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tation

July 21, 2016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몇 해 전 유명 드라마 작가가 출판해 화제를 모았던 산문집의 제목입니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처럼 책의 내용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스무 살 첫 연정의 기억부터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 듯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 아픔과 미련, 거짓말과 행복, 친구, 부모, 가족, 불륜에 관한 이야기까지, 작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예민하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표현한 사랑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요. 그리고 작가는 말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신이 사랑을 주어야 했을 대상 하나를 유기한 것과 같으니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유죄라고요. 왠지 없던 사랑도 불쑥 생길 것 같은, 당장이라도 사랑해야 할 것 같은 문장입니다.

 

책이 말하는 저 미문(美文)과 별개로, 사랑을 기준으로 사람을 단죄한다면 아마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벌어질 겁니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소동이겠지요. 누군가의 사랑을 두고 사랑이냐 아니냐를 시작으로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 사랑했다, 하지 않았다, 사랑이 크니 작으니 사랑을 받았네 못 받았네 사랑을 받아주네 마네 사랑이 변했네 아니네 실랑이가 끊이질 않겠지요. 사랑으로 사람을 단죄한다면 누구 하나 당당히 떳떳한 사람도, 누구 하나 억울하지 않을 사람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운 말이지요, 사랑.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의외로? 퍽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주위에 아무나 붙들고 ‘사랑하며 살고 있느냐, 사랑하는 사람이 있느냐’ 물으면 뚱딴지같은 질문에 잠시 당황이야 하겠지만 이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할 겁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지요, 사랑이 무엇이냐 물으면 누구 하나 모두가 납득할 만한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가족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연인도 사랑하고 개와 고양이도 사랑하고 영화도 사랑하고 동네도 사랑하고 가끔은 모르는 사람도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온갖 동물과 영화와 자주 가는 동네 식당과 낯선 이들을 사랑할 때 사랑의 대상을 향하는 정서의 구조와 관계의 양식은 아마 제각각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랑이 여러 대상에 있어 다를 것이고, 같은 대상을 향한 여러 사람의 사랑이 각자에게 있어 다 다르겠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들을 죄 뭉그려 사랑이라 부릅니다. 사랑이라는 말 속에 그만큼 많은 의미가 들어 있고, 그렇기에 그토록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말의 의미가 다의적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말이 가리키는 의미가 공허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의미가 불충분하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두루 쓰이고 남용되며, 두루 남용되기 때문에 다의적인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네 삶에서 사랑을 빼면 사실 남을 것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에 얽혀 있지요. 그리고 많은 감정들, 고민들, 상상들이 사랑에 얽혀 있습니다. 어떤 말을 증오하거나 동경할 때, 즉 말에 감정을 투사할 때 사람들은 말의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말에 지배당하고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것에 사로잡혀 그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마다의 기준에서 임의의 가상을 정해 놓고, 현실에 닿지 못할 가상을 삶에 투사하며 환상 속을 배회하고 있는지도요.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당연하게도 세미나는 사랑을 이해하거나 규명하거나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몇 번의 고민으로 풀릴 문제였다면 애당초 사랑이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인간사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겠지요. 세미나는 ‘사랑을 둘러싼 오해를 풀어보겠다’는 프롬의 야심찬 기획으로 출발합니다. (그의 기획이 성공인지 아닌지는 같이 따져볼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성복의 안내를 쫓아 프루스트의 지드의 소설을 매개로 사랑이 지닌 환상으로서의 성격을 둘러본 뒤, 바르트가 제시하는 사랑의 편린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8월 17일부터 10월 5일까지 7주간(추석 연휴 한 주는 세미나도 쉬어 갑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일곱시반부터 강북구 청년동에서 여섯 개의 이야기와 함께 진행합니다. 세미나에서 읽을 책을 소개합니다.

 

1. Orientation (8/17)

2.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사랑의 기술Art of Loving> 1, 2부 (8/24)

3.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사랑의 기술Art of Loving> 3, 4부 (8/31)

4. 이성복,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1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9/7)

5. 이성복,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2부: <좁은 문 La Porte Étroite> (9/21)

6.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A to G (9/28)

7.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H to V (10/5)

 

언제나 그렇듯, 세미나는 답이 아닌 고민을 지향합니다. 제 눈에만 보이는 환상과 기만적 상상에 기댄 안락을 떠나, 출구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내는 고민의 소용돌이를요. 고민은 반드시 의심과 회의를 동반합니다. 의심하지 않고 회의하지 않는 고민은 헛된 신앙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지요. 거짓 고민은 찢어진 지도, 부서진 나침반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상상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실재의 광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길잡이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그것으로 단련한 감각 뿐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하지요.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고민의 밤으로 초대합니다. 다시 만나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지요.

 

* 이번 세미나는 '청년동'에서 운영비를 지원함에 따라 별도의 개별 참가비가 없습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들께서는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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