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tation

April 1, 2017

얼마 전 대한민국 역사 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지금도 그의 사법 책임을 묻기 위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고요. 그에 앞서서는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며 촛불과 태극기를 손에 쥐고 모인 수백만의 인파로 광장이 한바탕 홍역을 앓기도 했지요. 시계를 조금 더 뒤로 돌려볼까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되어 한동안 떠들썩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어 수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살해당한 여성을 애도하는 쪽지를 강남역에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일베와 메갈, 서로를 향한 각종 비난과 욕설이 각종 온라인 게시판들을 뒤덮었던 적도 있었고, 누가 더 제정신이 아닌지 경쟁하는 것처럼 도를 넘은 혐오와 차별이 랜선 너머로 뛰쳐나오기도 했습니다. 랜선과 현실의 경계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인간에게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요.

 

또 조금 더 뒤로 가볼까요? 정보기관에 영장 발부 없이 테러의심인물의 행적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테러방지법’이 진통 끝에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안의 통과를 막기 위해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필리버스터가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펼쳐지기도 했지요. 수학여행을 떠나는 고등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해 수백 명이 사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배는 간신히 다시 물 위로 떠올랐지만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모 대학에 청춘들의 안녕을 묻는 대자보가 붙어 화제를 모은 적도 있습니다. 벽보의 목소리는 안녕하십니까, 로 시작해 정말 다들 별 탈 없이 살고 있는지, 괜찮다는, 괜찮으리라는 자기합리화와 침묵의 종용 사이에서 숨죽이고 그저 살아만 있는 건 아닌지 또래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물음이 언급한 지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호응을 얻어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안녕을 묻는 자보들이 연달아 등장하기도 했고요. 누구는 GDP 4만불 시대를 약속하며 남북으로 나뉜 반도를 다시 동서로 가르려 했고, 또 누구는 새 시대의 첫 문을 연 줄 알았더니 옛 시대의 마지막 문에 끼었다는 탄식과 함께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우습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현실입니다. 다사다난, 말 그대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지요.

 

한바탕 웃어넘기면 좋겠지만 마냥 웃을 수도, 마냥 한탄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가 우리가 사는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사건과 사고가 쏟아지는 이곳, 투쟁하는 단식의 면전에서 폭식으로 조롱하며 맞받아치는 이곳, 갱스터 같은 파병용사와 얼치기 힙스터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이곳, 바다 건너 발전소가 무너지고 강하가 이끼로 뒤덮여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모두가 룰루랄라 살아가는 이곳, 여기가 바로 우리의 로도스,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말 몇 마디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문지방에 부딪친 발가락 것처럼 얼얼한 순간들 재채기가 튀어나오기 직전의 목구멍처럼 간지러운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것들, 동의할 수 없었던 것들, 아무라도 붙잡고 묻고 싶었던 것들, 누구라도 붙들고 따지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겠지요. (정말 없다면 당신은 맹인이거나 도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요즘 한국’입니다. 청년의 시선이니 청년의 목소리니 운운하는 시절 담론이 아니라, 이른 바 이론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실상을 살펴봅시다. 객관적인 통찰과 분석을 디딤돌 삼아서요. 이번 세미나에서 함께 읽을 주제와 글을 소개합니다.

1. ‘지옥불반도’에서 살아남기

 - 이우창, ‘헬조선 담론의 기원’

 - 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

 

2. 이중성 혹은 극단성

 - 김호기, ‘중산층과 이중적 시민사회’

 - 김원식, ‘한국사회 양극화와 다차원적 정의‘

 

3. 폭력과 타자

 - 문성훈, ‘폭력 개념의 인정이론적 재구성’

 - 문성훈, ‘타자에 대한 책임, 관용, 환대 그리고 인정’

4. Who Controls Whom?: 우리는 서로의 등 뒤에서 서로를 살피고

 - 김원식, ‘배제, 물화, 그리고 무시’

 - 김홍중, ‘힙합장, 힙합 진정성 그리고 상징투쟁: 한국과 미국의 컨트롤대란’

5. 세월이 가면

 - 박명림, ‘세월호 정치의 표층과 심부‘

 - 김홍중, ‘마음의 부서짐’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6. 아무의 이야기도 아닌 모두의 이야기

 - 진태원, ‘행복의 정치학, 불행의 현상학’

 - 진태원, ‘몫 없는 이들의 몫’

 

개념과 이론은 결국 세계를 관찰하고 해석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아무리 그럴싸하고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론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 혹은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 여기 고가의 화려한 장식과 놀라운 신기술을 적용한 낚싯대와 바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낚시에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지요.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속에서 모종의 실재(reality)을 낚지 못한다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요. 하지만 이론이 없어도 난감하긴 매한가지입니다. 맨손으로 아무리 물을 휘저어도 고기 한 마리 낚기 어려운 것처럼, 제멋대로 현실에 끼워 맞춘 의견은 대체로 진짜 중요한 현실에 닿기 못하거나 편견에 물들어 있기 십상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현실 앞에 속수무책일까요? 쓸 만한 낚싯대나 그물망이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요. 대단한 월척은 아니더라도 우선 여기가 어떤 곳인가부터 천천히 파악해봅시다. 진흙탕 같은 한국 사회에서 오늘 우리는 이런저런 이론들로 무엇을 건져 올릴 수 있을까요? 같이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안녕히, 안부와 함께 초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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