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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 2018

"난 자네의 상상 속에서 살지. 그리고 자네의 상상 역시 자연의 일부니 나도 자연 속에 사는 거라 할 수 있겠지."

"당신은 정말 지혜롭고 아주 인상적인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군. 진짜 천 년을 넘게 산 존재처럼 말이야. ... 난 내 상상이 이런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건 몰랐네. 그나저나 왜 그리 감탄하는 얼굴로 날 보는 거지? 내가 마음에 드나?"

"그렇지. 자네는 신이 선택한 자라 불러도 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니까. 자네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하지. 자네의 생각, 의도, 놀라운 학문, 그리고 삶 전체에 신성한 하늘의 봉인이 찍혀 있네. 그 모든 것이 지적이고 아름다운 것, 다시 말해 영원한 것들을 향하고 있으니 말일세."

"지금 영원한 진리라고 했지... 하지만 영원히 살 수 없는 인간이 영원한 진리를 알 수 있을까? 또 그게 필요할까?"

"영생은 있네."

"인간의 불멸을 믿나?"

"물론이지. 위대하고 빛나는 미래가 인간들을 기다리고 있네. 이 땅에 자네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미래는 더 빨리 실현될 걸세. 위대한 발견을 위해 일하고, 의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네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인류의 삶은 정말 무가치하겠지. 그저 자연의 순리를 따라 흘러가며 지상에서의 삶이 끝나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을 걸세. 하지만 자네 같은 사람들이 수천 년은 빨리 인류를 영원한 진실의 왕국으로 인도할 걸세. 자네들의 위대한 운명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거지. 자네들은 인간 속에 잠들어 있던 신의 축복을 체현하는 자들일세."

"그렇다면 영원한 삶의 목적은 뭐지?"

"모든 삶의 목적이 그렇듯 기쁨이지. 인식에서의 진정한 쾌말 말일세. 영생은 무한한 인식의 원천을 제공해줄 걸세. 바로 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는 것이지.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즐겁군!"

"나도 기쁘네."

"하지만 당신이 가고 나면 당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나를 괴롭히겠지. 당신은 환영, 환각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난 정신병자에 비정상적인 인간이란 얘긴가?"

"그렇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자네가 아픈 건 무리하게 일해서 지쳤기 때문이고, 그건 자네가 스스로를 이념의 제단에 바쳤단 이야기이자, 자네 인생 자체를 이념에 바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이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나? 이거야말로 재능을 타고난 모든 고결한 인간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가."

"자신이 정신병자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자네는 왜 온 세상이 신뢰하는 천재들이 환영을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요즘은 학자들도 천재성은 광기와 유사한 거라고 하지 않나. 이보게, 평범한 군중들이나 건강하고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게야. 삶의 목표를 현재에서 찾는 군중들이나 병적인 시대, 과로, 쇠퇴 같은 문제들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거라네. 건강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군중에게로 가게."

   

- 안톤 체호프, <검은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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