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의 이야기도 아닌 모두의 이야기

May 27, 2017

대개 공산주의라는 이름에는 마르크스라는 이름표가 꼬리처럼 따라붙습니다. 물론 소유의 특정한 형식과 생산양식을 가리키는 ‘공산주의(communism)’와 달리 철학적 사상이나 이론으로서의 관점을 가리키는 ‘마르크스주의(marxism)’라는 표현이 따로 있습니다만,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일종의 대명사처럼 공산주의를 따라다니지요. 공산주의와 유사한, 혹은 공산주의가 갖는 특징들을 공유하는 제도나 사상은 멀게는 플라톤의 <국가>나 원시 기독교 공동체 등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모두 공산주의라고 일컫지는 않지요.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현실에 등장한 정치 세력이나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회 제도를 가리키는데, 공산주의 사상에 입각해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연방을 설립한 소비에트나 오늘날까지도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활동 중인 사회당, 공산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공산주의를 지지하거나 주장하는 사상가들은 마르크스 이외에도 꽤나 많습니다만 그가 오늘날까지도 공산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상의 독창성이나 영향력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마르크스가 당대의 어떤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했고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사실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진다면 마르크스의 믿음은 틀린 셈입니다, 뭐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마르크스는 가장 발전한 산업 사회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폭발하고 공산주의 혁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측과 달리 공산주의 혁명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사회였던 러시아에서 발생했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의 혁명이라기보다는 봉건 질서의 모순에 저항하는 농민을 주요 동력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정치 실험이라는 결말로 끝났고요. 러시아 혁명, 혹은 소비에트 혁명의 내용과 의미는 이 자리에서 모두 다루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함께 천천히 살펴보시지요. 어쨌거나 그럼에도 사상적으로, 또 구체적인 현실에 있어서도 마르크스의 주장은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것도 일단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는 것으로 미뤄 놓아야겠군요.

 

한참이나 긴 우회로를 거친 까닭은 그람시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마르크스 이후로 ‘마르크스주의자(marxist)’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상가들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이들의 작업은 주로 마르크스를 계승해서 그가 실패한 지점을 해명하고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청년 마르크스가 저 유명한 테제에서 밝히듯이 이전까지의 철학이 현실을 해석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마르크스는 이제부터 철학은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천명하는데,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사상가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지점이기도 하지요.

 

마르크스는 그가 개진한 (미완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체제의 모순을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단결을 촉구하면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적어도 지금까지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틀렸습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은 단결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본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요. 뭐 이제는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공산주의니 혁명이니 이런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요.

 

어쨌거나 마르크스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왜 실패했는가에 주목하고 이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람시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람시의 사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헤게모니(hegemony)’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입니다. 생산양식이나 교환, 분배와 같은 경제 영역, 즉 하부구조에 속하는 활동이 그 사회의 특징을 결정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와 달리, 그람시는 오히려 사람들의 의식이나 생각, 문화양식 같은 상부구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눈속임처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을 결정하는 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힘의 영향력 아래에서 사람들은 실재하는 현실의 여러 모순들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바로 이 힘을 가리켜 그람시는 헤게모니라고 부릅니다. 지배 계층, 혹은 기득권층이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이들은 유산계급에 해당하겠지요.) 자신들에게 유리한 현실의 조건들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사람들의 의식을 특정한 방식으로 정향한다는 것이지요.

 

관점이 이렇게 바뀐다면 현실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접근도 따라서 바뀝니다. 하부구조가 그 사회의 특징을 결정한다고 생각한 마르크스의 관점에 따르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은 결국 경제 영역에서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시 경제 영역에 있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반면 그람시처럼 현실의 문제들을 직시하거나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드는 모종의 힘이 함께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면 제도적, 문화적 조건들의 작동 또한 함께 생각해야겠지요. 또 단순히 부의 배치나 분배를 문제 삼는 것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람시가 제시한 개념 가운데 헤게모니 만큼이나 흥미로운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라는 개념이지요. 라틴어 레그넘(regnum)은 왕, 또는 왕국을 의미하는데, 인터레그넘은 말 그대로 왕과 왕의 사이, 즉 왕권이 다음 왕에게로 넘어가는 시기를 가리킵니다. 왕국이 왕의 통치로 이루어진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의 왕국을 이루던 질서가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람시는 당대의 위기를 진단하며 낡은 것은 소멸해 가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서 근거를 찾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를 가리켜 인터레그넘이라고 지칭하지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람시의 생각을 오늘날 다시 소환하는데, 그는 오늘날의 세계가 인터레그럼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국민국가(nation-state)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세계 질서는 세계화로 인해 견고함을 상실했고 기존의 정치 질서를 특징짓는 영토, 국민(또는 인구), 주권이라는 세 가지 요소 또한 그 의미와 효력이 달라졌으며 이에 따라 통치 질서 또한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바우만은 이러한 현실을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흐르듯 출렁이는 시대, 기대도 전망도 불투명한 희뿌연 조류의 시대입니다.

 

 

... (중략) ...

 

 

현대 정치에서 정치적 주체의 문제가 갖는 중요성은 인터레그넘의 문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곧 이전의 통치, 이전의 정치체, 이전의 문명에서 정치의 주체로 존재했던 것들이 더 이상 정치적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반면, 새로 나타날 정치적 주체는 누구인가, 어떤 정치적 주체가 새로운 통치와 정치체, 문명의 주체가 될 것인가의 문제는 불확실하게 남겨져 있는 상황이지요. 통치의 문제를 단순히 정치권력의 획득이나 행사의 문제가 아니라 푸코가 제시하는 통치성(governmentality), 즉 미시적인 일상에서 가능과 불가능을 나누고 인간을 관리 대상으로 삼는 모종의 힘의 관계라고 본다면 결국 정치적 주체의 문제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관련한 문제가 됩니다. 즉 전처럼 말하고 전처럼 행동하고 전처럼 생각하고 전처럼 느끼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낄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진태원은 국민, 민중, 인민 등의 개념과 아감벤, 랑시에르, 라클라우가 제시하는 포폴로(popolo), 푀플(peuple), 피플(people)의 개념을 검토한 뒤, ‘을’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제안합니다. 을은 둘 이상의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때 그중 하나의 이름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 혹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둘째를 이르는 말입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을은 아주 평범한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을은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대기업의 하청 업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들, 또는 재벌 기업의 횡포에 피해를 당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혹은 대칭적인 의미에서 ‘갑질’의 대상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을은 약자이자 피해자, 못 가진 자, 배제된 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몫 없는(sans-part) 이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인 것이지요.

 

진태원에 따르면 을이라는 이름은 그 이면에 몇 가지 현상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을이라는 말에는 한국 사회에서 동료인 구성원들에게 지배되거나 모욕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 더욱이 그들이 다수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럼에도 이들을 가리키는 적절한 개념이 부재한다는 것은 (앞서 ‘국민’, ‘민중’, ‘인민’ 등의 개념이 이들의 의미나 역량을 포착하고 다루는 것에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검토했었지요.) 한국 현대사에서 (간헐적인 봉기의 순간들을 제외한다면) ‘다수’로서의 이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또 갑에 의한 여러 억압과 주변화, 소외에도 불구하고 을들은 ‘과소 주체적’으로 실존하고 행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진태원의 제안은 이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우리의 정치체에 이들의 몫과 자리를 배정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에서 이들이 한 번도 꼭 맞는 이름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한 번도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결국 그렇다면 이들 다수가, 다수인 이들이 가졌어야 할 몫이, 이들 각자가 마땅히 가졌어야 할 몫이 뭔가 다르게 분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진태원이 제시하는 을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에 수긍을 하든 아니든, 어쨌거나 시대는 변화했고, 새로운 주체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요즘 시국을 보면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큰 것 같지만, 전과 다르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어떤 식이든 다 좋다는 것은 물론 아닐 겁니다.

 

작고한 어떤 전직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었다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그 가운데 자신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고, 자리들에 대한 고민 또한 마찬가지로 결국 시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결국 한 사회 안에서 몫과 자리와 시대는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지요. 젊은이를 향한 충고와 젊은이들에게는 충고가 필요 없다는 충고가 어지럽게 엇갈리는 요즘이지만, 정작 젊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도 위로도 도움도 아닌 바로 이 당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음이 갖는 여러 특징이 있겠습니다만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많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결국 누구보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젊은이들이기 때문이지요. 미래는 당대에서 탄생합니다. (혹은 당대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도 좋고, 아니면 이들이 곧 당대를 미래로 연결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에 대한 가장 진지한 고민이자 미래에 대한 가장 견고한 대비는 시대에 대한 고민이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또 자신의 자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7. 5. 27. / 곰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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