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id Modern World: Cultural Elite

July 28, 2017

흔히 일상에서 연령이나 특정 시기에 대한 경험을 중심으로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일컬어 ‘세대’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경우라면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 집단을 가리켰던 ‘386세대’나 청년 문제와 세대 불균형을 지적하며 등장했던 ‘88만원 세대’ 같은 표현들이 있겠군요. 표현의 의미는 다릅니다만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게 일본의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사토리(さとり) 세대’라는 개념도 있겠고요.

 

세대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될 때까지의 대략적인 시기를 뜻하며, 통상 약 30년 정도를 가리킵니다. 특정 사회나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유효한 틀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막연한 개념이지요. 독일의 사회학자 칼 만하임은 이 세대라는 단위를 학문적으로 문제화합니다. 만하임은 ‘세대 문제’라는 에세이에서 기존의 사회학이 사회 변혁의 중요한 동인으로 생각했던 계급이라는 단위가 아닌 세대라는 단위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계급과 마찬가지로) 세대가 사회 변동의 중요한 행위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하지요.

 

만하임이 제시하는 세대 개념은 일반적으로 사회학에서 조사의 주제와 관련된 특정한 공통 집단을 가리키는 ‘코호트(cohort)’와는 전혀 다릅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이 제시하는 지식이론과 계급중심성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 만하임은, 특정 의식으로 무장한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적극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세대 위치(generation location), 실제 세대(generation as actuality), 세대 단위(generation unit)라는 개념을 제시하지요. 만하임에 따르면 세대 위치는 객관적으로 규정되는 잠재적 그룹으로, 명백한 행동, 감정, 그리고 사유의 양식을 하나의 내재하는 경향으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재적으로 함축하고 있을 뿐, 세대 위치가 실제 세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적 통일성이라는 공동 운명에 대한 참여가 필요하지요. 여기에서 참여에 대한 요청은 동일한 세대 위치에 있는 개인들 사이의 실질적인 연대에 대한 경향으로 이어집니다. 실제 세대는 일종의 하위 개념이나 집합으로서 세대단위들로 분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화된 세대단위들이 보여주는 내적 밀도는 실제 세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다고 만하임은 보고 있습니다, 예컨대 19세기 초반 독일의 청년 세대(실제 세대)는 합리적이고 자유주의적 집단(세대 단위 a)과 낭만적인 동시에 보수적인 집단(세대 단위 b)으로 분화된 바 있지요.

 

한편 그렇다면 세대 위치를 특정 짓는, 즉 세대라는 집단을 만들어내는 힘은 무엇일까요? 아마 단순히 세대가 공유하는 내용과 이 힘을 등치 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세대가 공유하는 내용은 세대를 만든 어떤 힘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지요. 만하임에 따르면 세대를 만드는 힘은 모종의 형성적 경향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힘은 사람들을 함께 묶을 수 있고 일상적인 구호나 상징으로부터, 이성적인 사유 체계, 명백하고 고립된 몸짓이나 완성된 예술작품 등 다양한 대상 속에서 작용합니다. 세대는 세계와 사건을 해석하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선험적인 인지틀(gestalt)을 공유하는데, 이것은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불변의 심층구조라기보다는 구성원들이 형성하는 구체적 집단들에서 생성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되는 일종의 수행규칙들에 가깝습니다.

 

한편 만하임과 달리 부르디외는 여전히 계급이라는 단위를 중요한 분석의 틀로 사용합니다. 오늘 함께 다룬 편지에서 바우만은 10대들의 소비 성향을 바라보며 인정 받고 존중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갖추는 것을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의 핵심으로 제시한 바 있지요. 부르디외는 인정과 존중을 위한 요소들이 서로 다른 집단에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는 경제자본이나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을 통해 계급을 정의하고, 이에 따라 계급을 분류한 뒤 계급 구성원들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취향 사이에는 결정적인 구분이 존재하고, 나아가 취향의 차이가 계급간의 차별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지요. 부르디외의 흥미로운 분석은 바우만이 오늘날의 소비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시각과도 흥미롭게 교차합니다. 근대 이전의 세계에서 취향이 누군가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특별한 요소였다면, 오늘날의 세계에서 취향은 한편으로 여전히 누군가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기능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인간 다수의 갈망과 결합하여 소비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하기도 하니까요.

 

 

… (중략) …

 

 

만하임이 제시한 세대라는 개념은 이후 사회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통용됩니다. 꼭 학문 영역이 아니더라도 세대에 대한 만하임의 분석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소 막연하게 통용되는 온갖 종류의 ‘-세대’라는 분류 기호가 갖는  단위로서의 유효성과 실질 집단의 사회적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훌륭한 이론적 지평을 제공합니다. 이론의 힘, 이론의 재미가 이런 것이지요.

 

물론 만하임의 생각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도 가능합니다. 우선 만하임의 세대 개념은 특정 사건이 야기한 영향을 의식적으로 공유하는 역사적 세대, 예컨대 프랑스의 68세대나 한국의 386세대와 같은 특정한 세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그런 체험을 공유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세대’들에 대해서는 별로 설명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즉 ‘-세대’라는 이름을 획득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신통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세대는 연속이 아닌 특정한 불연속 집단을 가리키는 단위로 사용하는 편이 더 적절할까요?

 

프랑스의 사회학자 올리비에 갈랑에 의하면 만하임처럼 세대를 역사적 의미에 국한하여 파악하는 것은 세대 개념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갈랑은 비록 모종의 외상적 사건을 동시적으로 체험하고 그 결과 자신 세대에 강한 소속감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사회구조적 영향력이 형성한, 그리하여 다른 세대들과 구분되는 의식, 태도, 가치를 공유하는 연령집단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강한 소속감이나 정체성은 없지만, 다른 세대들과 명확한 경계를 형성하는 집단으로서의 세대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점을 확장한다면 특정 세대는 집합적 이해관계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세대들과 구분되는 특정한 사회화의 방식들을 갖고 있는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요.

 

또 만하임이 세대에 부여하는 행위능력에 대해서도 한 번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만하임이 제시하는 세대이론의 핵심은 세대의 변동론적 성격에 있는데, 만하임에 따르면 단위세대가 역사의 변화를 추동하는 행위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정 세대가 사회변동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적의 일반적인 상황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특수한 예외에 가깝습니다. 다수의 사회적 세대들은 변동의 주체라기보다는 사회변화에 의해 구성되는 주체 위치들의 집합인 경우가 더 많지요.

 

이 문제는 특히 요즘 한국의 청년 세대들의 문제를 다룰 때 더욱 중요합니다. 대체로 이들은 자신들보다 앞선, 영웅적 청년 세대들과 현격한 차이를 노정하는 존재들로 간주되기 때문이지요. 전쟁 직후의 폐허에서 기적과 같이 경제 성장을 이룬 한국의 전후 세대나 민주화를 포함해 사회 각계에서 발전을 이끌었던 소위 80년대 대학생 세대에 비해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 세대는 상대적으로 무력한 세대로 그려지기 일쑤입니다.  이들은 정치보다는 경제나 문화가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이념이나 대의에 동원되는 모습보다는 미시적이고 생활세계적인 삶의 양상들에 더 많은 에너지와 관심을 쏟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만하임이 그리는 것처럼 능동적인 ‘세대’보다는 바우만이 언급하는 것처럼 유동하는 근대가 유혹하고자 하는 하나의 ‘고객층’의 모습에 더 가깝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사회의 변화가 어떻게 특정 세대의 등장으로 이어지는가, 즉 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특정 세대가 공유하는 사회적, 문화적 특성들을 주조하는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겠지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7. 7. 28. / Sutome Apothecary

info@labyrinthos.co.kr

Please reload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