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June 23, 2016

그녀가 차 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차 안에서 무언가를 훔쳐서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볼까도 생각했지만, 내 생일이라서 울적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이 집착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나는 달랑 혼자인데,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도둑질을 해봤자 도둑이 나라는 것을 그녀가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에 띄고 싶었다.

 

 

 

모모는 열 살 난 아랍 소년입니다.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파리에 살고 있지요. 모모에게는 엄마가 없습니다. 모모 자신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처음 기억을 가진 세 살 무렵부터 이미 그는 로자 아주머니의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로자 아주머니의 집에는 모모와 같은 아이 예닐곱 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모모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파리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입니다. 로자 아주머니의 집에는 모모 같은 아랍인 아이나 아프리카계 흑인 아이, 프랑스인 아이 등이 한데 모여 살고 있습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특히 매춘부들의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 가운데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도 있고, 매춘부라는 특성 상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여자들이 아주머니를 찾아와 아이를 맡기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머니 역시 전쟁 직후 알제리 등지에서 매춘부로 연명하며 생활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버리는, 혹은 맡기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이들을 돌보고 있지요.

 

아이들을 맡긴 엄마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쯤 자신의 아이를 보러 로자 아주머니 댁을 찾습니다. ‘엄마’가 뭔지도, 그게 꼭 있어야 하는 줄도 몰랐던 모모도 차츰 엄마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그러나 모모의 집을 찾는 엄마들 가운데 모모의 엄마는 없습니다. 열 살 모모는 자신을 찾아올 엄마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열 살보다 더 어렸을 때) 모모는 거리의 다른 아이로부터 배가 아프면 엄마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파트 곳곳에 똥을 싸놓기도 했지만 엄마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럴 때면 고생은 죄다 로자 아주머니의 몫입니다. 늙은 여자 (아주머니의 나이는 어느새 거의 일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혼자서 예닐곱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조금씩 늙어 가는 아주머니는 이제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 할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모모를 따라 아파트를 똥 칠갑으로 만들 때면 아주머니는 종종 신세한탄으로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합니다. 아주머니의 울음, 그리고 아무리 똥을 싸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모모도 그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요.

 

때로 모모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또래 아이와 작당해 일부러 도둑질을 한 적도 있습니다. 특별히 무언가 부족하거나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리 어디에서도,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도둑질을 하다 들키면 혼쭐이 나지만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 두셋이 사탕 몇 개쯤 훔치다 들켜봤자 경찰서에 연행되는 일은 좀체 없을 테니까요.) 모모는 그런 관심마저도 반갑기만 합니다.

 

모모가 거리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상에 부딪히고 있을 때, 로자 아주머니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고, 고생을 너무 많이 한 까닭이지요. 로자 아주머니는 아파트의 사람들이 점점 자신에게 친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자신에게 그리 반가운 징조가 아니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모의 가장 친한 친구는 양탄자 행상 하밀 할아버지입니다. (아, 모모가 우산으로 직접 만든 단짝 친구 ‘아르튀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모의 첫 기억부터 엄청나게 늙어 있던 하밀 할아버지 역시 점점 더 빠르게 늙어 가고 있었지요.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와 하밀 할아버지를 보면서 늙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 퇴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모와 눈을 감고 대화할 때 하밀 할아버지는 종종 자신의 젊은 시절 친구와 모모를 혼동하기도 하고, 이제 거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로자 아주머니는 아이들과 집에 있을 때도 종종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아이들은 그런 로자 아주머니의 모습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울곤 하지만 모모는 울지 않습니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자신을 도와줄 상상의 경찰을 부르기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아빠의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하지요.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의 모모는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옥희와 닮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자르가 모모의 모습을 통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주요섭이 옥희의 시선으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할까요? 한 편의 치정극이 옥희의 순수한 시선 아래에서 서정적 아름다움을 드러내듯, 괴로울 만큼 사실적 삶의 비극들이 애어른 모모의 주변에서 펼쳐질 때 감춰진 아름다움이 드러나니까요. 서서히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의 모습, 버림받은 사람들, 어느 날 모모의 집을 찾아왔던 그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모모, 모든 것의 중심에 서 있는 모모, 자신의 애처로운 처지조차 모르는 모모, 가여운 모모.

 

 

… (중략) ...

 

 

소설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우선 소설 속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겠군요. 소설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흥미진진한 사건의 흐름을 쫓아가다보면 저절로 재미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이야기를 따라서 사건과 범인의 행방을 쫓는 것만으로도 긴장과 흥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범죄의 현장과 범인의 행방을 따라 수수께끼의 열쇠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지요. 꼭 서사적 긴장이 극단적으로 도드라지는 추리소설의 경우가 아니라도 남녀 둘셋쯤 얽힌 사랑 이야기나 기행담 역시 그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소설에서 기대했던 재미를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혹은 이야기로부터 한발짝 떨어져서 그것의 다양한 측면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나 시대의 모습을 그려 본다거나, 이야기 속 인물이 처한 상황에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 보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톨스토이를 읽으며 그의 묘사를 따라 제정 러시아 말기의 사회상을 그려 보는 일이나, 보들레르의 산책길을 따라 파리의 풍경을 함께 걷는 것 역시 근사한 일입니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느 순간 신드바드가 되어 아라비아 바다를 항해하다가도, 한순간 다시 셰에라자드로 돌아와 다음 밤을 고민하기도 하지요. 플라톤의 <향연 Symposium>을 읽을 때면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 타령과 실랑이를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그 시절 멋진 주연(酒宴)을 떠올리는 것 역시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소설 바깥에서 소설을 바라보는 것 역시 즐거운 상상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하는 인물들의 행동과 내면으로부터 그 자신이 겪었던 유형 생활을 떠올리는 일이나, 발자크가 소설에서 수없이 묘사하는 혁명 직후 파리의 인간 군상에서 발자크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지요. 대문호 발자크! 빚쟁이 발자크! 그 시대 어떤 누구보다 성공과 출세에 목매던 발자크!

 

이렇게 소설 바깥의 이야기를 함께 묶어서 생각하는 일은 종종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은 소설 바깥의 이야기가 언제나 짝처럼 함께 엮여 있는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은 1975년 에밀 아자르가 발표한 소설입니다. 발표 직후 문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받았으며, 이 소설로 아자르는 그 해 공쿠르 상(Prix Goncourt)의 수상 작가로 선정됩니다.

 

재미있는 사건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자르가 공쿠르 상 수상을 거부한 것이지요. 흔히 스웨덴 아카데미(The Swedish Academy)가 선정하는 노벨 문학상, 영국의 맨부커 상(Man Booker Prize)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공쿠르 상이었기 때문에 수상자의 수상 거부는 꽤나 특이한 일이었습니다. 앞선 수장자들의 면면도 쟁쟁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르셀 프루스트, <야간비행 Vol de Nuit>의 생텍쥐페리, <레 망다랭 Les Mandarins>의 시몬 드 보부아르,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으로 수상한 앙드레 말로 등등. 아자르는 공쿠르 아카데미(Académie Goncourt) 앞으로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당시 아카데미 의장 에르베 바쟁은 작가가 아닌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이므로 수락과 거절 역시 작가가 결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자르의 거부 의사를 받아들이지 않지요. 결국 논란 끝에 그해 공쿠르 상 수상자는 아자르로 결정됩니다.

 

자, 그리고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아자르는 공쿠르 상 수상에 앞서 1974년 <열렬한 포옹 Gros-Câlin>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때까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늘 그렇듯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소설은 쉬지 않고 나타나기 마련이고, 일삼아 그것들을 뒤적이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많은 이들이 문단의 일에 무관심하기 마련이니까요. 이듬해 아자르의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이 발표되고 그해 공쿠르 상 수상 작가로까지 선정되자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으레 ‘영광입니다’ 하고 넙죽 상을 받아가도 모자랄 판에 이 아자르라는 무명 작가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고 수상을 덜컥 거부해버린 것이지요. 논란과 수소문 끝에 아자르는 당시 유명 작가였던 로맹 가리의 오촌조카였던 폴 파블로비치로 밝혀졌습니다. 문학에 관련한 경력이 전혀 없었던 그였기 때문에 즉각 대필 의혹이 뒤따랐지만, 당사자들 모두가 부정했기 때문에 결국 아자르는 파블로비치의 필명이었던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지요. 에밀 아자르는 공쿠르 상 수상 이후에도 1976년에는 <가면의 생 Pseudo>을, 1979년에는 <솔로몬 왕의 고뇌 L'Angoisse du roi Salomon>를 연달아 발표하는 등 총 네 편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1980년 12월, 프랑스의 한 저명 작가가 파리의 저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공쿠르 상 수상과 관련하여 한바탕 소동을 치렀던 로맹 가리입니다. 그리고 1981년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Émile Ajar>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됩니다. 책의 저자는 한 해 전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 책에서 그는 에밀 아자르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지 7년만에 마침내 그의 정체가 밝혀진 것이지요.

 

사실 에밀 아자르의 정체에 대한 의혹은 꾸준히 제기된 바 있습니다. 뭔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소설이 등장했는데 작가가 한사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말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말을 만들기 마련이지요. 1974년 아자르의 이름으로 첫 소설이 발표된 이후부터 평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자르의 정체를 추측했습니다. 레몽 크노나 루이 아라공 같이 이미 유명했던 당대의 작가를 아라즈의 정체로 지목하기도 했고,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또는 아자르의 책이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작가가 공동으로 집필한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975년 공쿠르 상 수상 덕에 (어쨌든 잠시나마) 아자르의 정체가 로맹 가리의 오촌조카로 밝혀진 직후 곧바로 로맹 가리의 대필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후에도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 자신이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뒤따랐지요. 평론가들은 종종 로맹 가리가 이전에 발표했던 소설과 에밀 아자르가 발표하는 소설의 유사성을 발견하여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두 사람의 작품 사이에서 나타나는 주제나 세부사항, 심지어 자주 쓰인 표현 등까지요. 이런 의혹은 에밀 아자르의 진짜 정체에 대한 의혹에서부터 그가 유명 작가인 로맹 가리를 표절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광범위하게 아자르의 작품 뒤를 따라 붙었습니다.

 

로맹 가리는 번번이 뻔뻔하게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잡아떼며 넘어갔지만, 실은 에밀 아자르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는 로맹 가리의 생전에 늘 가득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모를까, 로맹 가리 자신부터 일단 널리 알려진 작가였고 에밀 아자르 역시 1975년 공쿠르 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니까요. 로맹 가리는 자살 전 유서처럼 남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Émile Ajar>의 마지막 장을 보면 아자르의 정체를 둘러싼 아슬아슬한 숨바꼭질의 전황이 잘 드러납니다.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정체를 감출 수 있도록 도와준 친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데, 유서 격의 글에서 직접 실명을 거론하며 각별하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만 열다섯에 이르니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자르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이래저래 정체를 감추는 데 그토록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신분이 탄로 날 위기가 많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요.

 

한편 로맹 가리가 사용했던 이름은 에밀 아자르 뿐만이 아닙니다. 공교롭게 공쿠르 상 수상에 관련한 스캔들로 그가 사용했던 이름 가운데 하나가 크게 알려졌을 뿐이지요. 또 이름 뿐 아니라 그가 지닌 삶의 경력 역시 다채롭습니다. 로만 카슈(Roman Kacew)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던 그는 일찍부터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전해집니다. 가족 관계와 관련해서도 자신의 친부는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을 스스로 펼치기도 했지요. 

 

로맹 가리는 14세에 유대인 박해를 피해 파리로 이주한 이후, 21세에 프랑스로 완전히 귀화합니다. 그 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카슈는 나치의 프랑스 점령 이후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프랑스 공군 대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합니다. 로맹 가리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때입니다. 종전 후 참전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Commandeurs de la Légion d'honneur)을 수여받기도 했고, 종전 직후 불가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외교관으로, 뉴욕에서 UN의 프랑스 대표단으로 근무하기도, 총영사 자격으로 LA에서 근무하기도 했지요.

 

작가로서의 경력도 화려합니다. 대학 입학 이듬해인 1935년 문예지에 단편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2차 대전 참전 중에 집필한 <유럽의 교육 Éducation Européenne>으로 크게 주목을 끌었고 1956년 <하늘의 뿌리 Les Racines du Ciel>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지요. 공쿠르 상은 한 사람의 한 작품에 단 한 번 수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결과적으로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이름까지 합해 유일하게 이 상을 두 번 수상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로맹 가리는 소설 뿐 아니라 영화 각본을 집필하거나 자신이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이방인에서 귀화한 외국인으로, 법학도에서 군인으로, 외교관으로, 문인으로 모습을 바꾸며 다양한 삶을 살았던 셈이지요.

 

로맹 가리는 이후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에 대해 ‘한물간 작가’라는 평이 뒤따르자 에밀 아자르를 비롯해 포스코 시니발디(Fosco Sinibaldi), 샤탄 보가트(Shatan Bogat) 등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지요. 그의 사후 발표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Émile Ajar>에는 ‘사람들이 그에게 만들어준 얼굴이 한 작가를 얼마나 구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또 자신이 출연했던 한 TV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자신의 면전에서 그의 소설을 혹평하며 에밀 아자르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어떤 평론가의 모습을 회상하기도 하지요.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느꼈던 통쾌함이 자신의 작가 인생 전체에서 가장 달콤한 즐거움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작가는 그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을 때 비로소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몫을 받는다고요.

 

에밀 아자르의 발명 이후에도 로맹 가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도 두 편의 소설을 더 발표하지요. 세상은 로맹 가리의 소설에는 철저한 냉대와 혹평으로 일관합니다. 아자르의 소설에 보내는 찬사와는 반대로요. 로맹 가리의 한 친구가 우연히 그의 집에서 에밀 아자르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합니다. 얼마 뒤 그 원고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에밀 아자르가 누구인지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이 친구는 그 작품의 저자가 로맹 가리라고 떠들고 다니지요.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반응이라고는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거나 ‘로맹 가리는 이미 끝난 작가다. 그가 그런 글을 썼다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식의 반응 뿐이었지요. 로맹 가리가 한편으로는 유쾌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갈며 싸웠던 대상은 바로 자신에 대한 세상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요, 작가는 그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을 때 비로소 자기가 받아 마땅한 몫을 받는다고요.

 

자살 전 로맹 가리는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는 메모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이름으로 생을 통과한 그가, 그렇게 많은 이름과 모습들 속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마침내 완성했던 완전한 표현이 그의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을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6. 6. 23. / 아름다운가게 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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