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31, 2020

중세 초기 서양 그리스도교 세계는 압바스 왕조 시기의 이슬람 사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슬람 세계가 정기 교역을 통해 연결된 도시들의 세계였던 반면 서양은 압도적으로 농업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도시들은 규모가 작고 널리 흩어져 있었다. 교역은 대체로 국지적인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규모도 미미했다.  상인의 사회적 영향력 역시 크지 않았으며 통합된 법 체계, 세금 제도, 관료제, 상비군 등 예전 로마 제국을 지탱했던 하부 구조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카를 대제 통치 통치 하의 프랑크 왕국은 광대하고 강력했으나 같은 시기 하룬 알-라쉬드 지배 하의 압바스 왕국과 비교하면 고래 앞의 새우와 같았다. 왕권은 궁극적으로는 고분고분하지 않고 호전적인 귀족들의 충성심과 협력에 의존했으며, 이들 가운데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영주 가문들조차 자신들의 영지 내에서는 정부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초보적인 통치 기구를 거느리고 있을 뿐이었다. 성직자들 외에 읽고 쓰는 능력을...

May 24, 2020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통일성은 하나의 유일한 글쓰기를 생산해냈으며 글쓰기의 형태는 부르주아 시대들, 다시 말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는 분열될 수 없었다. 분열된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작가가 보편적인 것의 증인이기를 멈추고 불행한 의식이 되었을 때, 그의 첫 번째 행동은 과거의 글쓰기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서 형태의 투입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고전적 글쓰기는 폭발해 소멸했고 플로베르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 전체가 언어를 통한 언어에의 문제 제기가 되었다. 모든 글쓰기는 작가가 자신의 길에서 숙명적으로 만나는 대상과 형태 앞에서의 빈곤, 혹은 반감의 실천이 되었다. 작가는 대상과 형태를 바라보고 대결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이 과업을 결코 온전히 완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어떤 방식이 되었든 고독이며 글쓰기의 곤경은 총체적이다.

   

-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영도>

May 17, 2020

흔들어보았으나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은 아무 쪽에서나 불었고 나는 아무 쪽으로나 걸었다. 잎이 흔들릴 때마다 숲의 동공은 커진다. 빈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건 깊은 것. 깊은 곳을 바라볼 때마다 가까운 것들은 멀어진다. 책장과 의자의 거리. 도마와 칼의 거리. 자주 눈이 시리고 시린 눈에 손가락을 베인다. 흔들리며 흐려지는 몸. 구름은 읽기도 전에 재가 되었고 재는 죄가 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태어나는 것처럼 죽으리라는 것. 죽는 것처럼 노래하리라는 것. 노래하는 것처럼 살게 되리라는 것, 사는 것처럼 다시 헤어지리라는 것. 죽으리라는 것. 잘못한 건 없었지만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흔들어보았으나 언제나 흔들리는 건 나였다.

   

안녕, 안녕.

되풀이하면 진짜가 되는 계절

   

모든 것이 제때 사라지고 있었다.

   

두 번씩 손을 흔들며

기어이 손을 흔들며

      

- 김선재, '흔들리는 노래'

May 10, 2020

사제인 삼촌은 아주 달랐다. 그는 매우 엄격했으며 순수했다. 하지만 그러한 특성은 보다 높은 정신으로 고양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통속적인 정신을 보상해줄 뿐이었다. 그는 교회의 본질적인 면을 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교회의 외적인 면, 이를테면 서열, 고위 성직자들, 성직자들의 예복, 무릎 꿇기를 보았다. 그는 교회 제단에서 나온 존재라기보다는 성구 보관실에서 나온 존재였다. 십계명을 어긴 것보다도 예식에서의 실수가 그를 더 자극했다. 이제 세월이 너무도 많이 지났기에 그가 테르툴리아누스의 어떤 구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 니케아 신경에 대한 이야기를 더듬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사제가 성무일과를 집행할 때 해야 하는 절의 횟수나 유형들을 그보다 잘 알지는 못했다. 자애롭지만 관습에 엄격하고, 규칙 준수에 세심하며, 또 느슨하면서도 소심하고 복종적인 그는 모범을 보인 몇몇 미덕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May 3, 2020

철학을 멋진 잠언이나 아주 충격적인 정식의 선집으로 보는 태도는 철학의 체계적 엄밀성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아주 유혹적입니다. 그리고 유독 그런 빌미를 주는 철학자들이 있지요. 가령 니체가 그렇듯이, 스피노자에게도 강렬한 정식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식들을 진술된 맥락에서 떼어낼 수 있다고 여기고, 멋들어진 것을 좋아하는 자기네 취향에 영합하는 표현에다 자기네 구미에 맞는 의미를 갖다 붙여 인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 역시 니체처럼 그의 사상과는 전혀 무관한 에세이의 제사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일 겁니다. 인용된 문구의 힘이 대개 그 뒤에 이어지곤 하는 밋밋한 담론에 충격을 불어넣을 거라고들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다고 없던 활력이 생길 리는 만무합니다. 철학이 지혜라고 믿는 사람들은 한편 철학이 특별한 전문 기술적 작업 없이도 모든 이의 의식에 현현할 영원한 물음들에 답을 주기를 기대하거나, 현재의 문제들에 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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