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July 24, 2017

서정이 새로움을 극단적으로 추구할 때, 그것의 경계는 유동하고 불분명하게 변합니다. 시라는 외관과 기왕의 업적이 시적인 것을 자동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때, 시적인 것은 때로 시와 갈등하고 자신이 담길 그릇으로서 시의 외형을 새로이 모색합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말이 더욱 절실해지는 것처럼, 시적인 것은 때로 시의 국경 바깥에서 더 간절하게 회귀를 시도하지요.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

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

그는 어떤 배역 속에서건 자주 사라진다

일찍이 그것을 예감했지만

한 발이 없는 고양이의 비밀처럼

그는 어디로 나와

어디로 사라지는지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다

입김은 수없이 태어나지만

무대에 한 번도 나타나서는 안 된다

매일 그는 자신이 지은 입김 속에서 증발한다

종일 그는 자신의 입김을 가지고

놀이터를 짓는 사람이다

입김만으로 행렬을 만들고자

그는 일생을 다 낭비한다

한 발을 숨기고 웃는 고양이처럼

남몰래 출생해버릴래

입김을 찾기 위해

가끔 사이렌이 곳곳에 울린다

입김은 자신이

그리 오래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무리 속에서 헤매다가

아무도 모르게 실종되곤 했다

사람들은 생몰을 지우면

쉽게 평등해진다고 믿는다

입김은 문장을 짓고

그곳을 조용히 흘러나왔다

('시인의 피' 전문)

 

 

... (중략) ...

 

 

근본적으로 1인칭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서정은 선언적 진술로서 자신의 타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선언의 진실성은 선언과 세계의 결박 사이에 존재합니다. 선언하는 자는 결박 속으로 사라져야 하고요. 그가 드러나는 것은 결박하는 힘을 드러내는 것이고, 결박하는 힘에 의해서 결박이 지탱된다는 것은 그만큼 약한 결속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술하는 주체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자신을 숨기고 선언과 세계를 가장 견고하게 결박해야 합니다. 결박의 이음새를 봉합하고 숨기면서, 마치 처음부터 선언과 세계가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이 결박이 느슨할 때 서정의 진술은 '생각한다', '느낀다', 와 같이 암묵적으로 동의와 도움을 요구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세계를 움켜쥐지 못한 서정, 세계를 제 몸에 결박하지 못한 서정은 제 힘으로 자신이 돌아올 자리조차 온전히 확보할 수 없지요. 어쩌면 서정은 용기라는 재능의 산물입니다. 나아가고 움켜쥐고 최종적으로는 사라지는 것까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7. 7. 24. / Alter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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