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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비판을 위하여


벤야민의 텍스트는 대체로 난해합니다. 종종 난해한 것을 넘어 난삽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을 만큼. 이러한 어려움은 단순히 벤야민이 사용하는 독창적인 개념이나 그가 다루는 문제의 역사적인 배경이 낯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문제를 제시하고 풀어가는 방식 자체가, 즉 글의 의미 구조 자체가 난삽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런 사정 때문에 벤야민 텍스트는 까다로운 독해를 요구합니다. 마치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그가 밝히고 있듯이, 성급하게 대상을 움켜쥐려 하지 않는 숙고와 우회를, 깊은 침잠과 세심한 관조를 강제하는 것처럼. 짧은 에세이나 촌평이 아니라 이론적인 얼개를 가진 텍스트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럼 <폭력 비판>를 집필할 무렵 벤야민의 사정을 먼저 들여다봅시다. 벤야민은 1921년 이 텍스트를 작성합니다. 베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2년이 지났고, 도라와 결혼한 지 4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 시기 벤야민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을 집중적으로 읽었으며, 결국 발행하지 못한 잡지 <앙겔루스 노부스>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내외의 정세는 복잡합니다. 기본적으로 1914년부터 4년 간 지속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여전히 독일의 현실을 옥죄고 있었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여파 또한 유럽을 뒤흔들고 있었지요. 1918년 독일 혁명이 발발해 기존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했고, 1919년 바이마르에서 모인 국민의회가 헌법을 새로 제정하면서 독일은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합니다. 총선거에서 사회민주당, 민주당, 중앙당이 연합한 민주공화파가 승리를 거두면서 연립 내각이 구성되었지요. (저 유명한 바이마르 공화국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벤야민은 정치에 대한 일련의 논문들을 집필한 계획을 세웠으며, 또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벤야민은 총 세 편의 정치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것이 바로 <폭력 비판> 논문이고요. 두 번째는 <‘삶과 폭력'에 대한 짤막하면서 매우 시의성 있는 노트>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고, 총 2부로 구성된 세 번째 논문은 1부에서 ‘진정한 정치가’의 문제를, 2부에서 ‘진정한 정치'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논문은 현재 실종 상태입니다. <기술복제> 논문의 2판이 오랜 기간 실종되었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된 것처럼 이들 역시 언젠가 다시 발견될까요? 벤야민이 남긴 편지에 따르면 세 번째 논문의 2부에서 그는 폭력의 해체라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는데, 이를 통해 <폭력 비판> 논문의 주제를 계승, 보완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아쉬운 면이 있지요.

어쨌거나 <폭력 비판>은 사회적인, 또 시대적인 복잡한 흐름 속에 자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논문에서는 여러 핵심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데요, 법과 정의의 관계, 수단과 목적의 의미에 대한 성찰, 자연법과 실정법의 구분, 폭력의 역사적 기원, 정당한 폭력과 부당한 폭력,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의 구분 등의 여러 논의가 중첩되어 나타납니다. 또 노동자의 파업권과 (경찰력과 같은) 국가 권력의 집행, 강제 징집과 동원, 개인의 정당방위권, 국가와 전쟁 등의 당면한 사회 문제에 대한 고찰 또한 곳곳에 포함하고 있고요.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즉각적으로 물리적인 폭력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신체에 대한 물리적인 폭행 뿐만 아니라 모욕이나 혐오 발언 같이 언어의 특정한 사용 또한 폭력일 수 있고, 어떤 태도나 타인을 대하는 특정한 방식 역시 마찬가지로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아가 특별한 적극적인 행위가 없이도, 예컨대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구분하거나 장애인의 접근성을 현저하게 제한하는 것처럼 신체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 또한 폭력일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적극적인 행위로서 작위에 의한 폭력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부작위에 의한 폭력이 때로는 더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닐 수도 있습니다.)

벤야민이 <폭력 비판>에서 사용하는 ‘폭력’에 해당하는 독일어 ‘Gewalt’는 힘, 폭력, 권력, 권능, 무력 등의 폭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방금 살펴본 것과 같은 폭력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벤야민의 논의는 권력과 그것의 작용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 이러한 맥락에서 독문학자 문광훈은 벤야민의 ‘폭력'을 ‘강제력’으로 독해할 것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폭력이라는 낱말에는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따라붙지만, (이후에 살펴볼 것처럼) 벤야민은 단순히 이러한 맥락으로만 폭력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신적 폭력’과 같이 특정한 종류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요청하는 듯한 주장까지 덧붙이지요. 한국어 사전은 폭력을 ‘남을 거칠고 사납게 제압하는 힘’으로 규정하는데, 벤야민이 사용하는 ‘Gewalt’의 의미는 ‘특정한 상황에 개입할 수 있는 구속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Gewalt’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으며,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정당하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벤야민 선집의 역어를 사용하기로 합시다. (하지만 언제나 폭력, 강제력, 권력, 힘 … 등을 함께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폭력 비판>의 첫 머리에서 벤야민은 폭력이 법과 정의와 맺는 관계를 서술하는 것을 폭력 비판의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폭력은 나쁘고 그것을 비판하겠다, 는 것과는 하등 무관합니다. 벤야민이 실제로 ‘폭력’을 ‘비판’하고 있는 지점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벤야민의 초점은 폭력을 반박하고 부정하는 것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과 정의의 차원에서 폭력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법과 정의의 차원에서 폭력은 강제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논의의 핵심입니다. <폭력 비판> 논문에서 벤야민은 다소 산만하게 여러 논점들을 늘어놓지만 독자는 이것을 놓쳐서는 곤란합니다. 법이 기본적으로 권력을 집행하는, 대상에 대한 구속력을 행사하는, 피할 수 없는 강제력을, 즉 폭력의 성격을 갖는다면, 이러한 폭력은, 강제력은, 구속력은, 즉 권력은 어디에서 자신의 근거를 갖는가, 의 문제입니다. 쉽게 말해 이렇게 고쳐 물을 수 있지요. 법은 정의로운가? 법이 갖는 강제력은 정당한가? 라고요.

법에 대한 벤야민의 고찰에서부터 출발해볼까요, 벤야민은 <운명과 성격>에서 법의 판결은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규정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법이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지요. (벤야민의 이러한 관점은 카프카의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법과 죄에 대한 처벌을 연결해서 생각하지만, 르장드르 같은 법제사가들이 증명하듯 실제로 역사에서 법의 의미는 처벌이 아닌 처벌의 금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특정 행위에 대한 사적 복수, 즉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동시에, 일정한 약속, 즉 법이 정한 절차를 수행하면 다시 동등한 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법의 핵심이니까요. (물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법 체계의 근간은 로마법의 특징입니다. 고조선의 8조법이나 히브리법, 수메르법 등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양한 법제의 기원과 그것의 현대적 잔존은 다른 논의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합니다.) 요컨대 법은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셈할 수 없는 것을 셈할 수 있는 것으로, 즉 신적인 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벌거벗은 자연 그 자체를 사회적인 것으로 이행시키는 과정 속에 성립합니다. 명문이든 관습이든 법의 외형을 막론하고 인간의 사회와 법은 분리되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벤야민은 법이라는 공백, 법이 감추는 공백에 주목합니다. 법이라는 폭력의 역사를 고찰하면서요. 벤야민에 따르면 법이 갖는 강제력은 유령과 같습니다. 도처에서 집행되지만, 그 실체는 결코 포착되지 않으니까요. 벤야민은 자연법과 실정법을 비교하면서 법이 처한 모순적 상황을 정당화의 이율배반으로 제시합니다. 자연법은 법적 강제력을 자연의 소산으로, 즉 인간의 개별적인 경험에 선행하는 보편적 규범으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폭력의 사용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개체가 갖는 자연적인 권리이며, 따라서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러한 권리를 사용하는지가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을 이룹니다. 즉 기본적으로 행위 자체의 폭력적인 성격을 인정한 뒤,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정당한 폭력과 정당하지 않은 폭력을 구분하는 것이지요. 반면 실정법은 법을 사회적 구성물이자 역사적 결과물로 보고, 법의 강제력을 인간이 경험적 사실에 의거하여 제정한 법 그 자체에서 찾습니다. 즉 행위가 법에 합치하다면 행위에 내재한 폭력성과 행위 목적의 정당성 또한 확보되는 것이지요. 벤야민은 이러한 상황을 자연법은 목적의 정의를 통해 수단을 정당화하고, 실정법은 수단의 정당화를 통해 목적의 정당성을 보증한다고 서술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리고 <폭력 비판> 논문의 곳곳에서) 바로 이 ‘정당화’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자연법이 수단을 정당화한하는 것과 실정법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물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자연법의 경우 법이라는 규범 바깥에서 어떻게 목적을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할 수가 없습니다. 법의 행사를 정당화하는 준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연’이라는 막연한 대답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자연, 사회가 규정하지 않고 사회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그 자연에서 서로 다른 목적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왼쪽으로 가고 싶고 너는 오른쪽으로 가고 싶을 때 우리가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어떤 근거로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 자연법은 근본적으로 답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법 체계가 자연법이 아닌 실정법에 기반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실정법 또한 법이 규정한 절차만 따른다면 어떠한 목적이든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가에 대해 썩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법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수정, 보완을 거듭하며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즉 그래서 목적이 절차를 벗어났을 때 법이 지속적으로 그것을 자신 안으로 다시 포섭한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러한 관점 또한 법과 사회의 괴리가 항구적으로 상존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벤야민은 목적과 정의의 기준을 제외하고 폭력의 수단, 강제력의 방편들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합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결국 (모든 폭력의 기원으로서) 권위란 자기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도 근거할 수 없습니다. 자연법도, 실정법도 법 그 자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최초의 준거라는 문제 앞에서 무력합니다. 이를 테면 폭력을 금지하는 법의 기원 또한 하나의 계약으로서, 일종의 강제적인 폭력으로 ‘이미’ 당사자들을 구속합니다. 법의 기원에 폭력이 있다는 통찰은 그리 새로울 것이 아니지만, 이 폭력의 기원 역시 법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는 것, 근본적으로 이 두 문제가 분리되지 않는 한 몸이라는 것은 중요한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모든 권위의 원천, 법의 논증과 토대, 그것의 제정과 집행이 그 자체로 근거 없는 강제력에 해당한다면, 그래서 법과 권위에서 올바름과 정의를 연역할 수 없다면, 정의와 올바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 것인가? 사회 속에서 끝없이 발생하고 길항하는 서로 다른 힘들의 관계를 폭력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 존재하는가? 라는.

… (중략) …

벤야민은 폭력에 대한 비판은 결국 폭력의 역사에 대한 철학이라고 선언하며 <폭력 비판> 논문을 마칩니다. 왜냐하면 법과 정의, 폭력의 세 차원에 있어 발생하는 기원의 공백이라는 문제는 결국 그것들이 시대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 어떠한 형세를 이루는지에 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나아가 벤야민은 역사의 결말이라는 이념만이 개별 역사적 상황에 대해 비판하고 구분하고 결정하는 입장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헤겔에 뿌리를 둔 벤야민의 관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지요.

법의 정당성과 권위는 이미 벤야민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모호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모호한 것, 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바로 정의의 문제입니다. 법과 폭력이 근원에서부터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태, 기원이 준거를 이루지 못하는 과정으로부터 자기 복제를 거듭하는 체계를 이룬다는 사태는 정의의 문제를 법의 차원으로 축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법과 폭력이 근본적으로 동질적인 약호 체계를 이룬다면, 정의는 이 지시체계를 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제시하고자 하는 주장의 핵심입니다. 법으로부터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법은 폭력과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법의 기원으로서 폭력은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에서 정의의 자리를 어디에,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라는 절박한 문제이지요.

데리다는 여기에서 저 유명한 ‘아마도’에 관한 논의와 도래할 정의, 즉 정의의 예비적 성격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냅니다. 법은 필연적으로 ‘이미 여기에서’ 발생한 사건의 차원을 이루기 때문에 정의는 항상 법을 초과하고,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의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의를 말할 때 사람은 언제나 ‘아마도’를 함께 말해야 합니다. 의미의 유예와 연장만이 정의의 가능성을 예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가능성만이 세계 속에 정의의 자리를 정초할 수 있습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정의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 아니라, 무엇보다 정의 그 자체입니다. 정의에 귀 기울이고, 정의가 어디에서 오는지, 정의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특정한 언어와 어구와 표현과 맥락과 배치 속에서 어떻게 정의가 모습을 드러내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만이 정의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롭다는 것은 단순히 정의를 선언하거나 밝히고 주장하고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라는 말이 행해지는 삶의 테두리, 그 유래와 지향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달리 말하면 삶의 일상적 사소함에 충실해지는 것이자, 타자의 자리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상세한 논의는 언젠가를 위해 남겨둡시다. 어쨌거나 벤야민을 이쯤 읽었다면 ‘삶의 일상적 사소함’이며 ‘충실한 이해’며 운운했을 때 어쩐지 익숙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바로 벤야민이 여러 저작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앎의 태도이자 산책자의 시선이고 번역자의 과제이며 해석자의 의무인, 견고한 정신이 혼란한 시대의 풍경에서 건져올리고자 하는 진리의 이념이라는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이지요.

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벤야민은 폭력 비판은 그것의 시대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고찰은 오로지 역사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선언하며 <폭력 비판> 논문을 마쳤습니다. 모든 의미는 역사 속에서만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헤겔주의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입장이지만, 벤야민 같은 별종이라면 이 또한 그저 단순하게 헤겔의 입장을 반복하지는 않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벤야민이 생전 가장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던 최후 저작이자, 유고로 남은 ‘역사 철학 테제’를 다루겠습니다. 벤야민처럼 결국 모든 것의 의미가 역사를 통해서, 역사 속에서 드러나고 완결될 수 있다고 본다면, 역사 그 자체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8. 6. 5.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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