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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오늘 다룰 주제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입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꼼꼼하게 다루기에는 턱없이 커다란 주제인데요, 오늘은 <인간의 조건>을 중심으로 이 주제에 이르기까지 한나 아렌트의 문제 의식이 어떻게 형성, 발전되었는가에 주로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아렌트라는 인물 자체가 생소하신 분들이 있을 테니 먼저 일종의 인적사항이랄까요, 간단한 소개부터 진행하지요.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하노버의 유대인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11년 아렌트의 가족은 쾨니히스베르크로 이주했고, 쾨니히스베르크가 하면 바로 칸트가 떠오르지요. 칸트가 생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채 평생을 살았고, 매일 시계추처럼 산책했다는 동네가 바로 이곳입니다. 아렌트 역시 이곳에서 성장했지요. 소녀 시절 아렌트는 칸트와 룩셈부르크를 동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렌트는 1924년 독일의 마르부르크 대학으로 진학한 뒤 이곳에서 하이데거를 만났고, 하이데거의 영향은 이후 아렌트 사상의 근간을 이룹니다. 1926년 아렌트는 하이데거와 결별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곳에서 그녀는 야스퍼스와 후설에게 사사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 연구로 192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듬해 마르부르크 대학 철학과 동기인 귄터 스테른과 결혼한 아렌트는 이후 1937년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그녀는 1933년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자 파리로 망명했고, 1940년 파리에서 아렌트는 하인리히 블뤼허와 다시 결혼합니다. (이들은 1970년 블뤼허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합니다.) 이후 아렌트는 1940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하자 이듬해 뉴욕으로 다시 망명했지요.


망명 후 뉴욕에서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치던 아렌트는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 출간을 통해 파시즘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공산주의의 이념과 스탈린주의의 폐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냉전과 반공산주의 기조에 더불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같은 해 아렌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지요. 아렌트는 1953년 프린스턴 대학 강의를 시작으로 강단에 섰으며, 1967년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프린스턴, 버클리, 시카고 대학 등에서 강의했습니다. 1956년 시카고에서 ‘활동적 삶(vita activa)’을 주제로 강의했고, 이 강의의 내용을 엮어 1958년 출간한 책이 바로 <인간의 조건>입니다.


1963년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다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하며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섭니다. 1960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은 2차 대전 종전 후 신분을 감추고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던 아이히만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했습니다.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1961년 12월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했고요. 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유대인 학살 책임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거듭해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사형은 이듬해 집행되었지요. 아이히만은 나치에서 유대인 이주 책임자로 근무했습니다. 나치가 진행한 유대인 이주 정책은 점령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대규모 수용소로 이주시키는 것이었고, 2차 대전을 통틀어 나치의 이주 정책으로 유럽에서 사망한 유대인의 규모는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출간하며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라는 부제를 책에 붙였습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 아렌트는 재판 과정에서 목격한 전범 아이히만의 평범함에 주목했지요.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아이히만의 단정한 외모, 정중하고 교양 있는 태도, 국가가 부과한 명령을 지키는 것이 군인의 도리임을 항변하는 지적 능력까지, 아렌트가 목격한 아이히만은 흠 잡을 곳 없이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우리 중의 한 사람이었고 어떻게 본다면 개중 뛰어나기까지 한 사람이었지요. 아이히만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자신은 그저 단순히 상부에서 주어진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할 때,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악(das Radikale Böse, radical evil)’을 발견합니다. 아렌트의 관점에 따르면 악은 뿔 달린 악마처럼 괴이하거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일상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들과 같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언제든 악을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거나 들불처럼 번져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아렌트는 악이 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을 때 악의 실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녀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신이 그 명령을 실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도래할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단순히’ 실행에 옮긴 사람입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악은 바로 여기에 존재하지요.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 “나 하나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나는 명령 받은 대로 할 뿐이야” 등의 핑계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은 언제든 악에 동참하고 악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라고 부릅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언제나 악은 선해지거나 악해지기로 결심한 적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이히만을 시대의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만들었지요. 어리석음이 인간에게 불편과 불행을 초래하는 유쾌한 부덕이라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이어 <혁명론>을 출간합니다. 이후에도 아렌트는 꾸준히 대학에서 강의를 이어가지만 공식 저술은 많이 남기지 않았습니다. 1968년 <암흑시대의 인간>, 1970년 <폭력에 대하여>, 1972년 <공화국의 위기>를 출간했고요. 기타 저작으로 강의록과 수상 연설 등이 일부 남아있으며, <정신의 삶>을 저술하던 중 1975년 12월 4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1978년 뉴욕의 한 출판사가 아렌트의 유작으로 <정신의 삶>을 출간했는데, 국내에서 한동안 절판이었던 이 책이 최근 다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약력이랄까요, 소개는 이 정도로 해두고 아쯤에서 아렌트 사상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지요. 아렌트는 16세 무렵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접하고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칸트 사상의 영향은 그녀의 저작 곳곳에서 드러나 있고요. 칸트가 제시한 인간관, 근본악의 개념, 사유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공동체의 가능 근거로서의 이성과 판단력 등이 아렌트 사상의 핵심 개념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합니다. 아렌트는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를 만나 교제했고, 이들은 각자에게 다른 배우자가 있었음에도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결별 이후에도 자신이 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으며, 나치 부역 혐의로 하이데거의 사상 자체가 불손한 의심 아래 놓인 상황에서도 이를 구제하기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기도 했지요. 하이데거 역시 아렌트만큼 자신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아렌트 사상의 큰 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조건>, <혁명론>, ‘칸트 정치철학 강의’로 이어지는 흐름을 추적해야 합니다.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활동적 삶(vita activa)’과 ‘정치적 생명(bios politicos)’이라는 개념이 이들 저작을 통해 체계를 이루기 때문이지요. (‘칸트 정치철학 강의’는 1970년 뉴스쿨에서 진행한 아렌트의 강의록인데, 아렌트 사후인 1980년 로널드 베이너가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엮어 출간했습니다.)




‘정치적 생명’에 대한 아렌트의 사유는 ‘버림 받은 사람들(pariah)’, ‘장소를 박탈당한 사람들(displaced persons)’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아무래도 그녀 자신이 지닌 여성, 유대인, 망명자라는 ‘이방인’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지요. 아렌트의 관점에서 장소의 박탈은 무엇보다 공적 공간,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을 의미하는데, 공적 공간에 접근할 수 없을 때 인간의 삶은 사적 공간으로 퇴행합니다. 일종의 유폐된 상태랄까요. 아렌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시다.




본래 ‘박탈된(privo)’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private)’이라는 용어는 공공적 영역의 다양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데 본질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 사적인 삶에서 박탈된 것은 타자의 존재이다. 타자의 시점에서 보면 사적인 삶을 사는 인간은 현상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된다. - 아렌트, <인간의 조건>




아렌트의 관점에서 공적 공간으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사회에 실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들 ‘버림 받은 사람들’의 문제는 단순히 특정 개인, 계층이 사회적 자원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계층 간 갈등의 문제와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로 이어지지요.




공공적 공간에서 추방된 사람들과 사회 사이의 갈등은 사회가 추방된 사람들을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가의 문제와 무관하다. 문제는 단적으로 추방된 사람들이 현실적인 존재인가에 있다. 사회가 추방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그리고 주고 있는 고통은 그로 하여금 자기 존재의 현실성과 존재 의의를 의심하게 만들고, 그를 그 자신이 보기에도 실재하지 않는 위치(non entity)로 환원하는 것이다. – 아렌트, ‘The Jew as Pariah: A Hidden Tradition’




공적 공간은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대해 응답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의 말과 행동의 의미는 단순히 개별적 활동이나 집합적 표상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활동은 다른 인간으로부터의 응답에 의해 의미를 이루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공적 장소의 박탈은 행위와 의견의 응답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실존과 존재 의의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장소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확신을 가질 능력과 행위 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그 자체가 어떤 권리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 한 기능할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 인간이 행위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권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와 의견에 기초해 타자로부터 판단을 받는 관계가 성립하는 체계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말한다. –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이처럼 공적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자신의 사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개진합니다. 1956년 시카고 강의를 토대로 저술한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그리스 철학이 제시한 두 가지 삶의 양식을 비교, 검토하며 자신의 사상을 제합니다. 고대 희랍인들은 삶의 양식을 크게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과 ‘활동적 삶(vita activa)’으로 구분하고, 정념에 휩쓸리지 않는 관조적 삶을 더 나은 삶의 양식으로 여겼습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삶의 두 양식 가운데 ‘활동적 삶’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이를 위해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의 세 가지 활동을 인간적 삶의 조건으로 제시하지요.



아렌트에 따르면 노동은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으로, 인간이 자신의 노동력을 자연에 투사해 자연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생산물을 획득하는 활동을 가리킵니다. 작업은 인간 실존의 비자연적 측면에 상응하는 활동으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사물을 통해 인공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활동이지요. 아렌트가 보기에 인간의 삶은 이 세 가지 조건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인간다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행위의 영역입니다. 한 인간이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는 공간,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는 공간이 바로 행위의 공간이며, 인간은 행위의 공간에서 상호 교류를 통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행위의 공간을 가리켜 공적 영역이라고 부릅니다.



자,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전개 과정을 통해 공적 영역의 중요성을 개괄한 뒤, 뒤이어 공적 영역의 창조에 대한 문제로 나아갑니다.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프랑스혁명과 미국 혁명을 통해 사회 현상으로서의 혁명을 분석하고자 시도하는데, 이를 통해 그녀는 혁명을 역사의 새로운 출발이자 세속적 영역의 탄생이라고 정의합니다. 아렌트에 따르면 근대 혁명은 무엇보다 사적 자유에 대비되는 공적 자유의 출현과, 이것을 제도화하여 정치 질서로 보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행을 통해 아렌트의 문제의식이 행위의 공간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국가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보장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후 <인간의 조건>에서 공적 공간의 개념과 중요성이, <혁명론>에서 공적 공간의 창조와 제도화에 대한 아렌트의 사유가 나타난다면,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는 공적 영역에서 행위 하는 능력, 그리고 공적 영역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 근거로서의 인간의 역량이 탐구의 중심에 등장합니다. 아렌트에게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는 무엇보다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에 따르면 공적 영역에서의 언어 활동은 단순한 의사소통적 기능을 넘어 한 인간이 자신의 인격을 드러내고 타인으로부터 이에 대한 응답을 획득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입니다. 아렌트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 특히 칸트가 제시한 초월적 이성을 통한 보편적 사유의 가능성을 서로 다른 인간들이 공통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제시하지요. 이처럼 아렌트의 사상은 공적 공간에서 배제된 타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공적 공간의 구체적 구성 요소에 대한 탐구(<인간의 조건>), 공적 공간의 창조와 구성에 대한 논의(<혁명론>), 공적 공간의 가능근거(<칸트 정치철학 강의>)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후략)




2020. 1. 16. / 교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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