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 대하여

October 20, 2017

소크라테스: 깊은 지하로 이어진 동굴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동굴의 입구는 밝은 빛을 향해 열려 있지만 동굴 속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여 제자리를 떠날 수 없고, 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입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요. 그들의 등 뒤편에 있는 동굴의 입구에서는 불빛이 들어와 그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상한 장소와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실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좀 더 살펴볼까요?

자,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입구 바깥에서 움직이는 동물이나 다른 사물들의 그림자가 동굴 벽면에 비친 형상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들로서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짜 사물인지, 아니면 그것의 그림자인지 분간할 도리가 없지요. 눈 앞에서 춤을 추는 그림자의 형상을 보더라도 본체가 움직이니까 그림자가 따라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림자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겠지요. 평생 동굴 밖으로 나간 적도 없고,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 이들은,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그림자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착각할 겁니다. 동굴 밖의 세상이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런 사람들 여럿이 모여 서로 자기가 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당연하게도 자신들이 본 그림자가 진짜 세상의 모습이라는 믿음은 갈수록 더 단단해질 겁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쇠사슬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자신의 눈에 비친 그림자를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고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사슬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가 일어서서 입구로 나가도록, 불빛을 똑바로 쳐다보도록 요구 받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두말할 것 없이 고통을 호소하겠지요. 오랜 시간 사슬에 묶인 채 제한적으로만 움직였던 팔다리를 제 힘으로 힘차게 움직인다면, 또 어두운 동굴 속 환경에 익숙한 눈, 그림자만을 바라보던 어두운 눈으로 밝은 빛을 똑바로 바라본다면 당연히 고통스러울 겁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지금까지 당신이 보고 있던 것은 하찮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당신은 지금 진짜 세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저 밝은 불빛 너머에 진짜 세상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혹은 그를 붙들고 동굴 입구로 끌어당기면서, 그가 팔다리의 고통과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밝은 빛으로 인한 눈의 아픔을 호소해도, 그의 눈 앞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를 일일이 가리키며 그것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한다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당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겠지요, 사슬이 없어도 주저앉으려 할 것이고, 불빛이 아닌 어둠과 그림자를 향해 눈을 돌리려 할 겁니다. 당연히 괴로워하며 반항하겠지요. 자신이 보고 있던 그림자, 자신이 살던 동굴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자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그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칩시다. 거의 끌려 나왔을 그가 처음부터, 동굴을 벗어나자마자 세상을 똑바로 보는 게 가능할까요? 그럴 리 없을 겁니다. (캄캄한 곳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익숙해지기 위해 얼마간 시간이 걸리는 건 물론, 잘 생각해보면 불빛이 처음 들어온 그 순간은 고통으로 인해 눈을 찌푸리거나 언뜻 감았다가 다시 뜨지 않고서는 빛을 똑바로 볼 수 없어요.) 동굴 밖 진짜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차츰 사물들을, 또 빛 그 자체를 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러고 나면 마침내 그는 동굴에서의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불쌍한 수인들! 앞뒤 분간 없이 뒤섞이는 그림자들 앞에 앉아서는 서로 자기가 보는 것이 옳다고 다투는 모습이라니.’

 

 

 

2017. 10. 20.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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