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Controls Whom?

May 13, 2017

2013년 8월 13일 미국의 유명 래퍼 켄드릭 라마가 ‘컨트롤(Control)’이라는 곡을 발표합니다. (정확히 따지면 이 노래는 ‘빅 션’의 곡입니다. 라마는 여기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요.) 발표 직후 이 곡은 뜨겁게 화제를 모았는데, 특히 라마가 노랫말에서 당대의 유명 래퍼들을 직접 호명하며 이들을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도 래퍼들 사이에서 소위 누군가를 ‘디스’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개인적인 대립 관계에서 특정인을 디스하거나 상대 진영에 (예컨대 서부와 동부와 같이) 속한 래퍼를 디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반면 라마는 동서부를 가리지 않고 (크게 동서부로 나뉘는 미국 힙합계의 지형에서 라마는 서부 진영에 속합니다.) 동시대 래퍼들을 일일이 언급하여 동료 래퍼들을 자극합니다. 에미넴이나 나스 같은 거물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이 곡이 발표된 직후 보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미국에서 23명의 래퍼들이 ‘켄드릭 라마 대응곡(Kendrick Lamar Response)’, ‘컨트롤 대응곡(control Response)’을 연달아 발표합니다. 각종 언론과 매체들 역시 여기에 관심을 보이며 누가 대응곡을 발표했는지, 또 트위터나 다른 방식을 통해 어떤 의견을 표명했는지에 주목했지요.

 

옆 동네 사정이야 그렇다 치고, 며칠 뒤 이 컨트롤이 한국에도 상륙합니다. 한국의 래퍼 스윙스가 동일한 비트 위에 가사만 바꾼 ‘King Swings’를 발표하면서요. 스윙스 역시 라마가 했던 것처럼 한국의 래퍼, 레이블, 크루 등을 직접 거론하면서 그들을 디스합니다. 다음날 스윙스가 지목한 어글리덕, 테이크원이 곧바로 대응곡을 발표했고요.

 

사건이 커질 기미가 나타났습니다. 8월 23일 슈프림팀의 이센스가 ‘You Can’t Control Me’라는 디스곡을 발표하는데, 소속사 수장이었던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디스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개코 역시 지지 않고 다음날 바로 대응곡 ‘I Can’t Control You’를 발표하는데, 동시에 사건에 얽히지 않은 다른 래퍼들까지 폭발적으로 대응곡을 발표하면서 8월 25일까지 약 1주일동안 총 37곡의 대응곡이 등장합니다. 힙합계의 작은 사건 정도를 넘어 대중문화 전체가 주목하는 사건으로 탈바꿈한 것이지요. 소위 ‘컨트롤 대란’이라고 하는 사건의 간략한 전말입니다.

 

성연주와 김홍중은 미국과 한국의 컨트롤 대란을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들은 대응곡들의 가사 내용을 비교하면서 몇 가지 중요한 특징에 주목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컨트롤 대란의 경우 래퍼들은 뚜렷한 지역 대립에 기반하고 있고, 자신의 소속 지역과 ‘구루’를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을 주요 특징으로 갖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쭐대듯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상대의 실력을 깎아내리고요. 반면 한국의 경우 개인의 외모나 몸매 등을 비난하는 인신공격형 디스가 주를 이룹니다. 소속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을 중심으로 한 상호 비난도 많이 등장하고요. 또 당사자들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각자의 사생활이나 사적 관계에서의 갈등, 연애사 등에 대한 폭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미국에서의 컨트롤 대란이 서로를 향한 디스 가운데서도 힙합계 전체의 문제와 발전을 모색하는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한국에서의 컨트롤 대란은 어쩐지 지극히 사적인 비난과 인신공격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디스’로 이루어집니다. ‘공적 디스’가 힙합계를 이루는 음악적 특징과 이러한 특징을 생산하고 활용하는 래퍼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모습으로 발현한다면, ‘사적 디스’는 개인적인 특징과 사건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적 갈등을 바탕으로 합니다. (물론 계약이나 이를 둘러싼 경제적 문제인 문제는 얼마간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컨트롤 대란의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것이 힙합계, 또는 가요계 전체와 연관된 맥락으로 다루어지기보다는 행위자 자신과 연결된 문제를 드러내는 맥락에서만 등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중략) ...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는 행위의 공적 성격을 보장하는, 행위에 공적 성격을 부여하는 장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논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면, 또 그 공간에 속하는 행위자들에 대한 규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의 견고함을 갖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 공간의 공적 성격 역시 위태로울 수밖에 없지요.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에 공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이 그 행위 공간이 축적하고 있는 공공성이라면, 그러한 두께와 견고함을 축적하지 못한 공간은 행위자들의 공적 지위를 지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 각 영역이 고유성을 갖지 못한다면 그 영역을 이루는 논의들 또한 그 영역에 걸맞은 고유한,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더 영향력이 강한 다른 영역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사적 행위만이 가능할 따름이지요. 예컨대 언론이라는 영역의 고유성을 사라지거나 약화된다면, 그 영역에 속한 행위자들의 행위가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이해관계 같은 다른 영역의 고유성에 종속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역시 더 이상 공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공적 공간이 행위자들의 지위를 지탱하지 못할 때 행위자들은 결국 사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7. 5. 13. / 곰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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