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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고 있는 당신 앞으로 주황색 장삼을 걸친 맨발의 승려가 지나가다 멈춘다. 승려가 짧은 영어로 말을 붙여온다. 뭘 보는가. 당신은 손을 모으고 대답한다. 나무를 봅니다. 승려는 장삼을 추켜올리며 다시 묻는다. 나무에서 뭘 보는가. 당신은 다시 대답한다. 시간을 봅니다. 서로의 영어가 짧으니 대화는 자연 선문답을 닮아간다. 승려는 대꾸하지 않고 당신이 앉아 있는 등걸 위에 함께 몸을 붙인다. 더운 바람이 훅 하고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간다. 그사이 승려는 바랑에서 꺼낸 음식을 오른손으로 주섬주섬 집어먹는다. 먹겠는가. 당신은 사양하지만 그의 손은 물러날 줄 모른다. 역한 향료 냄새가 당신의 코를 찌른다. 당신은 받아먹는다.

나무가 무섭습니다. 당신의 말에 승려는 웃는다. 거대한 석조 불상의 틈새에 자신의 뿌리를 밀어넣어 수백 년 간 서서히 바수어온 나무를 보며 승려는 반문한다. 나무가 왜 무서운가? 이곳의 나무들이 불상과 사원을 짓누르며 부수어나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승려는 보시음식을 싼 기름종이를 다시 바랑에 집어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무가 돌을 부수는가, 아니면 돌이 나무 가는 길을 막고 있는가. 승려는 나무 뿌리에서 휘감긴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며 말을 이어간다.

세상 어디는 그렇지 않은가. 모든 사물의 틈새에는 그것을 부술 씨앗들이 자라고 있다네. 지금은 이런 모습이 이곳 타 프롬 사원에만 남아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밀림에서 뻗어나온 나무들이 앙코르의 모든 사원을 뒤덮고 있었지. 바람이 휭 하니 불어와 승려의 장삼을 펄럭였고 당신의 땀을 증발시켰다. 승려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때까지 나무는 두 가지 일을 했다네. 하나는 뿌리로 불상과 사원을 부수는 일이요, 또하나는 그 뿌리로 사원과 불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버텨주는 일이라네. 그렇게 나무와 부처가 서로 얽혀 구백 년을 견뎠다네. 여기 돌은 부서지기 쉬운 사암이어서 이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흙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 않은가.

캄보디아의 노승은 해맑게 웃었다. 크메르 루주의 학살을 견딘 승려는 불과 수백이었다. 나이로 미루어 그는 프랑스 식민 지배와 론놀과 크메르 루주와 베트남의 침공과 최근의 내전을 겪어내었을 것이다. 끝내 살아남았고 이렇게 사원 근처에서 불교도와 관광객의 보시로 연명하고 있다. 그런 그가 부처를 쪼개는 나무를 어루만지더니 휘적휘적 갈 길로 가버렸다. 당신은 다시 나무를 본다. 나무는 대꾸가 없다.

- 김영하, '당신의 나무'

#김영하 #당신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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