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 Art, Nature and Genius

May 1, 2017

칸트는 취미판단의 네 가지 계기에 대해 고찰한 뒤, 취미판단의 구체적 대상에 대한 탐구로 넘어갑니다. 앞서 칸트가 제시한 취미판단에 대한 논증에 따르면 취미판단은 인간이 어떤 대상 앞에서 느끼는 쾌감, 쾌적함, 만족스러움에 대한 판단을 가리키며, 칸트는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는 판단의 대상을 가리켜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형식적으로 이러한 칸트의 접근은 우선 각각의 계기가 도출하는 (칸트가 말하는 계기의 의미를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속성을 제시한 뒤, 이러한 속성을 갖춘 판단의 대상은 아름답다고 판정하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취미판단의 형식과 내용을 밝힌 뒤, 칸트는 고개를 돌려 본격적으로 예술의 문제를 다룹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접근과 달리 여기까지 오기 위해 한참을 우회한 셈입니다. 흔히 미학이라고 하면 곧장 예술 작품이나 예술 일반에 대한 논의를 떠올리기 십상이니까요.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칸트에게 취미(감각, 아름다움, 예술...)의 문제는 대상에 속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먼저 취미판단의 계기와 특징을 탐구한 뒤에 그것의 대상의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칸트는 자연과 천재라는 두 개념을 중심으로 예술론을 개진합니다. 간단하게 윤곽을 먼저 그려볼까요? 칸트는 아름다움의 대상을 우선 자연과 기예로 구분한 다음, 취미판단의 대상을 자연이 아닌 오로지 기예에 한정합니다. (그렇다고 자연 개념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뒤에 살펴보겠지만 자연이라는 개념은 칸트의 예술론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기예는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 탁월하게 만드는 능력이나 그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데, 칸트는 취미판단의 대상으로서 기예를 숙련성에 관련한 학문이나 실천적, 기술적인 이론, 수공예와는 다른 것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취미판단의 대상을 오로지 미적 기예에 한정하지요. 칸트에 따르면 자연은 미적 기예의 필수요건입니다. 천재는 미적 기예에서 자연을 가능하게 하는 역량이고요.

 

사실 예술에 대한 칸트의 생각은 꽤 많은 논란의 여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판단력비판> 전반부에서 쾌적한 것에서의 만족과 좋은 것으로부터의 만족, 그리고 아름다운 것으로부터의 만족을 구분한 것처럼 칸트는 만족을 느낄 수 있는 판단의 대상 또한 예술 외에도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출발하는데, 그럼에도 미적 판단의 대상은 오로지 예술이라고 한정하는 점을 먼저 떠올려볼 수 있겠군요. 칸트는 무관심성, 보편성, 합목적성, 필연성의 네 가지 계기를 충족하는 판단의 대상은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이 네 가지 계기가 취미판단의 계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이 취미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곧 자연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는 어떻습니까? 아마 근사한 풍경이나 경치를 감상하며 내심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경험 몇 번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칸트에 따르면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예술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건, 정확히 말하자면 취미판단의 대상으로서 적합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말이지요.

 

이어지는 자세한 논의 과정에서 칸트는 어쨌거나 자연미라는 개념을 인정하기는 합니다. 칸트는 자연미는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이며, 예술미는 사물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라고 정의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정의 역시 껄끄러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연미가 아름다운 사물에 존재한다면, 즉 사물의 속성으로서 미가 존재한다면 미감적 판단의 의미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 (중략) ...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취미의 문제에 골몰했던 시기는 독일에서 낭만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입니다. 진리의 심급을 객관 세계가 아닌 인간의 순수이성에 정초한 칸트의 철학 역시 여기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겠고요. 오늘날 천재나 예술에 대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인상은 상당 부분 낭만주의적 경향, 특히 질풍노도(strum und drang) 운동이 만들어놓은 표상에 기대고 있습니다. 개인의 강한 성격적 특성, 비범하고 탁월한 기예, 범인으로서는 짐작조차 어려운 창조적 역량 등에 대한 이미지가 예술과 천재의 표상을 이루고 있지요.

 

흔히 천재라고 하면 아인슈타인이나 피카소, 모차르트 같은 사람이나 개별 인격을 떠올리지만, 칸트가 예술론에서 언급하는 천재는 어떤 개인이라기보다는 재능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칸트는 천재를 불가해의 영역에 놓는 것, 즉 그것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는데, 칸트가 천재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제시하는 비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칸트는 예술에 있어서의 천재를 마술사에 비유합니다. (미리 말하자면 이 비유의 목적은 천재와 예술의 관계를 포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재를 어떻게 대하는지 비판하는 데 있습니다.) 마술사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속임수를 감추기 위해 연막을 피우지요. 사람들은 연막 속에서 신기한 마술이 튀어나올 때마다 놀라고 감탄합니다. 칸트는 만약 무대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마술에 탄복하는 것은 눈가림이나 속임수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정말 어떤 마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마술사가 자신의 속임수를 감추기 위해 더욱 짙은 연막으로 무대를 감쌀 때, 사람들이 무대에서 진짜 마법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제안하면서요.

 

칸트가 보기에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천재의 모습이란 결국 나태한 몰이해, 혹은 그것을 합리화하는 믿음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칸트는 미적 대상을 판정하기 위해서는 취미가 필요하고, 그것의 탄생을 위해서는 천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천재는 앞서 비유를 통해 지적한 것처럼 신비롭고 불가해한 무엇이 아니라,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의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해야만 바로 그 만큼 예술의 가능근거를 단단하게 정초할 수 있기도 하고요. <판단력비판>에서 칸트가 매달리고 있는 까다로운 작업은 어쨌거나 결국 미적 판단의 가능근거를 확보함으로써 감각적인 것, 미적인 것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니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숭고를 다루겠습니다. 함께 읽는 책에서 벤첼은 주로 미에 대한 논의를 소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만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미만큼이나 숭고 또한 비중 있게 다루는데, 숭고에 대한 논의 또한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7. 5. 1. / Alter 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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