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철학

December 13, 2017

“계보학은 해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도 한다.”

"La généologie n'interprète pas seulement, elle evalue."

   

 

 

계보학은 니체의 사유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의 개념이자, 또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니체에게 있어서 계보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니체가 현대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 바로 계보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철학은 자신의 역사를 통틀어 세계의 근본 원리를 밝히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전통 이래 철학은 세계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확인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줄곧 씨름해왔지요. 많은 대답이 있었습니다. 맨 먼저 고대 그리스인들이 만물의 근원을 물이나 불, 공기처럼 경험 세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질에서 추상한 요소로 제시한 적도 있었고, 이를 종합해 세계를 이루는 최소한의 물질 단위로서 원자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단순히 물질만으로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가, 그것을 규정하는 논리적 근거나 속성이 함께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비판 아래 이데아론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규정하려는 시도도 있었지요. 또한 질료, 형상, 운동, 목적 등의 원인을 세계의 근원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물질과 정신, 신이나 이성 등 다양한 해답이 차례로 등장해 경합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과정은 철학사가 이루는 장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면 이러한 생각들에는 타당하지 않아 보이는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미성숙한 몰이해로 취급하기보다는 그러한 사유가 등장했던 고유한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조금은 더 온당한 관점이겠지요.

 

어쨌거나 니체에게 계보학이 중요한 까닭은, 니체가 철학의 근본 문제를 정면돌파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방금 매우 간략하게 일별한 것처럼 철학사는 세계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수많은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니체는 이 문제를 ‘힘(Macht)’과 ‘의지(Wille)’라는 개념으로 돌파합니다. 계보학은 이 힘과 의지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이자 니체가 힘과 의지라는 근본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던 방편이기도 합니다.

 

들뢰즈는 마치 건물을 짓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주춧돌을 차례로 먼저 배치하는 것처럼, 가치, 의미, 힘과 같은 니체의 핵심 개념을 시작부터 쏟아냅니다. 앞선 세미나에서 한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당연히 들뢰즈의 짤막한 설명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입니다. 아직 의미가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요. 미리 건물의 설계도를 알고 있거나 지극히 노련한, 예컨대 벽돌만 슬쩍 보고도 건물 전체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아주 경험이 많은 건축가가 아니라면 주춧돌만 보고서 그 위에 올라설 건물을 온전히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철학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어떤 독특한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이 놓인 맥락과 체계를 이해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어떤 맥락과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루는 개념들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라고 볼 수 있겠군요. 책 속에서 문장은 앞의 문장을 밀어내고 뒤의 문장을 끌어당깁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이 쌓이고 접혀 하나의 책을 이루지요. 으레 앞장에서 뒷장까지 차례로 따라가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책을 다 읽었다 생각하기 쉽지만, 어떤 책들은 마치 곳곳에 달 세뇨(dal segno)와 다 카포(da capo)가 거듭 찍혀 있는 악보처럼 책 전체가 공명하며 교차합니다. 단순히 책이 그렇다기보다는 어떤 이념으로서의 하나의 체계가 그렇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겠지요.

 

니체는 하나의 대상은 단순한 물질이나, 혹은 선험적인 이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힘이자, 어떤 힘의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상과 힘의 관계는 한 번 형성되면 그것으로 그만인 관계가 아닙니다. 모든 대상이 어떤 힘의 표현이라면 결국 대상들의 관계는 힘들의 관계가 되겠지요. 힘으로서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곧 어떤 힘의 출현을 의미하고, 따라서 모든 힘은 본질적으로 다른 힘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즉 세계를 이루는 단 하나의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는 다양한, 다수의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떤 대상과 다른 대상의 관계는 곧 차이를, 보다 정확하게는 힘들 사이의 차이를 의미합니다.

 

들뢰즈는 니체를 통해 이러한 힘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명령하고 지배하는 힘과, 복종하는 수동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지요. 니체가 말하는 힘들의 우열, 명령과 지배의 관계를 흔히 인간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권력관계로 환원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기에서의 위계는 선험적이고 절대적인 위계, 즉 힘들의 종류가 정해져 있어서 특정한 힘이 다른 힘에 비해 무조건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힘들의 위계는 힘들 사이의 관계 속에 존재하지만, 관계 속에서 이 위계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적극적인 것과 반응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장 전부를 할애해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우리도 일단 본격적인 논의는 뒤를 위해 남겨두고 일단 계보학이라는 문제에 집중하도록 하지요.

 

힘들의 위계가 바뀔 수 있다면 대상을 점유하는 힘 또한 바뀔 수 있겠지요? 하나의 우세한 힘이 점유하고 있던 대상은 힘들의 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다른 힘에게 점유될 수 있습니다. 대상의 의미가 그 자체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예컨대 ‘벽돌’이라는 대상의 의미가 그것의 기본 정의에 따라 건축에 필요한 재료의 일종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쓰임새에 따라 벽돌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겠지요. 건물의 외벽이었던 벽돌이 화분 받침이 될 수도 있고 김치독 위의 누름돌이 될 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손에 들려 다른 사람의 머리를 내려치는 둔기가 될 수도 있고 바닷속에 가라앉아 따개비의 집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요. 한 장의 벽돌이라는 대상이 갖는 의미는 이처럼 벽돌 그 자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가, 즉 어떠한 힘이 그것을 점유하고 있는가, 어떠한 힘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이 표현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었습니다만 단순히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상의 의미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역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대상을 점유하는 힘들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곧 계보학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니체는 계보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대상을 현재 그것을 점유하고 있는 힘으로부터 박탈하여 현존하는 가치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을 수행하지요.

 

이러한 니체의 방법은 오늘날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계보학의 진정한 의미는 사실 훨씬 급진적입니다. 흔히 계보학이 어떤 대상의 기원이나 그것을 둘러싼 힘들의 변천사를 밝히는 것을 겨냥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상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힘으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곧 기원이라는 관념 또한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기원 역시 일종의 허구에 불과하다면 계보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다름 아닌 해석의 역사이며, 대상을 점유했던 힘들의 역사가 되겠지요. 따라서 이러한 관점은 계보학이 해석해야 할, 혹은 계보학이든 다른 어떤 방법이 되었든 해석해야 할 대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계보학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대상의 해석과 이해에 탁월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가 진리라는 이름을 통해 주장하는 것, 즉 이것이 옳고 이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유에 대해 탁월한 해독제로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니체가 즐겨 사용한 표현처럼 망치처럼 이러한 주장들의 허구성을 분쇄하기 때문이지요. 진리는 오로지 자신이 해석이라는 것을 은폐하는 한 진리로서 기능합니다. 계보학은 진리의 위장술을 들추어 그것을 하나의 해석으로 선언하지요. 물론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보학 자신 역시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함께 도출되니까요. 이로부터 계보학은 다른 무엇보다 자기자신을 끝없이 해석하고, 매번 다시 해석해야 하는 것을 의무로 갖습니다. 계보학의 진정한 의미는 무한한 쇄신에의 요구 앞에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니체가 자신을 심리학자로 소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 (후략)

 

 

 

2017. 12. 13. / Alter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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