 한참 초과하는 일이겠지요, 프로이트가 서 있는 교차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머니까요. 큰 흐름 정도만 개관하지요. 물, 불, 공기, 흙처럼 자연에서 접할 수 있는 질료적 성격으로 세계의 근원을 이해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이내 원자, 내지는 원소라는 개념을 도출해내기에 이릅니다. 쉽게 말해 물질이 있고, 그 물질이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발상이지요. 그런데 물질 그 자체만으로는 세계의 다양성과 변화상을 모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과 불처럼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들이 어떻게 세계를 이루는지, 혹은 몇 가지 대표적인 질료들만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나 행위에 관련한 문제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와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니까요. 흔히 고대 자연철학이라고 불리는 밀레투스 학파의 등장 이후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서 이제 인간은 어떤 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헤라클레토스가 제시했던 것처럼 대립하는 힘이라든지, 파르메니데스가 파악했던 것처럼 질서와 사유의 원리 따위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러한 시도와 노력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면서 (한편으로는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학파의 전통을 통해) 어느 정도 큰 뼈대라고 할 만한 윤곽을 이룹니다. 세계에는 질서와 원리가 있다, 그리고 사유와 탐구를 통해 인간은 이러한 질서와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탐구할 것인가,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퍽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진 셈입니다.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외부를 향한 질문의 방향은 동일하지만, 무게중심은 이제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을까의 차원으로 이동했으니까요. 이러한 전환 이후의 세계는 이제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익숙한 세계입니다. 아쉽지만 중간 과정을 껑충 생략한다면 소위 합리주의라고 여겨지는, 경험주의적 전통과 이성주의적 전통은 바로 이 ‘어떻게?’라는 전환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립하는 셈이지요.

 

자, 어쨌거나 우리의 탐구는 목적지가 정해진 여정이기 때문에 가는 길목 모두를 하나씩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양쪽의 대표자 한 명씩만을 소환하는 것으로 하지요. 먼저 이성주의의 대표 데카르트입니다. 흔히 <방법서설>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의 본래 명칭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 그리고 그리고 이 방법에 관한 에세이들인 굴절광학, 기상학 및 기하학>입니다. 원작은 1부인 방법서설과 굴절광학, 기상학, 기하학 각 1부를 포함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2부 이하를 과감하게 내치고 1부인 <방법서설>만을 대표작으로 쳐주고 있는 셈이지요. 어쨌거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저작의 정식 명칭은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 있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이 되는 게 맞겠지만, 역시 이런 이름이라면 인용할 때마다 촌극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우리도 함께 <방법서설>이라고 불러봅시다. 제목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이 <방법서설>은 사유의 방법을 다룬 저작입니다. ‘어떻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 저작에서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방법론적 회의’,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머리에 떠오르는 것, 알고 있는 것,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보자는 방침입니다. 적용해본다면 이런 식이지요. 지금 내 눈에 뚜렷하게 보이는 저것은 하지만 어쩌면 착시일 수도 있다,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이것은 그러나 어쩌면 환청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고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거나 얼토당토 않은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이 사실만큼은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이므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나, 내 사유의 실재성 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이렇게 도출한 사유의 확실성을 바탕으로 데카르트가 다음에 착수하는 작업이 바로 <성찰>의 집필입니다. 사유의 확실성이 보증되지 않는다면 성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유와 물질의 대해, 세계에 대해, 신에 대한 성찰이 공상이 아닐 수 있다면 오직 그것은 성찰 자체가 참된 진리를 근거로 이루어졌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성주의적 전통은 기본적으로 이런 세계관 위에 성립합니다. 세계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내가 파악한 인식의 진위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사유를 통해, 그리고 사유를 통해.

 

베이컨은 반대로 생각합니다. 주로 법관으로서의 생애를 보낸 베이컨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데카르트가 기획했던 것과 비슷하게 지식의 탐구와 학문적 발견의 원리를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하는데, 총 6부로 기획한 <대개혁>의 집필 계획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미완의 저작으로 남았군요. 1부에 해당하는 <학문의 진보>와 집필을 끝내지 못한 2부 내용의 일부가 <신기관>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알려졌지요. <신기관>에서 베이컨은 저 유명한 네 가지 우상을 제시하면서, 사유라는 인간의 정신 활동이 가진 위험성과 한계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오직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확인한 사실만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신기관>이라는 저술명 또한 다분히 삼단논법으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염두에 둔 명명입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의미에서 논리적으로 아무리 따져봐도, 혹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해도 학문의 진보나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발상이지요. 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논리적 진리가 반드시 사태의 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태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입각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베이컨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베이컨은 데카르트처럼 성찰을 통해 어떤 원리를 확보하고 첫 번째 원리로부터 두 번째 원리를, 두 번째 원리로부터 세 번째 원리를 이끌어 낸 뒤 이런 원리를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들 자체에 기본적으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인간의 정신이란 백지 내지는 진공 상태, 혹은 멸균 상태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충동, 의지와 목적, 이해관계, 선입견과 편견, 사람마다 고유하게 가진 성격적인 특징들, 주변 사람들의 평가나 소문, 여러 가지 미신이나 관습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직접 확인한 것들을 중심으로 실험과 검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만이 세계에 대한 참된 인식으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궁리하는 생각들이나 완전무결해보이는 논리들이 아니라.

 

자 근대라는 시기는 이런 정초로부터 성립합니다. 이성주의의 전통과 경험주의의 전통은 언뜻 상반되는 주장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전히 하나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각자가 세계를 이해했다는 믿음이지요. 상반되는 두 주장이 꽤 오랜 시간 평행선을 달린 까닭은 각자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이 믿음은 서구의 근대를 지탱하는 믿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런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다윈,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등이지요. 한 시대의 종언을 선언한 인물들이지요. 다윈의 관점은 세계에 대한 믿음이 어쩌면 인간이라는 어떤 한 종이 가진 편견의 총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마르크스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지금까지 인간이 기울여왔던 노력과 그러한 노력으로 확보한 세계에 대한 지식은 사회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요. 학문적 탐구와 정신 활동의 모든 소산을 포함한 인간의 의식 자체가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라고 보는 겁니다. 의식적인 인간 활동을 통해 세계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의식 자체가 선행하는 세계의 결과물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니체의 사상은 그간 인류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실은 죄다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니체는 탈레스 이래로 이어진 서구의 지적 전통의 근간으로서, 탐구 대상으로서의 세계라는 것이 실은 하나의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파헤칩니다. 탐구의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객관적 세계라는 관념 자체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밝히면서요. 세계 자체가 인간 의식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면 구성된 세계를 탐구하면서 진리 운운하는 것은 얼마나 기만적인가요. 진리일 수밖에 없지요, 언제나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만든 세계니까요.

 

그리고 프로이트입니다. 프로이트 이전까지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에 대해 얼마나 자만했었는지요. 때로 인간은 정념에 휘둘리기도 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지만 자기자신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만큼은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신을 원망하고 타인을 원망하고 때로 자신의 운명과 세계를 향해 탄식할지언정 자신의 자기동일성에 대해, 나의 나됨에 대해서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자명했으니까요. 삶과 모든 경험의 주체로서 자기자신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자명하고 강력한 나머지 주관적 지각이 없는 의식이라는 것을 떠올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자기자신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자명한 나머지 의식의 방향은 항상 자신이 아닌 외부로만 설정되는 것일까요?

 

자기동일성과 자기 의식과 자아의 통일성, 그리고 이것들을 근간으로 하는 정신 활동의 역량에 대한 믿음은 인류사에서 단 한 번도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프로이트 이전까지는. ‘인간’이라는 형상 안에는 자기자신의 주인이라는 관념이 항상 들어 있고, 자기자신의 주인이 아닌 누군가들, 예컨대 병자, 광인, 영유아, 여성, 노예, 동물들은 정상적인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형상인 것이지요. ‘인간'에 대해서라면 한 번도 이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프로이트 이전까지는. 프로이트는 바로 이 믿음에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정상적인 인간도, 그 어떤 누구도 모든 사람도 예외 없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하면서요. ‘우리 모두는 욕망이나 충동의 노예’ 운운하는 상투적인 어휘로 이 사태를 재빠르게 봉합하려는 시도는 일종의 방어 본능의 작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은. ‘나'라는 경험과 감각의 주체로서 자아가 실은 감각과 경험의 주인공이 아니라 모종의 구성품 내지는 결과물이라면, 도대체 나의 믿음, 나의 의지, 나의 바람, 나의 선택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 (중략) …

 

 

강의를 시작하는 프로이트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이라는 개념을 낯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어려움과 그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물론 당시에 그가 직면했던 자신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감 내지는 비판 역시 잘 알고 있었지요. 우리는 이 어려움을 프로이트가 남긴 강의의 기록을 통해 그의 입장에서도 헤아려볼 수 있고, 또 정신분석이라는 낯선 대륙에 첫 걸음을 내딛는 입장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양쪽을 오갈 수 있겠지요.

 

프로이트는 강의 첫 시간의 대부분을 수강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에 할애합니다. 정신분석에 대한 강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는 우리도 차츰 확인해봅시다.) 그럼에도 수많은 난제가 산적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제까지 살아오며 생각했던 사고 방식과 상충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다가, 이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정신분석 연구에 착수하거나 임상적으로 환자를 다룰 수 있는 지식을 획득할 수도 없고, 혹시라도 강의를 계기로 정신분석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추가로 더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직업 선택에 도움이 되거나 학교나 병원에서 인정 받기는커녕 적의와 불신의 눈초리를 숨기지 않을 사람들 속에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일 뿐이라고 고백하면서요. 정신분석학적 탐구의 결과물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고, 그것을 증명할 수도 없다고까지 덧붙입니다.

 

자 프로이트의 냉철한 진단과 양해를 구하는 뻔뻔한 상황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대해서라면 한물간 학자와 사상 내지는 사기꾼 취급도 예사니까요. 첫 시간 치고 꽤 긴 논의를 프로이트가 서 있는 교차로를 이해하는 것에 할애한 것 같군요. 교차로까지 도달했다면 신호가 바뀔 즈음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있겠지요.

 

신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모험 가운데 상당수는 자기자신을 찾는 모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자기자신의 본 모습을 찾는다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이상향을 찾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지요. 이렇게 본다면 인류의 오딧세이는 프로이트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입니다. 앞서 언급한 다윈, 마르크스, 니체 등이 각각의 방식으로 인류의 믿음에 균열을 낸 것처럼, 프로이트는 인간이 잃어버린 것이 실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찾아낸 셈이니까요. 잃어버린 줄도 모른 때에야 그런 줄 모른 채 살 수 있겠지만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상 어떤 식으로든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겠지요. 신화 속 주인공은 긴 여정 끝에 귀향과 자기자신 찾기에 성공했지만, 글쎄요, 우리의 여정도 성공적일 수 있을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9. 3. 15.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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