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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문체란 모어 속에서 더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아름다운 책은 일종의 외국어로 쓰여 있다"는 문구를 인용하지요. 작가는 모어 속에서 말을 더듬다가 끝내는 외국어처럼 된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모어 속에서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사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쉽게 읽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모어란 징그러운 말이잖아요. 프랑스어로도 영어로도 모어는 엄마의 혀를 의미합니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매우 근친상간적인 비유인 셈이지요. 모어의 공간 내부에서는 구전을 통해, 그러니까 입과 입을 따라서 엄마의 혀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혀과 같아지고, 이 엄마의 혀인 내 혀를 구사하면 편하게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이 자명하게 이루어집니다. 그곳은 말하는 사람이 부리는 응석을 무한히 받아주는, 부드럽게 닫힌 공간인 것이지요. 이 공간 자체가 실은 번역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 맹목의 공간 안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 사사키 아타루, '말이 태어나는 곳'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