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진실

July 20, 2016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배수진을 치고 묵묵히 황홀과 고뇌의 재단을 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을 삼키고 불을 뱉는 사람, 길이 끊긴 곳에서 망설임을 걸어가는 사람, 벽이 보이지 않는 미로에서 잃어버린 제목을 찾는 사람이 있지요. 익숙함을 철저하게 의심하는 사람들, 의심의 깊이로 신념의 무게를 증명하는 사람들, 익명의 절망에서 예기치 못한 기쁨의 물을 길어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저들은 그들이 성공을 거둔 그 만큼 범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만, 우리는 저들이 남긴 기록과 흔적으로 저들의 길과 걸음을, 그들을 몰고 간 어떤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흔적의 형식과 양상은 다양합니다. 어떤 결과물, 또는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의 기록이 될 수도, 저들이 천착했던 구체성의 형식, 곧 조형, 악곡, 문장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저들의 삶 그 자체가 저들이 남긴 무엇의 오롯한 증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흔적에는 흔적을 남긴 힘에 비례하는 모종의 진실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치열하게 고민한 참과 거짓의 경계에는 그 치열함의 발자국이, 그 무게에 비례하는 선명한 자국이 남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여기에서의 진실은 종교적인 깨달음이나 어떤 초월적인 진리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모종의 진실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이의 걸음에는 골몰한 구도자의 경건함이나 탕아의 주정과 비슷한 구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후인이 앞선 이의 흔적에서 발견하는 진실은 그런 종류의 쉬운 정답은 아니지요.

 

여기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대개 아름다움과 닿아 있습니다. 그 흔적의 대상과 의미와 내용이 아무리 흉하거나 더럽고 천하거나 악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거짓이라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지요. 대개 진실한 아름다움은 그것이 놓인 자리에 웅크리고 엎드려서 관찰하고 호흡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때의 ‘보다’는 곧 ‘산다’와 같은 의미를 이루지요. 어떤 대상을, 그 대상 속의 무언가를, 그것에 담긴 진실을, 진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곧 그것을 바라보는 것을 삶의 자세로 삼은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자 굴레이며 보상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시와 진실’입니다. 시라는 흔적, 시라는 매개를 통해 삶이 드러내는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과 그것의 정체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겠지요. 진실한 정신은 자신의 형태를 요구합니다. 만약 진실함의 정도를 묻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형태의 고유함과 독창성은 그 정도에 비례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경계가 시의 언어가 산문의 언어, 일상의 언어와 갈라서는 지점이 되겠지요.

 

​시를 쓰는 것은 말을 엮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시 쓰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엮여 있는지 살펴 바라볼 수 있지요. 시를 읽는 것은 그러므로 시를 쓴 사람의 삶을 읽는 것이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기준점은 언제나 자신의 삶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시를 읽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읽는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번 세미나는 여섯 명의 시인, 여섯 편의 시집을 다룹니다. 여섯 밤 동안 저들이 남긴 문장에서 ‘시’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어떤 흔적과, 그 흔적이 드러내는 모종의 아름다움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읽을 여섯 명의 시인과 여섯 편의 시집을 소개합니다.

 

 1.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2. 이시영,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3.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4. 하재연,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5. 허연, <오백 미터>

6. 김민정,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시를 딱 잘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일상적인 낱말의 의미에서부터 폭넓은 의미를 담보하는 정의, 학술적인 정의나 날카롭게 자신이 발견한 바를 한정하여 진술하는 정의, 많은 문장들을 시의 영토로 포용하는 정의와 무수한 문장을 시 바깥으로 추방하는 단호한 정의까지 다양한 관점들이 있겠지요.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의미로 시의 한계를 두르기도, 시에 살을 붙이기도 합니다만 시에 속하는 많은 역능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무엇보다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보이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때 시는 삶을 들여다보는 수정체와도 같겠지요. 시에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확대하기도 하고,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다란 것들을 시야에 끌어들이기도 하고, 외면했던 것들을 향해 눈을 돌리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돌려서 무언가를 직시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류와 경우를 막론하고 바로 보는 것은 사유와 실천의 첫 걸음을 이루지요.

 

​좋은 시에는 읽는 사람의 삶을 읽는 그 한순간 멈추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적인 것’의 힘이겠지요. 한 시인은 좋은 시는 명치끝을 날카롭게 내지르는 주먹과 같아서, 갑작스레 명치를 얻어맞은 사람이 그 순간 숨조차 쉴 수 없는 것처럼 읽는 이의 호흡을 멈추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잠시 멈추는 것도 좋겠군요. 서두르지 맙시다, 이미 늦었으니까요. 너무나 적게 남은 이 시간을 서둘러 소비할 수는 없겠지요. 다시 한 번, 고민의 밤으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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