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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은 벤야민의 저술 가운데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겁니다. 벤야민이 ‘아우라의 파괴’라는 저 유명한 명제를 제시하는 논문이지요. 벤야민의 이 논문에는 세 가지 판본이 존재합니다. 제1판은 (벤야민의 많은 저술들이 그렇듯) 완성본이 아닌 원고 형태로만 전해집니다. 벤야민은 이 원고를 바탕으로 출간을 위한 최종본을 작성해 독일의 ‘사회연구소(Institut für Sozialforschung)’로 보냈는데, 이때 작성한 원고가 제 2 판입니다. 벤야민은 아도르노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제2판을 기술복제 논문의 ‘원판(Urtext)’이라고 지칭한 바 있지요. 하지만 이 판본은 연구소가 추구하는 노선과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구소의 편집진에 의해 출판이 거부되었습니다. 이후 연구소와 벤야민은 이 논문을 프랑스어로 출간하기로 합의했는데, 연구소가 정치적 고려에 따라 벤야민에게 논문의 일부분을 수정할 것을 요구했고 벤야민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연구소는 수정한 원고를 일종의 축약판으로 프랑스에서 출판했고요. 벤야민은 이 논문을 프랑스어로 출판한 뒤에도 정치적 고려와 제약 없이 출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적 성향의 잡지, 특히 소련에서의 출판을 기대하며 제1판과 제2판을 토대로 새롭게 논문을 작성했는데, 이때 작성한 것이 논문의 제3판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벤야민은 생전에 프랑스어로 작성된 논문의 축약본만을 출판할 수 있었지요. 제3판에서 벤야민은 제2판에서 핵심적으로 제시했던 논의들을 상당수 삭제했는데, 벤야민 스스로가 핵심 논의들을 뺀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제2판의 원고가 오랫동안 실종된 상태에서 벤야민이 최종적으로 작성한 제3판이 이 논문의 표준 판본으로 수용되었으며, 독일에서는 벤야민 사후인 1963년에야 처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참고로 실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제2판의 원고가 나중에 호르크하이머 아카이브에서 발견되어 1989년 벤야민 전집에는 이 원고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 논문은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유물론자로서 벤야민이 가진 관점을 잘 드러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미국으로 이주했던 사회연구소에서 출판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고요.) 논문의 서두에서 벤야민은 현재의 생산 조건 속에서 예술의 발전 경향에 대한 예언적 요구들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에 따라 예술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들, 예를 들면 창조적 재능이나 천재성, 영원한 가치 등의 개념들이 폐기될 것이라고 전망하지요. 벤야민에 따르면 인간은 어느 시대에나 예술 작품을 모방할 수 있었지만, 1900년 전후에 등장한 새로운 복제 방식은 예술의 작업 방식과 예술 작품이 갖는 영향력 모두에 심대한 변화를 끼치기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벤야민은 복제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사진과 영화라는 두 매체를 집중적으로 고찰하지요.

벤야민은 예술 작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일회적 현존으로 정의하고, ‘그것이 지금 이곳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원작의 진품성이라고 칭합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원작의 이러한 진품성은 기본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도 복제가 불가능하지만, 기술적 복제를 둘러싼 사정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단순히 복제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차원과는 별개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벤야민은 복제를 기술적 복제와 수공적 복제로 구분합니다. 수공적 복제는 (사진이나 음반과 같은) 현대의 복제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말 그대로 손으로 베껴 옮긴 복제품을 가리키고, 기술적 복제는 현대적 기술에 의해서 생산된, 근본적으로 대량 생산과 복제 가능성을 포함하는 작품의 복제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구분 속에서 수공적 복제와 원본은 위작과 진품의 관계를 이룹니다. 때문에 원본은 복제품 앞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지요. 반면 기술적 복제의 문제에 있어서 원본과 복제품의 관계는 진품과 위조품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며, 나아가 원본이 복제품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거의 사라지고 맙니다. 예컨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대상의 어떤 모습을 담은 사진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카메라 렌즈의 확대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어떤 대상의 경우, 인간의 육안에 비치는 그것의 모습이라는 원본과 카메라가 포착해 사진으로 재현하는 그것의 복제품 사이에 원본의 절대적인 우위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또 복제 기술의 발달로 인해 무대에서 공연된 합창곡은 녹음을 통해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합창단이 없어도, 공연장이 아닌 어떠한 곳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게끔 바뀌었습니다. 원본보다 복제품이 더 큰 고유성과 독자성을 획득한 상황으로 변한 것이지요. 벤야민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예술 작품의 ‘여기와 지금’이라는 가치를 하락시킵니다. 반드시 지금, 여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사물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 벤야민은 이것을 아우라의 파괴라고 부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하지요. 그리고 이러한 과정 자체는 징후적이라고, 그러니까 아직 종결되거나 결말에 이른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어떤 사태의 낌새를 나타낼 뿐이라고 말합니다. 요컨대 (이 시점에서) 아우라의 파괴로 나타나는,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사태 이면에 자리하는 모종의 더 큰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 (중략) …

벤야민이 자신의 시대에 등장한 복제 기술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예술 작품의 제작이나 수용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각 방식이나 존재 방식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론가로서, 비평가로서, 또 떠돌이 이방인이나 문필가로서 생애 내내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벤야민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관심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지요. 다음 시간에는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중심으로 벤야민이 정치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8. 5. 29.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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