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uman Condition: Ch. 1, 2

May 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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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타당성(relevance)이 중요한 곳이라면 언제나 문제는 정치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정치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함께 대화할 수 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또 그 자신에게 유의미한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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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객관성, 즉 물리적 특성과 인간의 조건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인간의 삶은 이러한 사물로서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사물들의 의미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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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 삶(vita activa)이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위계 속에서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이 활동적 삶에 대해 갖는 상대적 우위는, 활동적 삶 그 자체가 갖는 의미와 명료성을 흐릿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우위는 폴리스(polis)와 정치적 존재(bios politikos)로서의 인간에 대한 그리스만의 특별한 질서 위에서 성립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관조적 삶을 중심으로 활동적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이들 가운데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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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immortality)은 시간 속에서 지속하며, 죽음이 없는 삶을 의미합니다. 마치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신들처럼요. 인간은 불멸하는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생식을 통해 종의 불멸을 보장 받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종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별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은 생물학적 순환운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운동하는 모든 것이 순환적 질서를 따르는 우주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직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 즉 개체로서 자신만의 탄생과 죽음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인간의 사멸성(mortality)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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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과제이자 잠재적 위대함은 말과 행동을 통해 존재할 가치가 있고 영속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바로 이러한 능력을 통해 모든 것이 불멸하는 우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합니다. 인간 자신만의 불멸을 획득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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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활동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살아간다는 조건 위에서 가능합니다. 특히 행위만큼은 인간 집단을 벗어나서는 완전히 불가능합니다. 가령 인간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무리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노동하는 존재는 상상할 수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행위는 당연하게도 타인의 존재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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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는 사적 영역으로서의 가정(oikia)과 공적 영역으로서의 폴리스의 구분이 선명했습니다. 가정은 필요와 욕구가 지배하는 영역, 폴리스는 자유의 영역이었지요. (물론 인간의 삶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정에서 충족하는 것은 폴리스에서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또 가정이 가장과 여성, 노예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철저한 불평등의 장소였다면, 폴리스는 지배나 예속과는 무관한 평등의 장소였지요. 폴리스에서의 자유는 (가정에서와 같은) 지배관계에 내재하는 불평등에서 벗어나 지배와 피지배 둘 다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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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활동이나 가정이 지녔던 특징이 공론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사회가 등장합니다. 이로 인해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선이 불분명하게 되었고, 두 용어의 의미와 이것이 인간의 삶에 대해 가졌던 의미 또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지요. 오늘날 우리는 흔히 사적인 것을 친밀성의 영역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관점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사적 생활의 박탈적 특징을 감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적(private) 생활은 문자 그대로 어떤 것이 박탈당한 상태를 의미하는데, 박탈당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적인 것, 그 가운데서도 가장 최상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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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라는 영역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근대 이후, 인간의 노동은 점점 더 완벽해지는 반면 행위 능력과 언어 능력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 부분 퇴보했습니다. 공적 영역을 이루고 있던 이러한 능력이 사적 영역으로 추방당했기 때문이지요. 즉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공간인 공적 영역이 사회로 대체되면서 공적 공간을 이루던 행위와 언어 또한 사적 공간으로 후퇴했고, 이곳에서 언어와 행위는 더 이상 인간의 탁월함을 담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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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 영역은 공동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을 결집시키지만 사람들이 마냥 뒤엉키는 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 사회를 견디기 힘든 까닭은 단순히 사람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가 사람들을 모으거나 엮거나 분리하는 힘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구성적 힘을 상실한 사회는 인간에게 오로지 사생활의 가능성만을 허용하고, 사생활 속에서 인간의 주관성은 다시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해집니다. 즉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경험하면서도 어떠한 객관성도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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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common world)에서 그것의 진위를 보증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본성(common nature)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상을 동일하게 식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세계의 동일성이 해체된다면 인간의 공통 본성이나 대중 사회가 강제하는 인위적인 순응주의로도 공동 세계의 파괴를 막을 수 없습니다. 공동 세계의 파괴 속에서 인간은 다른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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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상황에서 타인과의 객관적인 관계와 이러한 관계가 보장하는 현실성의 박탈은 고독이라는 대중적인 현상을 낳습니다. 특히 관계의 박탈은 가장 극단적이고 반인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고독이 공론 영역 뿐 아니라 종래에는 사적 영역의 파괴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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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적 영역의 박탈적 성격을 언급했지만) 사적 영역의 파괴가 야기하는 인간 실존의 위험은 사적 영역의 비박탈적(non-private) 성격을 고려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으로 가진 것과 사적으로 갖는 것의 차이는 사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소비하는 사적 소유물이 공동 세계의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또 사적 영역은 완전한 공적 영역에서의 삶, 즉 자신의 모든 것이 타인에게 노출된 삶으로부터 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고요. 물론 공적 영역에서의 삶은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보여야만 하는 것과 숨겨져야 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존재하니까요.”

 

 

 

2017. 5. 12.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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