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대하여

October 15, 2017

소크라테스: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그것의 일부는 사랑하고 다른 일부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컨대 애주가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무더위 속 맥주 한잔을 좋아하거나 일과 후 친구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며 곁들이는 와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를 애주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겁니다. 술이라면 가리지 않고 온갖 상황에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 때로는 갖가지 핑계를 만들면서까지도 정말 술을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애주가라고 볼 수 있겠지요.

누군가 그것을 원한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것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단순히 그의 목소리나 생김새, 직업이나 신분 등 그가 가진 어떤 요소들을 사랑하는 것과 다른 것처럼요. 마치 이것저것 음식을 가리는 사람을 배가 고픈 사람, 또는 입맛이 당기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과 다릅니다. 그럴싸한 이야기, 자신에게 유용하게 보이는 어떤 지식만을 골라서 편식하고자 하는 사람은 짐짓 지혜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특히 무엇이 자신에게 정말 유익한지 판가름하기 어려운 지식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단순히 보고 듣기만을 좋아하는 사람들, 지혜의 거짓 숭배자들은 참된 지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알고자 하는 대상의 본성에 대해 알 수 없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면 이런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나 색깔, 형태나 특징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또 이런 것들이 드러나는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아름다운 것들, 아름다움의 사례가 아닌 아름다움 그 자체, 아름다움의 본성에 대해서는 볼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아름다움 그 자체에 다가가서 그것을 그 자체로서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만약 아름다운 것들이 실재한다면, 그것들을 아름답다고 인지할 수 있는, 즉 그것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어떤 본성 또한 실재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누군가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아름다움 그 자체, 아름다움의 본성이 존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있을까요? 어불성설이지요, 어떤 것의 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지식도 불가능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꿈처럼 혼미한 상태에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가진 생각을 참된 지식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는 그저 꿈을 꾸듯 자신 속에 갇혀, 혼자만의 생각을 가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017. 10. 13.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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