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에 대하여

September 22, 2017

트라쉬마코스: 당신은 목동이 양 떼나 소 떼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가 무리를 살찌우고 돌보는 까닭이 뭔가 다른 것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양 떼로 여긴다는 사실을, 그리고 밤낮으로 이들을 이용할 궁리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의와 불의를 판별하는 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도 실상 정의는 부와 권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익한 것이고, 대다수의 힘 없는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이지. 힘 있는 사람이 정의를 갖는다오, 선생. 약자들은 정의를 따른다는 구실로 오히려 그들을 도울 뿐이지.

순진한 소크라테스 선생, 그대는 현실에서 정의를 믿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불리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어요. 두 사람이 어떤 계약을 맺는다고 생각해 볼까요? 계약이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성될 것 같소? 정의로운 사람일까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든 취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사적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오. 똑같은 돈을 번다고 해도 불의한 사람은 정직한 사람보다 세금을 덜 낼 것이고, 그런 만큼 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겠소? 국가로부터 무언가 받을 혜택이 있다고 해도 정직한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반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큰 이득을 볼 것이오. 이 사람들이 관직을 맡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올바른 사람은 공무를 살피는 동안 자신의 살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형편이 어려워질 것이고, 정의를 믿는 그의 성품 까닭에 공금을 유용하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사로이 이익을 꾀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오. 게다가 은연 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바라는 친척이나 지인들의 바람을 외면한 대가로 이들의 미움까지 사게 되겠지요. 그러나 불의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이와 반대입니다.

세상을 한번 보세요, 개인의 재물이든 공공의 자산이든, 남의 재물을 강탈하고 범죄를 일삼는 불의한 자들이 누리는 사치와 행복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마 이런 범죄를 하나씩 저지르다 체포되는 사람이 있다면 법의 처벌을 받거나 심한 치욕을 당하겠지요. 하지만 누군가 마치 그것을 정당한 일인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든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는 대신에 그가 누리는 축복을 부러워 할 겁니다. 소크라테스 선생, 이렇듯 불의는 대규모로 저질러지면 정의보다 더 강력하고 자유롭다오. 앞서 내가 말했듯이 정의는 강자의 유익을 대변할 뿐입니다. 불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불의 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불의를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에 불의를 비난하는 것에 불과해요.

 

아데이만토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절제와 정의를, 정직하고 성실한 성품을 훌륭한 미덕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정말로 신실하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오히려 사람들은 내심 그것들을 죄다 번거롭게 여기고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지요. 또 겉으로는 다들 방종과 불의를,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성품을 수치스럽게 여기면서도 뒤로는 다들 거리낌없이 이런 행동들을 일삼지 않나요?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불의한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조차 불의를 저지른 사람들이 재산이 많고 권세가 등등할 때에는 기꺼이 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잖아요? 그런가 하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무력하고 가난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경멸하고 무시하기도 하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의를 찬양하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죄다 정의 그 자체가 아닌 정의가 받을 보상을 찬양하는 것 같은데요. 악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불의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 불의가 받을 처벌과 심판 때문에 나쁜 것으로 묘사될 뿐, 악행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지요. 부나 명예, 행복과 같은 보상을 제외하면 올바른 행위 그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쩐지 막연하게나마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고 정의는 좋은 것, 불의는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싶겠지만, 올바른 행위 그 자체를 고귀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자 그러니 선생, 대가 없는 정의가 그 자체만으로 좋은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소? 도대체가 보상이나 대가 없이 정의를 논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요? 올바르게 살아야만 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겠냐는 말이오.

 

 

 

2017. 9. 22.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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