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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어 재를 치우느라고 난로 아래쪽의 재받이통을 꺼내자 타버린 종잇조각들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손끝으로 집어들어 살펴보니 글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비비니 종이는 흔적도 없이 바스러져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기행은 무척 기뻤다. 자신이 쓴 글자들이 강철이나 바위 같은 것이 아니라 사그라드는 불씨에도 쉽게 타버려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들이어서.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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