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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2020년 롤링스쿨의 첫 주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입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철학의 여러 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까다로운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루겠습니다. 물론 몇 번의 대화로 철학이 무엇인지 성마르게 답을 결정짓지 않도록 역시 조심해야 할 겁니다. 철학이 무엇이라고 딱 잘라 정의 내리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답을 정하고 얼른 이 문제는 잊어버리겠다는 식의 태도가 철학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만큼은 자명하니까요. 이 물음의 답을 찾아 정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이 어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차츰 알아나갈 수 있을 겁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문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지켜갔으며, 신탁을 빌미로 세인들의 무지를 일깨우며 이것저것 따져 묻고 다닌 통에 등에나 전기가오리 같은 기상천외한 별명을 얻기까지 했지요. 특히 유죄 판결을 피하거나 양형을 줄이기 위해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펼치지도 않고, 감옥에서 달아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거부한 채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서양의 사상적 전통에서 진정한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장면을 묘사합니다. 희랍의 전통에서 서사시나 비극의 영웅에게 죽음은 불가피하게 닥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생의 완성 의미하는 결정적 장면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플라톤이 묘사하는 선생의 죽음 또한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마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죽음의 장면일 겁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두고 이래저래 말을 붙이는 일이 조금은 민망합니다만 플라톤이라는 훌륭한 극작가의 솜씨 좋은 묘사 탓이랄까요, 그야말로 극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장면으로 역사에 남아 있지요. 유죄 판결과 사형 선고를 받아 옥에 갇힌 가운데, 얼마든지 죽음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음에도 탈옥을 돕겠다는 친구들의 권고를 물리치고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함께 담담히 죽음을 맞는 모습으로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둘러싼 이러한 상황을 흔히 ‘악법의 역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악법도 법이라는 이 말은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함께 소크라테스가 남긴 일종의 격언 같은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소크라테스가 진짜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이 말은 흔히 재판 결과의 부당함을 비판하며 탈옥과 망명을 권유하는 친구들에게 소크라테스가 했던 대답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게 이 주제를 다루는 대화편인 <크리톤>에서도, 혹은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등장하는 <파이돈>에서도 이런 표현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국가>나 <법률>, <고르기아스>나 <정치가> 같이 법이 주제로 등장하는 다른 대화편이나 플라톤의 저작이 아닌 다른 기록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직접 했는지 안 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표현 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말과 상황에 담긴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바람직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가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과연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직접 말해진 표현인지 문헌학적으로 고증하기보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비추어 이 표현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요.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흔히 일견 부당하게 보이는 결정마저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알려져 있지만, 과연 정말 그런가, 다시 말해 법을 지키는 일 자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무엇인가 따져보면 금세 이런저런 문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당장에 <변명>과 <크리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생각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크리톤>에서 재판 이후 수감된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며 탈옥을 종용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는 폴리스와 법률의 요구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고, 구성원은 반드시 이 요구에 복종해야 한다고 응수하지만, 다른 한편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자신을 석방한다면 자신은 이 명령에 불복하고 이제까지 그가 해왔던 일을 계속할 것이며, 몇 번을 붙잡혀 죽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계속 철학을 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법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지요. 물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아테네의 배심원들은 그런 조건으로 소크라테스를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곧장 사형을 선고했지요.


<변명>에는 법과 법을 지키는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상징적으로 교차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막바지인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아테네 함대는 스파르타 함대와 싸워 승리를 거둔 적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테네 함대 가운데 25척의 배가 난파당했지요. 전투를 마친 직후 아테네 함대의 지휘관들은 난파선의 생존자들을 구출하고 시신을 수습하고자 했지만 폭풍우로 인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당시 희랍인들은 이렇게 바다에 버려진 사람들의 영혼은 안식을 취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떠도는 망령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함대의 지휘관들은 귀환 후 이 문제로 법정에 기소되어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을 당했지요. 재판부터 판결과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이를 둘러싼 모든 과정이 단 한 번의 민회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는데, 당시의 재판 절차에 비춰본다면 이건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소 과정은 차치하고 재판 과정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아테네의 재판 방식은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퍽 독특하고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 과정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아테네의 재판은 크게 두 과정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재판의 전반부는 죄의 유무를 가리는 과정입니다. 재판이 시작되면 판결을 내릴 배심원들 앞에서 기소자가 먼저 고발의 내용과 함께 피고의 유죄를 주장하고, 뒤이어 고발 당한 사람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합니다. 그런 다음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은 배심원들의 판결이 이루어지는데, 만약 무죄 판결이 날 경우 재판은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통상적으로는 무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이 이어지겠고요.) 반면 유죄 판결을 내려질 경우 형량을 결정하는 2차 재판이 시작됩니다. 기소자와 피고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적절한 형량을 배심원들 앞에서 다시 주장하고, 배심원들은 이들이 주장한 형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최종 판결이 이루어집니다. 오늘날의 재판처럼 죄의 유무와 형량이 하나의 판결로 결정되는 방식과는 다를 뿐더러, 상급심에 항소할 수 있는 심급 제도 같은 절차도 없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재판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셈인데, 사실 이건 매우 아테네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어쨌거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이 사건에 관련한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며 무엇이 올바른 법인지 배심원들에게 되묻습니다. 이들 장군들의 재판 과정에서 아테네 사람들이 내린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정황이 나중에 가서 드러났지만, 자신만은 처음부터 줄곧 이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썩 효과적인 태도라고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군요. 여차하면 목숨이 달아날 판인데 되도록 고분고분하게 구는 편이, 가능하면 이들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편이 역시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마는, 그런 와중에도 결정권을 지닌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과연 법과 정의를 올바르게 알고 있느냐고 은근히 지적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또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정 시기의 아테네에서 있었던 경험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아테네에 과두파 정권이 들어섰던 적이 있는데, 이 정권은 고작해야 8개월 가량밖에 존속하지 못했지만 이 시기에 엄청나게 많은 반대파를 처형했던 바 있습니다. 이 무렵 아테네 평의회의 운영위원이었던 소크라테스는 다른 몇몇 사람과 함께 민주정의 옹호자였던 레온이라는 사람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었지요. 소크라테스는 이 명령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명령을 받은 직후 연행에 가담하지 않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붙잡힌 레온은 결국 사형을 당했는데, 소크라테스는 만약 과두파 정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이 일로 인해 자신 역시 진작에 처형되었으리라고 언급합니다.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일화들을 언급하며 자신이 법과 정의의 편에 서서 행동했노라 항변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소크라테스가 소개하는 일화는 오히려 법을 지키지 않은 사례에 가깝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법도 법이니까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 또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지요. 희랍 고전 연구 모임인 정암학당에서 간행한 <크리톤>의 작품 해설에는 이 악법의 역설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 주제가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한번쯤 관련 내용을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군요. 우리는 다시 우리의 주제,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돌아옵시다.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플라톤의 대화편들 가운데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이 네 작품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짜여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변명>은 아마 플라톤의 대화편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군요. 플라톤의 대표작으로 꼽기에도 손색이 없을 만한 훌륭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기도 하고요. 다만 <변명>의 내용이나 구성이 다른 대화편들에 비해 그냥 대뜸 읽기에 쉬운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극적으로 거의 군더더기 없이 완벽에 가까운 구성을 갖춘 탓일까요, 앞뒤 사정 설명 없이 대뜸 아테네인들을 부르며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당신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면서 연설을 시작하는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변명>의 첫 장면을 이루는데, 재판의 맥락을 알지 못하는 독자로서는 얼마간 당혹스러울 수 있는 전개 방식이지요. 또 실제 재판에서라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앞서 그를 기소하는 고발자의 연설이 그에 앞서 먼저 등장하겠고, 재판의 중간중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반박하는 주장들이 함께 등장하겠지만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발언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플라톤이 삽입한 이런 의도적인 공백들을 섬세하게 살피지 않고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하지만 얼마간의 사정을 파악하고 본다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치들이기도 합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대화인 <파이돈>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했었지요. 그러기 위해 <파이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조금 추적해봅시다. 앞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다루는 네 편의 대화편이 있다고 했을 때,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순으로 대화편을 소개한 것은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이들을 서사적인 배치한 결과입니다. <에우튀프론>은 고발 당한 소크라테스가 예비 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에우튀프론을 만나 나눈 대화를,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실제 재판 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행했던 연설을, <크리톤>은 옥중의 소크라테스를 찾은 그의 친구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종용했을 때 이들이 나눈 대화를, 마지막으로 <파이돈>은 독배를 든 소크라테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 감옥에서 그를 찾은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담고 있지요.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 세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법정에 고발합니다. 아테네의 신들을 모독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대화편인 <에우튀프론>은 플라톤의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인데, 고발 당한 소크라테스가 관청 앞에서 에우튀프론을 만나 경건함이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막 고발을 당한 참이니 이러한 작품의 주제 배치 또한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작품에 등장하는 에우튀프론은 퍽 독특한 인물입니다. 소위 경건함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매우 신실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런 탓에 때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합니다. 아마 지나치게 고지식한 탓에 어쩐지 매번 우스운 처지에 빠지고 마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겠지요. <에우튀프론>의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와 에우튀프론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예비 심판을 받기 위해 해당 관청에 출석했을 때,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해 관청을 방문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요. 그런데 이 살인의 성격이 조금 기묘합니다. 정황을 살펴볼까요. 에우튀프론의 가족은 아테네의 속지인 낙소스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집안의 품꾼 하나가 술에 취해 다른 노예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에우튀프론의 아버지는 살인을 저지른 품꾼을 묶어두고는 그의 처분 방안을 문의하기 위해 아테네로 전령을 보냈지요. 그런데 전령이 돌아오기 전에 갇혀 있던 품꾼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바로 이 사건이 에우튀프론의 고발이 성립하는 지점인데요,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인죄로 아테네의 법정에 고발하는 것입니다. 에우튀프론의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를 고소하는 것은 경건하지 못한 일이라고 에우튀프론을 비난하지만, 에우튀프론은 그들이 경건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즉 경건과 불경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비난을 한다고 반박하며 끝내 고소장을 제출하러 관청을 찾은 것이지요. 이런 사연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의 전문가임이 분명하니 그에게서 경건함을 배워서 불경죄로 고소 당한 자신의 재판에서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대화를 청합니다. <에우튀프론>은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담고 있고요.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기소에 맞서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지요. 그의 죄목이 불경죄였으니 자신은 불경하지 않았다고 반박한 셈인데, 재판의 결과만 놓고 본다면 에우튀프론과의 대화가 그리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군요.


어쨌거나 예비 심판은 세 사람의 고발을 유효하다고 판단했으니 실제 재판이 열렸겠지요. <변명>은 이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 앞에서 주장했던 연설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변명>의 첫 장면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인 여러분, 나를 고발한 사람들로 인해 여러분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로 인해 나 스스로도 거의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지경”이라고 입을 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언뜻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그러니 천천히 다시 살펴봅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을 향해 ‘배심원’이나 ‘재판관’과 같은 표현이 아니라 ‘아테네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데, 매우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앞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듯이 올바른 판결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배심원단이 진정한 의미에서 재판관, 즉 판결의 정당한 주체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 가능성을 포함한 호칭인 동시에, 고대 희랍의 도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발전한 사회문화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는 아테네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자부심에 호소하는 여지 또한 포함하고 있으며, 또 자신의 주장이 단순히 이 법정과 재판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 아테네라는 폴리스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호칭이기도 하니까요.


호칭에 이은 일성인 “무슨 일을 겪었는지 나는 모른다"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변명>의 가장 마지막 목소리, 사형을 언도받은 소크라테스의 최후 진술이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모른다”라는 구성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고요. 앞서 아테네의 일반적인 재판 과정을 소개했었지요. 그러니 우리는 <변명>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아뉘토스는 멜레토스든 소크라테스의 발언에 앞서 그를 고발하는 내용의 주장을 법정에서 먼저 펼쳤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크세노폰의 기록에 따르면 재판정의 고발자들은 “소크라테스는 폴리스가 신봉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적 존재들(daimonia)을 도입함으로써 불의를 저질렀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불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이러한 표현으로 말문을 여는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당신들이 직접 겪은 일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판에 앞서 기소 자체가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셈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첫 발언에서부터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자신을 둘러싼 기소나 이 재판과는 오히려 철저하게 무관하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인식은 뒤이은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들로 인해 나 자신을 잊어버릴 지경"이라는 말에서요. 여기에서 그들은 당연히 소크라테스의 말문을 열기 직전에 그를 고발하는 내용의 주장을 펼쳤던 기소자들을 가리킬 겁니다. 그들로 인해 자신을 잊어버릴 지경이라는 표현은 고발자들이 비난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의 주장이 정작 소크라테스의 실제 언행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내용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지요.

… (중략) …

재판 후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사형 집행 또한 재판 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겠지만, 소크라테스의 경우 재판 후 30일이 지난 뒤에야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해마다 델로스로 사절단을 보내는 종교 행사가 있었는데, 사절단을 떠난 배가 델로스에 갔다가 되돌아올 때까지는 모든 사형 집행을 금지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상 악화나 다른 사정으로 사절단의 귀환이 늦어지면 사형의 집행 또한 자연히 그 만큼 연기되기 마련인데, 이런 까닭에 소크라테스 역시 재판 후에 당시 기준으로는 꽤 오랜 기간 사형을 기다린 셈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크리톤은 사절단이 이튿날 아테네에 도착하리라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리고 새벽녘 곧장 소크라테스를 찾아가지요. 서둘러 찾아간 일이기도 했지만 여차하면 어둠을 틈 타 소크라테스를 빼돌릴 계획도 있었을 겁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크리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이유가 그를 설득해서 탈옥을 감행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크리톤>에는 이미 그가 소크라테스를 빼돌리기 위해 사람을 매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감옥을 찾았지만 크리톤이 발견한 것은 평온하게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입니다. <크리톤>은 문득 잠에서 깨어난 소크라테스가 옥중에서 친구를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네는 장면으로 시작하지요. 웬일로 이렇게 일찍 찾아왔는지, 지금 시간이 언제쯤인지,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는지, 언제부터 안에서 기다렸는지 묻는 소크라테스에게 크리톤은 아직 어두운 새벽녘이고, 이미 앞서 호의를 사둔 까닭에 자신은 간수와 퍽 친숙한 사이이며, 한참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답합니다. (이 모든 대화가 지극히 담담하고 평온한 어조로, 그러니까 그냥 자주 만나는 친구를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점심은 먹었는지 묻는 인사처럼 이루어진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옥중에 잠든 소크라테스의 곁에서 침묵을 지키며 그를 바라보는 크리톤의 모습은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을 통틀어 손에 꼽게 아름다운 장면이기도 합니다. 당장에 내일이면 목숨을 잃을 친구가 자신의 기대와 달리 평온한 단잠에 빠진 모습을 지켜보며 크리톤은 어떤 생각들을 떠올렸을까요.


소크라테스가 수감된 동안 그의 친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감옥을 드나들며 소크라테스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크리톤 역시 소크라테스를 자주 찾아온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요. 하지만 이번 방문의 의미는 아무래도 남다릅니다. 어차피 예정된 사형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당장에 그게 내일로 다가왔으니까요. 왜 자신을 깨우지 않았는지 묻는 소크라테스에게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가능한 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에 그를 깨우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편안하게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거니와,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당면한 불운과 고통을 얼마나 수월하게 견디는지 놀라고 있었다면서요.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곧 죽어야 한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지요.


이내 정신을 차린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사절단의 귀환 소식을 전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상기시킨 뒤 탈옥을 설득할 작정이었겠지요.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 소식을 들어도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배가 다음날 돌아온다니 날이 밝으면 이제 오늘 돌아온다는 거냐, 아니면 그 다음날 돌아온다는 거냐 이런 날짜나 따져가면서요. 그래놓고는 한다는 소리가 자신이 방금 꿈을 꾸고 있었는데, 절세미인이 흰 옷을 입고 자신을 부르면서 그가 모레 프티아에 도달할 것이라고 알려줬으니 자신의 사형 집행은 내일이 아닌 모레 이뤄질 것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프티아는 테살리아 지방의 도시 이름입니다. 테살리아는 고대로부터 비옥한 토지와 풍요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주민들이 찾아오는 지역이었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결국 크리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변명>의 마지막 장면이자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마지막 발언, “이제 떠날 시간이,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되었지만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만이 알고 계신다"는 진술과 비슷한 발언으로 크리톤과의 대화 또한 끝이 나지요. “신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니, 그대로 하자”는 말로요.


자, 사형 직전까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배는 돌아왔고 예정된 시간 역시 곧 도착할 겁니다.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둔 소크라테스는 마지막까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세상을 떠납니다. 통곡하는 아내를 먼저 밖으로 내보내고 독배를 든 다음 편안하게, 생전에 그랬듯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지요.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은 친구들에게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자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일찍부터 철학이야말로 최선의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돌아다녔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요. 그렇다면 철학은 곧 죽음의 연습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흥미롭게도 비트겐슈타인이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일기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오로지 죽음만이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요. 이 말을 어설픈 허무주의에 견줄 수는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잘못된 인생관이 빚어내는 오류라고 어느 일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된 삶, 즉 가장 나쁜 삶의 표지라고 밝히기도 했지요. 어쩌면 플라톤적 세계관의 가장 무시무시한 비판자, 가장 가혹한 맞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그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태도, 아니면 죽음의 태도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죽음을 앞둔 태도와 매우 비슷한 관점을 가졌음을 시사하는 이런 기록들이 역시 흥미롭군요.

자, <파이돈>을 읽기 위한 준비는 이것으로 얼추 마친 셈입니다. 옥중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지킨 파이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케크라테스를 만나 소크라테스의 최후 모습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그에게 자신이 목격한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음 시간에는 파이돈의 이야기를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철학이 무엇인지, 최선의 삶과 죽음의 연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격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20. 2. 7.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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