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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6, 2017

결국 권위란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근거할 수 없다. 권위의 원천, 법의 논증과 토대, 규범의 제정과 집행은 그 자체로 근거 없는 강제력을 이룰 뿐이다. 따라서 어떠한 권위에서도 올바름과 정의를 연역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의 해체가 정의이자 올바름이다. 정의는 오로지 해체된 상태로만 존재하며, 그러므로 정의는 불가능한 것의 경험을 의미한다.

불가능한 것으로서 정의는 도래해야 하며, 동시에 도래하는 것으로 머무른다. 정의는 그 자체로 미래이자 자신만의 미래를 갖는다. 정의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차원에, 축약할 수 없는 도래 가운데 존재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의 구상이며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열망이고 미지에 대한 꿈이자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약속이다. 그러나, 정의의 약속은 지금 여기에 분명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미래의 시간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정의는 경험적인 동시에 초월적이다. 정의는 자신의 해체에 대한 여지를 허용하는 한, 그래서 스스로를 재검토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한 비로소 정의로울 수 있다. 정의의 자리는 오직 그것이 현재의 자리가 아닌 미래의 자리를 주장할 때 현실에 주어진다.

그래서 정의를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아마도'를 함께 말해야 한다. 정의는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정의를 먼저 요구한다. 즉 우리는 정의에 대해 먼저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해석해야 한다. 정의가 어디에서 오는지, 정의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의가 어떤 언어와 표현 속에 도래하는지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정의로워진다는 것은 정의라는 말이 행해지는 삶의 테두리를, 그 유래와 지향을 동시에 헤아리는 일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삶의 일상적인 사소함에 충실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더 줄여 말하면, 그것은 주의하는 일, 존재하는 것들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측면에까지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다.

   

- 프란츠 오르틀러, <도래한 것과 도래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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