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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7, 2018

장팔수는 옥섬에서 풀려난 뒤 배를 타지 않았다. 장팔수는 옥섬에 닷새 동안 갇혀 있었다. 바다에서 늙은 장팔수는 옥섬의 밤이나 파도가 무섭지는 않았다. 장팔수는 고등어가 무서웠고, 고등어 한 마리에 얽히는 인간의 아귀다툼이 무서웠다. 풀려난 뒤에 장팔수는 사지에 힘이 빠져서 방바닥에 늘어져 있었고, 가끔씩 호미를 들고 산에 올라가서 갓 돋아나는 어린 소나무를 뽑아냈다. 소나무는 어려도 뿌리가 깊고 질겼다. 장팔수는 바위틈에 박힌 소나무 뿌리를 호미로 긁어냈다. 대낮 산속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소나무와 고등어는 똑같은 고통의 뿌리였다. 고등어는 세금으로 빼앗기고 나서도 몇 마리 건질 것이 있었지만 소나무가 자라면 아무런 먹잘 것도 없는 화근이 될 것이었다. 풀려난 뒤에도 장팔수는 아들 창대에게, 배를 타고 나가서 고기를 잡아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시 고등어를 잡으러 나갈 수도 없었고, 이웃들이 걷어서 세금으로 낸 돈은 갚을 길이 막연했다. 장팔수는 대책 없이 늘어져 있었다.

   

- 김훈, <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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