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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이 시기의 도스토옙스키를 알지 못했다. 한 시간쯤 떨어진 나움베르크에 어쩌면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 모르는 니체가 살고 있었다. 바그너, 헤벨, 플로베르, 켈러 등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들을 몰랐고 이들도 그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위험스런 큰 짐승처럼 낡고 헤진 의복을 걸치고, 사람들의 시선을 꺼리며 일하던 동굴에서 살그머니 기어 나오곤 했다. 드레스덴에서든 제노바에서든 파리에서든 그는 늘 같은 길로만 다녔다. 그가 카페나 클럽에 자주 들른 것은 오로지 러시아 신문을 읽어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키릴 문자로 된 편지나 러시아 말 몇 마디가 듣고 싶어서, 고향과 러시아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그가 화랑에 들어가 앉아 있었던 까닭은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서 몸을 녹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들이 러시아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독일에서는 독일인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인을 미워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작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만난 적도, 말을 나눈 적도 없었다. 오직 은행원들만이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창백한 얼굴로 은행 창구에 찾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러시아에서 보낸 우편환이 도착했는지 물었다. 그리고 100루블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곳에 있는 비속하고 낯선 사람들 앞에서 수없이 감사를 표하며 무릎을 꿇곤 했다. 은행원들은 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간과 그의 끝없는 기다림을 비웃었다. 그는 전당포의 단골 손님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몽땅 저당 잡혔다. 언젠가는 페테르부르크로 절박한 구조 요청을 보내기 위해 단 한 벌 뿐인 바지까지도 저당 잡힌 적도 있었다. 그가 보낸 끔찍스런 편지들은 고작 10루블 남짓한 돈 몇 푼을 얻기 위해 숨을 헐떡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몇 날이나 계속 일하거나 글을 쓰며 밤을 지새웠고, 그의 아내는 그 옆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곤 했다. 그 자신 또한 간질 발작으로 질식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때로는 집주인이 집세를 받기 위해 경찰을 대동하고 그를 찾아와 위협하기도 했고, 밀린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산원이 그를 찾아와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 <백치>, <악령>, <도박사>를 집필했다. 일은 그의 구원이자 고통이었다. 일에 파묻힐 때면 그는 조국 러시아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고 휴식을 취할 때면 강제수용소 같은 유럽에서 향수병에 시달렸다.

- 슈테판 츠바이크,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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