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명

파이돈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엘리스 출신의 젊은이입니다. 그의 고향인 엘리스가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바람에 어린 시절 일찍 포로로 수감되었다가 이내 노예로 팔린 신세였지요. 이후 아테네의 한 노예 상인이 파이돈을 구매한 바람에 그를 따라 아테네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파이돈은 아테네에서 매춘부 신분으로 팔리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소크라테스 일파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소크라테스가 친구에게 부탁해 파이돈의 몸값을 치르도록 한 다음 다시 자유인 신분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고 하는군요. 그 다음부터는 자유인 신분으로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철학을 계속 공부했고,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소위 ‘엘리스 학파’를 세우기도 합니다.


파이돈은 플라톤이 남긴 동명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증언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대화편의 내용에 따르면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플레이우스에 들른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에서 마주친 에케크라테스가 파이돈이 아테네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물었습니다. 파이돈은 마침 자신이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이한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지요. 아무대로 낯선 지명들이라 어떤 상황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으실 것도 같은데요, 대강 비유를 한다면 강릉 출신의 어떤 사람이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평창쯤에 있는 마을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그에게 서울 소식을 묻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어쨌거나 파이돈의 입장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인 데다 노예로 팔려온 도시이기까지 하니 딱히 더는 아테네에 계속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까지 죽은 마당에야 굳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까닭도 없고요. 파이돈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른 도시이자 대화가 이루어진 물리적 장소인 플레이우스라는 도시는 우리의 주제와 관련한 흥미로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파이돈>에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생각들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플레이우스는 영혼 불멸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중요한 활동지이자 피타고라스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는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화 가운데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는 대목이나 자연 철학자들의 학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대목들에서 플라톤의 생각과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설 사이의 관련성을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플레이우스에 전해지는 피타고라스의 일화를 간단히 소개해볼까요. <투스쿨룸 대화>에서 키케로는 피타고라스가 플레이우스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어떤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키케로에 따르면 당시 플레이우스를 다스리던 왕이 피타고라스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빼어난 식견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 정체를 묻지요. 피타고라스에게 당신은 어떤 ‘소포스’냐고 묻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낱말은 희랍어에서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종류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지, 당신이 가진 지혜가 무엇인지 물은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말로 표현하니까 어쩐지 현학적으로 느껴지는 질문입니다만 실은 어떤 심오한 의미나 숨은 뜻을 가진 물음은 아닙니다. 가진 지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요즘 표현으로 바꿔본다면 그냥 전공이 뭐냐고 물은 것과 비슷합니다. 너 참 똑똑한 것 같은데 너가 배운 게 도대체 뭐니, 하고 묻는 셈이랄까요. 쉽게 말해 어느 분야의 전문가인지 질문을 던진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에 피타고라스가 대답합니다. 자신은 소포스가 아니라 필로소포스라고요. 그러니까 자신은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 셈이지요. 자신이 이제까지 만났던 어떤 전문가보다도 더 뛰어난 식견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낯선 사람에게 왕이 어느 방면의 전문가인지 묻자, 피타고라스는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로서 자신을 소개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당시로서는 생소한 표현이었던 필로소포스라는 대답을 들은 왕이 그건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가리키는 표현인지, 필로소포스가 어떤 의미인지 피타고라스에게 되묻습니다. 그러자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왜 소포스가 아니고 필로소포스인지 해명하는데, 그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은 지혜의 소유자일 수 없고 오직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아직 철학이라는 이름이 미처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활동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에케크라테스는 얼마 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독배를 들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플레이우스에 아테네 출신인 사람이 통 없는 데다 외지인의 방문도 뜸한 탓에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며 아테네에서 온 파이돈을 붙잡고 묻습니다. 혹시 봤느냐, 아니면 뭐 들은 이야기라도 있느냐, 하고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가 숨을 거두며 어떤 말들을 했는지 궁금해하는 에케크라테스에게 파이돈은 특별히 바쁜 일도 없을 뿐더러 소크라테스를 회상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즐거운 일이니 상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화답하지요.



... (후략)




2020. 2. 14. / Rolling School

info@labyrinthos.co.kr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