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용기: 횔덜린, 발레리, 브레히트

May 22, 2018

지난 밤 프루스트를 통해 기억과 서사의 문제를, 또 카프카를 통해 부유하는 세계 속 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웠지요. 특히 카프카의 작품이 보여주는 이름도, 장소도 모두 부유하는 늪과 같은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삶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철저하게 실패하는 삶과 문학의 성공이라는 흥미로운 유비를 통해서요. 오늘은 벤야민이 프리드리히 횔덜린, 폴 발레리, 브레히트에 대해 남긴 글을 통해 시에 대한 벤야민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벤야민은 생전에 늘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1915년 횔덜린의 시를 다루는 최초의 장문 비평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여러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작성했으며, ‘비판적인 말이 위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비평을 갱신할 것'을 주장하며 직접 잡지 창간을 준비하기도 했으니까요. 자신이 작성했던 비평문들을 모아 출간을 계획하기도, 또 당시 주류 기조를 형성했던 기존의 비평이 드러내는 한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평이나 기고 등 여러 기회를 통해 남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 <괴테의 친화력> 등을 통해 기존의 비평에 대한 벤야민의 비판을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1936년 망명 시절에도 청탁 받은 <이야기꾼>의 원고를 통해 자신의 서사 이론을 정리하고자 시도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문학에 대한 관심은 벤야민의 생애 내내 이어지지만 벤야민의 관심은 주로 이야기, 서사, 소설 등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앞서 벤야민의 언어관과 서사 이론을 살펴보면서 언어 일반의 문제에서 인간의 언어의 문제를, 또 이를 바탕으로 어떤 대상의 의미를 보다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편으로서 보다 완전한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번역의 문제를, 그리고 작품의 언어 속에서 내용과 형식의 분리될 수 없는 결합으로 나타나는 진리를 읽어내는 언어로서의 비평이라는 문제를 차례로 다뤘었지요. 실제로 벤야민은 프루스트나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괴테,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보들레르처럼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카를 크라우스, 고트프리트 켈러, 요한 페터 헤벨처럼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생소한 작가들까지 다루는 꽤 많은 비평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오늘 다룰 횔덜린 텍스트는 벤야민이 최초로 작성한 장문의 비평이며, 발레리 텍스트는 1931년 10월 발레리의 60세 생일을 기념하며 잡지 ‘문학세계(Die Litterarische Welt)’에 발표한 비평, 브레히트 텍스트는 벤야민이 브레히트와 교류하며 나눈 대화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텍스트입니다.

 

먼저 횔덜린부터 살펴볼까요? 1915년 벤야민은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 두 편: 「시인의 용기」 - 「수줍음」’이라는 비평을 작성합니다. 이 텍스트에서 벤야민은 횔덜린의 시 두 편을 다루면서 시와 삶과 신화의 관계를 추적하고자 시도하고요. (참고로 「수줍음」은 횔덜린이 자신의 시인 「시인의 용기」를 개작한 작품입니다.) 횔덜린은 1800년경 운명의 부름을 받은 시인은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는 내용을 담은 「시인의 용기」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한 차례 개작을 시도한 뒤, 1802년 내지는 1803년 「수줍음」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완성하지요. 우리가 함께 읽은 비평문에서 벤야민은 초고와 완성본 사이의 차이에 주목합니다. 시는 신적인 것과 민중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시인의 자리를 다루고 있는데, 벤야민은 초고에서 구체적 형상이 명확하지 않았고 세부적인 수준에서 결속력이 느슨했던 시구들이, 완성본에 이르면 (시인이) 냉철한 사유를 통해 획득한 내적 확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지금까지 다뤘던 몇몇 텍스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선 시구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벤야민의 접근보다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벤야민이 제시하고자 하는 시론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이 텍스트의 서두에서 벤야민은 ‘시화된 것(das Gedichtete)’을 시에서 비평이 읽어야 할 대상으로 제시합니다. 벤야민이 말하는 시화된 것은 시로 만들어진 것, 시를 통해 형상화된 어떤 것을 가리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시화된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시의 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벤야민은 세계의 정신적, 직관적 구조를 증언하는 것을 시의 과제로 내세우는데, 따라서 시화된 것이란 시가 증언하는 하는 세계의 구조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문학 비평이 시에 대한 문헌학적 분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벤야민은, 형식과 소재 등 시를 이루는 외형이 아니라 시가, 혹은 시인이 시를 통해 다루는 과제 그 자체를 통해 시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과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러니까 어떤 소재를 사용했고 어떤 율격을 사용했는지와 같은 차원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완성하고자, 제시하고자 했던 문제가 무엇인지를 통해 시를 평가해야 한다고요. 벤야민에 따르면 이 과제의 진지함과 위대함이 시, 그리고 시인에 대한 평가를 결정합니다.

 

 

… (중략) …

 

 

벤야민은 1929년부터 1938년까지 브레히트와 교류하며 그로부터 받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저하지 않고 브레히트를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인 (또는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을 텐데요, 벤야민 역시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또 그의 극이나 시를 분석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브레히트 또한 1941년 발표한 「사상자 명부」라는 시에서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한 벤야민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도 할 만큼 가까운 사이기도 했지요.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활동했던 브레히트는 나치즘이 확산되면서 1933년 가족과 함께 독일을 떠납니다. 브레히트의 초기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1920년대 초반의 희곡들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표현주의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지만, 점차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192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강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브레히트는 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체포 당할 위기에 처했고, 이후 그가 ‘신발보다 나라를 더 자주 바꿔야 했다’고 표현한 망명 생활을 시작했지요. 이렇게 본다면 벤야민과도 비슷한 처지였다고 볼 수 있겠고, 또 이러한 사정은 당시 유대계 독일 지식인들이 처한 일반적인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어쨌거나 브레히트는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파리, 모스크바, 미국에 이르기까지 긴 망명기를 보내는데, 벤야민은 1934년 덴마크의 스벤보르에 머물던 브레히트를 찾아가 나눈 대화를 ‘1934년 여름 스벤보르 노트’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1938년 다시 브레히트를 만나 나눈 대화를 ‘1938년의 일기’라는 제목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살펴본 것처럼 이들은 당시 유럽의 정세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나 계급 투쟁에 대해, 카프카나 괴테 같은 작가들에 대해, 또 시나 서사 예술 일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대화를 나누며 교류했지요.  

 

벤야민은 (스벤보르에 머물던) 브레히트의 서재 대들보에 쓰인 한 문구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덧붙여 자신의 일기에 옮깁니다. “진실은 구체적이다.” <파사젠베르크>를 떠올린다면, 거리들, 조각들, 파편들을 통해 시대의 총체를 포착하고자 시도했던 벤야민의 기획을 생각한다면 그가 이 말을 몇 번이고 곱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언제나 구체적인 배치와 형세 속에서 진실을 구제하고자 노력했으니까요.

 

벤야민은 발레리를 일컫어 ‘사유의 정점에서 사물들의 한계 또는 시력의 한계를 가능한 한 날카롭게 살피는 자’라고 칭합니다. 발레리에 대한 평가이자,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인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한계 지점까지 도달하지 않고서는 그 대상에 대해서 온전히 파악했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즉 어떤 대상이 그것으로 존속하는 가장 극단의 지점, 어떤 것이 자신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지탱하는 가장 극한의 경계선이 곧 그것의 한계 지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인은 곧 자신이 보고자 하는 대상의 한계를 끝까지 살피는 사람 외에 다른 누구도 아닙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상의 한계 지점은 곧 시인의 한계 지점과 동일합니다. 어떤 대상이 더 이상 식별되지 않는 극한의 지점은 곧 시인의 눈이 대상을 추적할 수 있는 극한의 지점이기도 할 테니까요. 요컨대 한계 속에서 대상과 시인의 눈이 만나는 것이지요. 시인은 대상의 한계와 자신의 한계를 일치시킴으로써 그 한계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사람입니다. 작가가 작품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겠고요. 이렇게 본다면 횔덜린과 발레리, 또 브레히트를 통해 드러나는 시의 본질은 다름 아닌 진실의 구체성입니다. (물론 진실의 구체성이 곧 시의 본질이다라고 한정 지어서는 곤란합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면 이렇게 사태를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구겨 넣는 것이야말로 문학에 대한 가장 적대적인 태도입니다. 문학은 언제나 떨리는 가장자리를 갖게 마련이고, 이 떨림이 곧 문학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이 구체성은 곧 그것의 가장 작고 여린 가지 하나까지 자르거나 꺾지 않고 보전하려는 태도 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겠지요. 다름 아닌 이상적인 시인의 태도입니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태도이기도 하지요. 가장 작은 소리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8. 5. 22.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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