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ation: On Human Nature

March 10, 2017

1971년 네덜란드 방송재단(Dutch Broadcast Foundation)은 ‘국제 철학자 프로젝트(international philosophers project)’라는 이름의 TV쇼를 기획합니다. 세계 유명 철학자들을 초청해 일정 주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이지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의 창시자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생태학자 아르네 네스와 영국 출신의 분석철학자 알프레드 에이어는 회의주의를 중심으로 사실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논의합니다. 신경세포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호주의 생리학자 존 에클스와 칼 포퍼는 포퍼가 제시한 ‘열린 사회(open society)’라는 개념을 놓고 사실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요. 폴란드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콜라코프스키와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앙리 르페브르는 오늘날 (그러니까 70년대 초반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중요성과 소외(alienation)의 개념에 대해 토론합니다.

 

총 네 차례의 토론으로 이루어진 이 기획의 세 번째 순서에서 푸코와 촘스키가 만납니다. 글쎄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가장 친숙한 이름일까요? 어쨌거나 앞으로 얼마간 우리도 이들과 함께 대화해야 할 테니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차츰 하나씩 알아봅시다. 우선 푸코는 인식과 진리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출발해 사회의 구성과 권력의 문제를 파헤친 사람으로, 촘스키는 통사론(syntax)과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으로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종종 생존 지식인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다방면의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인물 정도로만 짚어두고요.

 

이들의 토론 주제는 ‘인간의 본성(human nature)’였습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폰스 엘더스의 사회로 이들은 해당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요. 경험이나 외부의 영향과는 무관한 타고난 인간의 본성이 있는지, 또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본성과 사회 제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등을 놓고 토론하지요.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사람인만큼, 토론은 아주 순조롭게 흘러갑니다. 주제에 대해 푸코와 촘스키는 서로 전혀 다른 의견을 개진하니까요.

 

만약 같은 주제를 다루는 자리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이제는 생물학자가 빠지지 않고 토론에 등장할 것 같군요. 유전 형질과 그것의 행태적 발현, 종이나 개체군의 집단행동 등은 오늘날 생물학의 중요한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이 부분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추가로 고민해보기로 하고, 우선은 푸코와 촘스키의 대화 내용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그것이 가장 뜨거웠던 20세기 후반만큼은 아니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논의를 이루는 핵심 개념이나 참가 선수는 조금 바뀌었지만요. ‘본성과 양육의 관계에 대한 논쟁(nature and nurture debate)’이라고 공식 명칭이 붙을 만큼,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특징들은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인지, 만약 타고난 본성이 있다면 그것의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유전 형질이 인간의 사고나 행동, 성품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했고, 이러한 관점은 타고난 본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지요. 반면 생태학이 발전하면서 동일한 종의 특정 개체나 집단의 특징이 개체와 개체, 개체와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관계나 상호작용에 의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연이어 등장하자 단순한 유전 형질이 아니라 환경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따라서 성장합니다. 당장 둘 중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잠시 접어둡시다. 어쨌거나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던 철학이나 문학 등은 점차 논의에 명함도 끼워 넣지 못하는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사실 이러한 쇠퇴, 혹은 후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 뿐 아니라 오늘날 어떤 주제, 어느 영역에서든 비슷하게 나타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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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통틀어 인간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고대에서부터 생물학의 발전으로 생명의 신비를 풀어가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실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세계대전과 인종청소라는 극단적인 역사적 사건의 경험과 과학기술의 전례 없는 발달이라는 배경을 갖춘 20세기 중후반은 이런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푸코와 촘스키의 대담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인간 본성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해 각자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토대로 정치, 권력, 정의, 보편적 가치의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지요.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의 생각을 따라서 우리도 이런 주제들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주제들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하나의 정답이 아닌 다양한 입장들이 교차하는 영역이기도 하니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돌아오는 밤에는 촘스키와 푸코의 생각을 보다 가까이에서 같이 살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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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0.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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