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8, 2019

사람들은 자신에게 마녀라는 표시가 붙거나 그렇게 간주되는 것이 두려워 마녀를 찾고 타인을 마녀로 가공한다. 마치 사냥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정상으로부터 이상을 구별하는 것은 본래 양적 평균치나 수적 다양성에 바탕한 규준에서의 이탈을 가리키지만, 말의 표현적 차원에서 이러한 구분은 열등한 것, 수상한 것, 불안한 것, 병적인 것과 같은 질적 가치 평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양적 평균치나 수적 다수성을 앞세워 기꺼이 자신을 정상으로 내세우는 것은, 한편으로 수상하고 불쾌하고 병적인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이들 열등한 타자에 대해 자신의 우월성을 확립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 나카무라 유지로, <술어집>

December 1, 2019

언뜻 보기에는 제인 오스틴의 소재와 작품이 구식이고,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것은 일종의 망상으로서, 나쁜 독자가 무릎을 꿇는 방식입니다. 좋은 독자는 책에서 진짜 삶, 진짜 인간 등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 사물, 상황의 현실성은 전적으로 그 책의 세계에 달려 있습니다. 독창적인 작가는 항상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합니다. 한심한 하청 문사인 비평가들이 ‘진짜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책의 인물이나 사물을 대입했을 때 그들이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천재적인 작가에게 진짜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작가는 반드시 자신이 그런 삶을 창조하고, 그런 삶이 빚어내는 결과까지 창조해야 하니까요.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문학 강의>

November 24, 2019

“나는 뉴욕에서 동베를린으로 왔습니다. 극단 단장이던 바이겔을 찾아갔지요. 그때 내 평생 최고의 극장을 보았습니다. 여기 이 극장에서, 당시에는 지금처럼 깨끗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1968년에 브레히트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3주 후에 모든 초청 인사들이 이름 순서에 따라 무대에 올랐습니다. 모두들 쪽지를 꺼내 들고 멋진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나도 조그만 쪽지를 들고 있었지요. 나는 마이크 앞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이겔이 말하더군요. ‘자, 어서, 한마디 하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준비한 쪽지를 찢어 버리고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다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물러났지요. 나중에 뉴욕으로 돌아와 생각했습니다. 나는 결코 브레히트처럼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픔을 느꼈던 겁니다.”

   

- 조지 타보리, '이리스 라디쉬와의 인터뷰'

November 17, 2019

산업자본주의는 노동뿐만 아니라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여가도 함께 창출했다. 노동자들이 주말 동안 술을 퍼마시고 숙취에서 깨느라 '성 월요일'이나 '성 화요일' 같은 성인의 날을 추가해 공장 일을 쉬는 확고부동한 전통에 맞서기 위해 고용주들은 오랫동안 전투를 치러야 했다. 초기 방적 공업의 고용주들은 공장의 기계를 가능한 한 계속 돌리고 노동자에게 아주 긴 노동 시간을 강요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노동 시간 동안 연속해서 일할 것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노동이 아닌 활동을 그들의 생활에서 배제함으로써 노동과 여가를 공식적으로 분리한 셈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예 공장 문을 닫는 휴가 기간을 따로 두어 노동과 여가를 확실하게 분리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노동자가 평소에 근무를 쉬어 작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휴일이든 주말이든 아니면 저녁이든, 뚜렷한 비노동 시간으로서의 여가가 발생한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규율적이고 한정된 노동 시간 때문이었다.

   

- 제임스 풀처, <자본주의에 대한 간략한 소개> 

November 10, 2019

직업을 말하라는 재판장의 요구에 대해 그는 간단히 답변한다. "프롤레타리아." 이 답변에 대해 재판장은 곧바로 "그건 직업이 아니잖아"라고 반박하지만, 피고는 즉각 다음과 같은 응수한다. "그것은 노동으로 연명하고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한 3천만 프랑스인들의 직업이오." 그러자 재판장은 서기에게 이 새로운 '직업'을 기록하도록 지시한다. 이 두 개의 응답으로 정치와 치안 사이의 갈등을 집약해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모든 것은 직업이라는 같은 단어의 의미를 이중으로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다. 치안의 논리를 구현하는 검사에게 직업은 일자리를 의미한다. 즉 그것은 어떤 신체를 그의 자리 및 그의 기능에 따라 위치시키는 활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프롤레타리아는 어떤 직업도 가리키지 않으며, 기껏해야 비참한 육체 노동자가 처해 있는 막연하게 정의된 어떤 처지를 가리키는데, 어떤 측면에서 보든지 이것은 피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마 혁명적 정치의 관점에서 블랑키는 같은 단어에 상이한 의미를 부여한다. 직업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다는 고백이자 선언이다. 다만 이러한 집단은 아주 특수한 본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블랑키가 자신이 속해 있다고 고백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결코 어떤 사회 집단과 동일시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는 육체 노동자도 노동자 계급도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자신들을 셈해지지 않은 이들로 셈하는 선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셈해지지 않은 이들의 계급이다.

   

- 자크 랑시에르,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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