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June 12, 2018

자, 우리는 벤야민이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고 이해하고자 했던 방법, 그것을 포착하고 제시하고자 했던 방법들을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과장된 장식과 뻣뻣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한심한 작품이라는 평가로부터 바로크 비애극을 구제하고자 벤야민이 제시했던 진리의 이념과 언어의 관계, 일방통행로와 파사주라는 우회로를 통과하는 산책자의 걸음과 시선, 사물과 시대의 관계를 성찰하는 유년 시절의 회고, 보들레르의 파리를 통해 확인한 오늘을 구성하는 어제의 흔적, 언어의 본질에 대한 사유로부터 이끌어낸 인간 언어의 근본 속성, 언어를 통해 진리를 읽어내는 번역과 해석의 과제, 비평의 본질, 이야기와 시에 대해, 시대를 이루는 기술적 특징과 예술 형식,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사회의 근간인 법과 폭력, 정의의 관계를 모두 지나, 드디어 벤야민 최후의 저작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함께 다룰 주제는 흔히 ‘역사 철학 테제’라고 알려진, 벤야민 최후의 저작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입니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벤야민이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마지막까지 품에 들고 수정했던 미완의 텍스트입니다. 일반적으로 벤야민이 1939년 느베르 인근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풀려난 이후 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벤야민 비평판 전집의 편집자 제라르 롤레는 이 원고의 집필 구상 시기를 1937년 벤야민이 에두아르트 푹스에 대한 에세이를 탈고한 시점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고요. 임박한 나치의 탄압을 피해 파리를 떠나면서, 벤야민은 그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원고들은 그냥 거주했던 아파트에 남겨두고 갑니다. <파사주>에 관련한 원고들은 바타유에게 맡겼고, 중요한 원고들은 자신이 직접 가방에 챙겨 들고 떠나는데요. 벤야민이 가방에 챙긴 원고가 어떤 것들이었는지 정확한 목록은 존재하지 않지만,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가 그 가운데 하나였으리라고 많은 학자들이 추측합니다. 또 벤야민 전집이 출간되기에 앞서 아도르노가 먼저 이 텍스트를 따로 출판하면서, 벤야민의 유언과 같은 텍스트라는 언급을 덧붙이기도 했지요.

 

아마 이 텍스트가 진짜 유언이라면 꽤나 복잡한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미완일 뿐더러, 여러 판본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앞서 다룬 기술복제 논문처럼 초고와 수정본, 편집본 가운데 무엇을 벤야민 자신이 생각한 원본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는 다릅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원고에는 적어도 일곱 개의 판본이 존재합니다. 오늘 자리에서는 굳이 각 원고의 특징을 일일이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벤야민의 소중한 두 친구, 아렌트와 아도르노가 이 텍스트의 원고를 두고 여러 차례 충돌했다는 널리 알려진 일화 정도만 덧붙이겠습니다. 서로 자신이 가진 원고가 벤야민이 남긴 원본이라고 주장하면서요. 여하튼 이런저런 경로로 남겨진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원고에는 T1, T2, T3, T4, T5, M(HA) 등의 번호가 붙어 있는데, 2010년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판한 벤야민 전집은 이 텍스트의 여러 판본을 하나로 종합하지 않고 각각의 텍스트를 병렬로 수록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유사하거나 겹치는 내용도 많습니다만 각각의 원고마다 나름의 의미를 별개로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벤야민은 이 원고를 출판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단순히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최종 원고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생전에 그가 여러 지면을 통해 자신의 원고를 꾸준히 발표하고자 했다는 점, 또 <파사주>나 기술복제 논문의 경우처럼 적절한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한 텍스트들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출판하고자 했던 의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조금 의외이기까지 한데요. 벤야민은 이 원고를 절친한 몇몇 친구들에게만 보여주었고, 1940년 4월, 그러니까 자살을 불과 반 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작성한 한 편지에서는 자신은 이 원고를 출판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만약 이 원고가 출판된다면 광적인 오해가 엄청나게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원고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것도 벤야민의 유언이니, 이 원고를 출판하는 것은 의무니, 하는 소리와 함께요. 하지만 텍스트의 내용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심지어 테제들 각각을 별개의 의미를 담고 있는 논의로 봐야 할지, 하나의 완결된 논의로 봐야 할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벤야민 사후 이 텍스트를 최초로 출간한 아도르노에서부터 최근의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이 텍스트를 둘러싼 논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대체로 까다로운 벤야민의 저작들 가운데에서도 아마 가장 혼란스러운 텍스트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이고요. 본문을 조금씩 살펴볼까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벤야민과 관련해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두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체스하는 자동기계와, 다른 하나는 뒤를 돌아보는 천사의 이미지이지요.

 

 

… (중략) …

 


두말 할 것 없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벤야민의 역사 철학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저작입니다. 진리와 언어, 비평과 해석 등의 최종 심급을 역사에서 찾는 변증법주의자로서 벤야민이 가진 면모를 고려한다면 다른 저작들의 독해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저작이기도 하고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시간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 특히 균질하고 공허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지금시간(Jetzzeit)’으로 충만한 현재라는 역사관은 벤야민의 사상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오늘 함께 다룬 텍스트에서 그가 섬광처럼 스쳐가는 기억을 붙잡는 것을 역사적 유물론자의 과제로 제시할 때, 이전까지 존재했던 모든 세대와 우리 사이에 공존하는 행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정초하고자 시도할 때, 통속적인 역사주의와 이에 기댄 나태한 낙관을, 게으른 무임승차를 매섭게 비판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20세기 사상사에서 벤야민이 남긴 사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회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론적 텍스트와 비평적 텍스트를 넘나들며, 문학이론, 인식론, 언어 철학, 사회 철학, 예술 철학, 미학 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폭넓게 주제를 다루는 광폭 행보 덕분인지 벤야민 독해는 여전히 까다로운 과제로 남아 있지요. 아마 앞으로도 눈 밝은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테고요. 변증법주의자로서, 유물론자로서, 독일 관념론의 계승자로서, 유대인으로서, 위기의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간 벤야민의 노력은 망각된 것, 낡아버린 것, 일상적인 것, 진부한 것, 망가진 것, 초라한 것들이 뒤섞인 폐허에서 어떻게 의미를 읽어낼 것인가, 어떤 의미를 진리로 확증할 것인가의 문제로 수렴합니다. 이는 곧 씌어지지 않은 것, 혹은 아직 읽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것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우선은, (벤야민을 흉내낸다면) 거의 끝에 이른 우리의 시간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라고 매듭 지어 놓겠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함께 읽은 내용들을 이제와 새삼스레, 성급히 한 두 줄로 요약할 필요는 없겠지요. 아마 가능하지도 않을 테고요. 임박한 파국 앞에서 게으른 희망에 기대지 않는 것, 절망스런 현실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절망을 끝까지 사유하는 것, 절망을 견디며 낙관을 견지하는 것. 성마른 사람이라면 끝내 영문 모를 것들이겠지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8. 6. 12.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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