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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멋진 잠언이나 아주 충격적인 정식의 선집으로 보는 태도는 철학의 체계적 엄밀성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아주 유혹적입니다. 그리고 유독 그런 빌미를 주는 철학자들이 있지요. 가령 니체가 그렇듯이, 스피노자에게도 강렬한 정식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식들을 진술된 맥락에서 떼어낼 수 있다고 여기고, 멋들어진 것을 좋아하는 자기네 취향에 영합하는 표현에다 자기네 구미에 맞는 의미를 갖다 붙여 인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 역시 니체처럼 그의 사상과는 전혀 무관한 에세이의 제사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일 겁니다. 인용된 문구의 힘이 대개 그 뒤에 이어지곤 하는 밋밋한 담론에 충격을 불어넣을 거라고들 생각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다고 없던 활력이 생길 리는 만무합니다. 철학이 지혜라고 믿는 사람들은 한편 철학이 특별한 전문 기술적 작업 없이도 모든 이의 의식에 현현할 영원한 물음들에 답을 주기를 기대하거나, 현재의 문제들에 핵심 열쇠를 제공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언뜻 보기에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철학에서 영원이나 현재를 찾는 이 두 태도는 실은 그리 다르지 않은데, 이들은 공히 엄밀한 철학적 사고를 하나의 인상으로 환원하여 영원이나 현재 속박하는 방식으로 철학의 이론적 특수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대담(200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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