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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보았으나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람은 아무 쪽에서나 불었고 나는 아무 쪽으로나 걸었다. 잎이 흔들릴 때마다 숲의 동공은 커진다. 빈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건 깊은 것. 깊은 곳을 바라볼 때마다 가까운 것들은 멀어진다. 책장과 의자의 거리. 도마와 칼의 거리. 자주 눈이 시리고 시린 눈에 손가락을 베인다. 흔들리며 흐려지는 몸. 구름은 읽기도 전에 재가 되었고 재는 죄가 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태어나는 것처럼 죽으리라는 것. 죽는 것처럼 노래하리라는 것. 노래하는 것처럼 살게 되리라는 것, 사는 것처럼 다시 헤어지리라는 것. 죽으리라는 것. 잘못한 건 없었지만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흔들어보았으나 언제나 흔들리는 건 나였다.


안녕, 안녕.

되풀이하면 진짜가 되는 계절


모든 것이 제때 사라지고 있었다.


두 번씩 손을 흔들며

기어이 손을 흔들며

- 김선재, '흔들리는 노래'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