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훈, 시몬 드 보부아르: 절대적 타자에서 실존적 인간으로

November 1, 2016

페미니즘의 핵심은 성평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의 해방을 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이론과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여전히 가장 논쟁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인데, 페미니즘의 반대자들은 바로 이 개념 정의에서부터 이견을 제시하기 때문이지요.

 

페미니즘에 대한 아주 단순한 수준의 반대는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억압의 실체를 부정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층위에서의 반대는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신장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눈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불평등이 존재하니까요. 오늘날 한 사회 내에서 명문화된 여성의 법적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다 볼 수도 있겠지만, 노동 현장에서의 임금격차,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요 직위의 성비 등 거시적 지표를 살펴보면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상 집단에 대한 억압을 실체를 단순하게 부정하는 것보다 억압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 것은 생각해봄직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일례로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여성 의원의 수,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여성의 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모성 사망률, 청소년 출산율을 기준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II, Gender Inequality Index)의 경우 한국은 2015년 조사대상 188개국 가운데 23위로 ‘최고로 개발된(very high human development)’ 국가군에 속하지만, 세계경제포럼(WEF)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동일노동 대비 여성의 임금 비율, 전문직 성비, 고위관료 성비, 여성 의원의 수, 초등 및 중등교육 입학 성비, 성비격차, 성별 기대수명 등을 기준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GI, Gender Gap Index)에서는 2015년 조사대상 145개국 중 115위에 그쳤으니까요. 결국 이러한 접근은 무엇을 기준으로 성평등을 측정할 것인가, 그리고 동일한 기준이라도 어떻게 적용하고 판단할 것인가에 있어 논란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간다면 많은 연구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제활동 참가에 관해서도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공통적으로 가사 노동을 직접적인 경제 활동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더 열등한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페미니즘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평가라는 차원으로 들어가면 이견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사람들과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페미니즘의 본래 의미는 차별과 편견의 철폐라고 주장해도, 페미니즘이 은밀한 여성우월주의, 또는 남성혐오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지요. 이들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명목 하에 사회에서 ‘부당하게’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끊이지 않는 역차별 논란이지요. 혹은 페미니즘이 성평등을 내세우며 기존의 규범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기존의 규범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여성 집단에 이익으로 작용하는 차별은 외면하고, 불리하게 작용하는 차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란에는 다양한 입장들, 특히 추상적 가치의 영역은 물론 현실적인 이해의 득실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관련한 문제를 들춰보면 문제의 해결은 고사하고 대화의 당사자들이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상황으로 흐르기 십상이지요. 이렇듯 복잡하게 얽힌 사태는 비단 페미니즘의 외적 상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다양한 이론적, 실천적 입장이 존재하니까요. 즉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무엇이고, 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상이한 입장이 존재합니다. 어떻게 본다면 이들 입장은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기초적인 상황 인식만을 공유할 뿐, 차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차별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출발점에서부터 차별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포착하고 규명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론과 방법론, 또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어떻게 불평등을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방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때로는 서로 대립하는 관점들까지 포함하는 수많은 입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근대 이후 자유주의 사상의 성장에 더불어 여성 해방에 대한 목소리 역시 함께 증가합니다. 여성의 교육권, 참정권, 재산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하는 이러한 주장은 페미니즘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물론 이 주장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이후로도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계몽과 자유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18세기부터 꾸준히 성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권리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가 등장한 것이 1792년입니다.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적 저작이지요. 여권 신장에 관한 담론은 논란과 함께 꾸준히 확장합니다. <자유론 On Liberty>으로 유명한 밀은 1869년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이라는 책을 발표하는데, 이 책에서 밀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밀은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이나 사회 참여의 기회를 갖는다면 남성과 동등한 수준의 성취를 이룰 수 있으며, 이러한 개선이 남성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성도 인간으로서 남성과 똑같은 자유를 가져야 한다면서요. 당시로는 어마어마하게 파격적인 주장이지요.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에도 전혀 무리가 없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앞서 꾸준히 언급한 것처럼 페미니즘의 의미와 가치를 오히려 제한하는 한계를 갖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따라간다면 결국 페미니즘은 하나의 독창적인 관점이나 사상이라기보다 단순한 자유주의의 확장과 적용에 지나지 않게 될 테니까요.

 

현대의 페미니즘 이론들은 보다 광범위한 이론과 실천 지평을 제공합니다. 기존의 페미니즘이 갖는 한계까지도 함께 비판하면서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보부아르는 전통적 페미니즘과의 단절과 현대적 성격으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부아르 자신이 제시하는 관점 자체가 그렇고, 또 이러한 관점이 갖는 한계가 다양한 차원에서 페미니즘에 관련한 새로운 논의를 촉발했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보부아르는 무엇보다 실존적 관점에서 여성 해방의 가능성을 모색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사상만큼이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녀의 생애 역시 실존적 결단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그녀는 종교 문제와 대학 진학, 진로 문제 등으로 가족들과 대립했고, 사르트르와의 독특한 관계가 당시 보수적인 파리 부르주아 사회에 일으킨 스캔들 역시 유명합니다. 초창치 보부아르는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68혁명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부아르가 제시하는 페미니즘은 당시 학문적,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렀던 실존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의미를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실존, 한 개인이 그가 속한 지금 이곳의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어떤 사태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상이지요.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표현인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명제는 실존주의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드러냅니다. 생철학(Lebensphilosophie)이나 현상학, 또는 키에르케고르나 하이데거 등의 사상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를 해명하는 것이 오늘 밤 우리의 주제는 아니므로, 우리는 대강 이름 정도만 파악하고 보부아르가 있는 지점으로 돌아옵시다. 우선 실존주의의 대표자라고도 볼 수 있는 사르트르의 주장을 살펴볼까요? 즉자존재(en soi), 대자존재(pour soi), 타자(l'autre)라는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그가 말하는 실존주의에 다가가 봅시다. 즉자와 대자라는 개념은 독일 관념론에서 유래합니다. 즉자(an sich)와 대자(für sich)는 무엇보다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의 철학에서 변증법적 운동의 축이 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자는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상태(또는 그러한 상태의 실체)를, 대자는 어떤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행위, 즉 관계적 행위(또는 그러한 행위가 산출하는 실체)를 가리킵니다.

 

사르트르는 즉자와 대자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을 전유해서, 즉자존재란 대상을 갖지 못한, 즉 스스로 대상을 설정하지 못한 채 자기 자신 안에 머물러 있는(in itself) 존재로, 대자는 자신 바깥의 세상을 대상으로 삼는, 대상을 향하는(for itself) 존재로 정의합니다. 이에 따르면 즉자존재는 다른 대상과의 관계는 물론 (자신을 대상화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역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동일한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즉자존재는 자신의 의미를 정의하지 못하고 항상 대자존재가 그것을 대하는 관점 아래에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식을 지니고 있고 자기 바깥의 세상을 대상화할 수 있는 인간은 대자존재라고 볼 수 있고요.

 

사르트르에게서 흥미로운 지점은 대자존재가 타자와 맺는 관계입니다. 대자존재로서의 한 인간과 관계를 맺는 다른 인간 역시 그와 동일한 대자존재라고 볼 수 있지만, 관계에서 그의 의미는 그를 대상화하는 나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그의 실질적 위상은 즉자존재와 마찬가지가 되지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을 살아가는 나는 세상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고유한 세계를 창조하는 대자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그의 세상에서 그가 부여하는 위상에 따라 의미가 결정되는 즉자적 존재로 전락합니다. ‘타인은 지옥(l'enfer c'est les autres)’이라는 표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지요. 훗날 사르트르 역시 이러한 관계관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e)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을 시도하지만, 대체로 그는 인간 타인의 관계의 특징을 대립적으로 파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보부아르는 나와 타자의 관계를 단순히 대립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의 관계는 대립과 화해가 지속적으로 교차하는 역동적인 관계입니다. 이러한 역동성은 인간이 단순히 자신의 세계에서 대자존재로 살아가거나, 타인의 세계 속에서 즉자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즉자적 존재인 동시에 대자적 존재라는 이중적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보부아르는 인간이 실존적 결단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볼 수 있지만, 인간은 진공과 같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이미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개인의 자유 역시 타인의 자유를 통해 실현된다고 주장합니다. 타인 역시 내 앞에 놓인 세계의 일부로서, 내가 처한 구체적 상황의 일부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세계 속에서 내가 내리는 실존적 결단 역시 그와의 관계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인간은 타인을 도구화하고 대상화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지적하는 것처럼, 또 우리가 무수히 목격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내가 타인을 이렇게 죽은 사물처럼 도구화하고 대상화한다면, 이런 원칙을 채택한다면 타인 역시 나를 도구화하고, 대상화하며, 죽은 사물로서 나를 대한다는 가능성 역시 성립합니다. 보부아르는 이런 관점을 채택할 경우 오히려 자유의 폭이 줄어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자신이 선택한 유일한 세계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람의 세계에서 나는 자유를 상실한 사물로서 존재할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타자로서의 다른 인간 역시 나와 같은 대자적 존재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세계에 서로를 위한 자리를 허용한다면 오히려 더 큰 자유의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부아르는 인간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라는 한계 속에서 실현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인간과 세계, 주체와 타자를 바라보는 보부아르의 관점은 일반적인 실존주의의 주장과 미묘한 차이를 갖습니다.

 

자, 이제 보부아르가 자신의 인간관, 세계관을 가지고 젠더 이슈를 다루는 방식을 살펴봅시다. 보부아르가 처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보부아르가 일찍부터 그녀 자신이 속한 사회가 한정하는 여성의 지위와 삶의 양식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페미니즘에 관련한 문제들을 부차적으로 여겼을 것 같군요. 아마 인간과 실존이라는 문제가 훨씬 중요했겠지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실존적 인간으로서 자신 처한 현실을 자각하고 그곳에서 실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실존적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일종의 허상과도 다를 바 없는 문제들과 씨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컨대 기존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사회적 현실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면, 보부아르는 ‘사회적 현실’ 자체를, 특히 주어진 현실에서 개인의 고유한 삶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삶의 양식들을 통틀어 비판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보부아르가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은 68혁명 이후입니다. 68혁명 이후 기존의 사회운동들이 개량주의적 성격에서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페미니즘 역시 낙태와 피임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등 기존의 법과 제도들을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방향으로 돌아섰고, 보부아르 역시 여기에 동참하지요.

젠더 이슈를 다루는 보부아르의 대표작 <제2의 성 Le Deuxième Sexe>에서 그녀는 무엇보다 여성의 성을 ‘절대적 타자’라고 규정합니다. 절대적 타자는 상대적 타자와는 달라요. 주체와 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상대적입니다. 나의 관점에서 너를 바라볼 때는 내가 바라봄의 주체이고 너는 바라봄의 대상이지만, 반대로 네가 나를 바라본다면 네가 바라봄의 주체이고 나는 너의 시선 아래 놓인 대상이 됩니다. 백인의 관점에서 흑인을 타자라고 본다면 흑인의 관점에서는 백인이 타자가 될 테고, 부르주아의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타자라면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는 부르주아가 타자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주체와 타자와 관계는 누구를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이고, 서로의 주체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상호적입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경우는 다릅니다. 백인이 없어도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흑인과 달리, 여성은 남성이라는 기준 없이는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으니까요. 남성은 성별에 따라 규정되지 않지만 여성은 항상 남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또 여성은 자신을 주체화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타자화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항해 스스로의 주체성을 입증하고 (나아가 나의 시선 아래에 타인을 타자화하려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여성은 타자로 존재하면서도 주체로의 반전을 꾀하지 않는다고 보부아르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이처럼 절대적인 타자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등장하겠지요.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제시합니다. 그녀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자연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문화를 통해 자연을 규정할 수 있으며, 자연 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을 좇아 신체적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가치와 규범에 신체를 종속시키는 존재입니다. 즉 여성의 특징은 사회적으로 부과된 것이며, 사회적 특징을 신체적 특징에서 연역하는 관점 역시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지요. 따라서 보부아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 역시 생식이라는 목적에 따른 구별방식이며, 생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이러한 구별을 만들었을 뿐 양성의 구분은 그 자체로 인간 활동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에 대한 구별은 어떤 기준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자연적 성이라는 기준이 반드시 필연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심리학적으로 여성의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프로이트적인 관점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기술발전과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른 결과물로 제시하는 역사유물론적 관점 역시 비판합니다.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 상태의 변화나 그것에 토대를 둔 여성 정체성 역시 일종의 예비지식으로서 선행하는 사회적 규범과 양육 방식의 산물이며, 기술 발전과 여성의 종속 사이에는 어떠한 필연성도 발견할 수 없으니까요. 보부아르는 유년기, 사춘기, 처녀기, 결혼이라는 네 가지 과정을 통해 여성이라는 성이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이러한 과정을 따라서 한 ‘개인’이 ‘여성’으로 탄생하는 것이지요.

 

 

... (중략) ...

 

 

앞서 페미니즘의 주장이 단순히 여성의 권익 신장에 국한되는 담론이 아니라 한 사회 내의 타자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지요, 바로 여기에 페미니즘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요. 다른 한편 성차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페미니즘의 기여가 드러납니다. 자명한 성차와 불평등이 존재함에도 이를 외면해왔던 역사와 그 동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사회의 숨은 힘들, 진짜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보부아르의 주장처럼 여성의 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같은 관점을 남성의 성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면, 즉 인간으로서 동일하다면 당연히 역으로 남성 역시 인간으로서 여성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사회적 성을 형성하는 사회 규범, 생활양식, 권력관계, 타자의 존재 등은 남성으로서의 개인 앞에도 똑같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남성중심의 질서가 타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만들어서 여성에게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선행하는 사회 질서(규범, 규칙, 관습, 문화 ...)가 개인에게 남성이라는, 또 여성이라는 성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즉시 사회 규범과 개인의 관계,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인간의 자기의식과 주체성 등의 문제를 소환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원칙들이 실은 이미 주어진 문화의 학습에 불과한 것이라면, 또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외부에서 나에게 기입된 사고방식과 행동규범에 지나지 않는다면, 개인의 실존에 관한 문제, 즉 나는 어떻게 남들과 구분되는 나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리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랑시에르가 정치적 주체의 탄생에 관해 제시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앞서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이라고 볼 수 있는 <여성의 권리 옹호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가 등장한 것이 1792년이라고 언급했지요. 이에 3년 전인 1789년 프랑스에서는 저 유명한 대혁명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혁명의 복판에서 국민의회는 ‘프랑스 인권선언’을 발표하지요. 1791년 제정된 프랑스 헌법의 전문이자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세계 각국의 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선언문은 자연권의 보장, 국민주권의 원리, 정치적 권력의 대표성, 무죄추정의 원칙, 사상과 표현의 자유, 공권력 행사의 원칙, 조세의 근거, 사적 소유의 불가침성 등 오늘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가치와 원칙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법치 사상의 근본을 제시하지요. 바로 이 원칙에 의해 정치의 본질은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적 지배관계라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사결정과정으로 이행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단순히 왕의 목을 자른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혁명 이전에도 군주는 어떻게든 죽어 왔으니까요. 타인의 손에 목숨을 잃은 것도, 갑작스런 격변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혁명 전에도, 또 후에도 수많은 군주가 정적에 의해 살해되거나 전쟁에서 목숨을 잃어왔지요. 프랑스 혁명이 갖는 정말 중요한 의미는 군주의 죽음이 만든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라는 문제에 있어 최초로 다른 군주가 아닌 법이라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적 개인이 (한 사람이든, 혹은 여러 사람이든) 점유하고 있던 군주의 자리를 법으로 대체함으로써 법이라는 추상적 실체를 기준으로 모든 사적 개인 사이의 평등을 만든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전환이 갖는 중요성과 달리 정작 대혁명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공허한 주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았으니까요. 대혁명 당시 여성이나 하층계급 노동자들은 참정권은 고사하고 자연권조차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어쨌거나 혁명의 결과로 시민적 자유는 점차 확장했고 이 과정에서 여성운동 역시 함께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여성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며 성장했지요.

 

이 지점에서 랑시에르는 최초의 프랑스 여성운동가들이 단순히 ‘여성에게도 동등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여자도 프랑스인인가?’라는 물음의 형식으로 제기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물음은 그 자체로 터무니없는 수사적 질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훨씬 복잡한 효과를 산출하지요.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불평등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음이 수행된 장소에서 이를 둘러싼 관계들의 균열을 드러냅니다.

 

사회학은 이미 주어진 자리에 놓인 주체와 집단들이 그 지정된 자리에 따라 발언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보부아르가 여성의 성, 즉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했던 것처럼 특정한 정체성은 특정한 사회적 방식으로 생산되며, 개인들은 선행하는 정체성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지정된 자리에서 지정된 발언을 한다는 것이지요. 랑시에르가 제시하는 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주체에게 기존의 질서에 따라 만들어진 정체성과의 동일시를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어렵게 철학적으로 개념을 정의하지 않더라도, 흔히 주체적이라는 표현은 어떤 사태에 있어 누군가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행위자를 주체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내가 나의 자유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앞에 선행하는 규칙들을 단순히 취사선택한 것에 불과하다면, 혹은 취사선택조차도 아닌 단순한 선택이었다면, 혹은 선택조차도 아닌 그저 외부에서 기입된 경로를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면 그러한 삶의 양식을 주체적이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랑시에르가 제시하는 물음은 특정한 주체성에 더 이상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도록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에 따르면 주체가 태어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주체는 바로 이 지점, 주체의 불가능성에서 탄생합니다. 즉 기존의 정체성에 자신을 더 이상 동일시할 수 없을 때, 어떠한 방식의 정체성도 선택할 수 없을 때 진짜 주체적 질문과 마주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의 탄생은 정체성을 갖는 것(identification)이 아니라 탈정체화(disidentification)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탈정체화와 관련해 랑시에르가 밝히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봅시다. 1961년 10월 17일 파리 외곽에 약 3만 명의 알제리인들이 결집합니다. (당시 알제리는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1961년에는 알제리와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요. 이들은 파리 경찰의 야간 통행금지령에 반대하는 평화 시위를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파리 경찰은 시위대의 진압 및 해산을 결정합니다. 시위 장소에서 파리 도심으로 진입하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고요. 시위대가 파리로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만 여명이 체포되었습니다. 경찰이 비무장한 알제리인들을 물리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이 맞아 죽었고, 수십 명이 센 강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기 때문에 갈 곳이 막힌 사람들이 센 강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지요. 사건일 이후에도 파리 경찰은 알제리인 ‘사냥’을 일주일 가량 지속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 사망자가 3명이라고 발표합니다. 이후 사건을 철저하게 은폐했고, 알제리인들 사이의 패싸움이 있었다는 공식 입장을 청회하지 않았지요.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경찰의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이후에 처벌 받은 경찰 책임자도 없었습니다. 1999년 이 사건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공식 입장은 ‘패싸움’ 결과 센 강에 버려진 시체는 ‘48구’라는 것이며, 2000년 파리 경찰국은 기록물 보존 명목 하에 60년간 이 사건에 관련한 자료 열람을 금지합니다. 사실상 미제로 종결한 것이지요.

 

랑시에르는 당시 프랑스 지식인 집단이 이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정체성에도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었다고 술회합니다. ‘프랑스인의 이름으로, 프랑스인에게 맞아 죽고 센 강에 던져진 알제리인’이라는 사태에 직면에서 자신을 알제리인을 학살한 프랑스인으로도, (국적 상)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인에게 맞아 죽은 알제리인으로도 동일시할 수 없었다고요. 랑시에르는 발생한 사태는 자명하지만 어떠한 정체성에도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 이 균열과 틈새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즉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의 새로운 주체성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보부아르의 주장처럼 사회적 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선행하는 규범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틈새에서 새로운 선택을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할 테니까요. 즉 젠더 이슈를 바로보는 보부아르의 실존주의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을 넘어,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성 정체성을 따르는 것을 넘어, 학습하는 성과 만들어지는 성을 거부하고 자신의 성을 실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지평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불가능한 동일시는 단순히 주체의 탄생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주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이 불가능성 위에 자리하지요. 한 주체가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는 한, 다른 자리와의 소통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사르트르가 제시했던 것처럼 죽은 사물로서의 타인, 지옥과도 같은 타인만이 가능할 뿐이지요. 주어진 자리들의 한계를 넘어 자리바꿈의 가능성을 모색할 때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함께 확보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6. 11. 1. / 콘텐츠코리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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