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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성좌(2): 보들레르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1930년대 벤야민은 <샤를 보들레르: 자본주의 전성기 시대의 시인(Charles Baudelaire: ein Lyriker im Zeitalter des Hochkapitalismus)>이라는 방대한 책을 기획합니다. 이러한 기획의 이면에는 자신 앞에 놓인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보들레르라는 시인의 시선을 빌려 19세기를 경유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20세기를 잉태한 태고사(die Urgeschichte)로서 19세기라는 시간에 주목했기 때문이지요. 보들레르에 대한 벤야민의 관심은 <악의 꽃>에 실린 시 가운데 ‘파리 풍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1913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 벤야민이 많은 시간을 할애한 미완의 작업 <파사주>에서도 보들레르에 대한 그의 관심을 찾아볼 수 있지요. 벤야민이 공식적으로 집필한 보들레르에 대한 텍스트는 ‘보들레르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중앙공원’ 등 모두 세 편입니다. 벤야민은 당초 <파사주>의 일부로 보들레르에 대한 논고를 기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파사주>의 집필이 매우 더디게 진행되자 그 가운데 ‘보들레르 혹은 파리의 거리들'이라는 제목의 장을 따로 떼어 별도의 원고로 작성할 계획을 세웁니다. 앞서 언급한 <샤를 보들레르: 자본주의 전성기 시대의 시인>이라는 책이 그것이지요. 벤야민은 이 책을 3부로 구상합니다. 그는 이 책의 1부에서 보들레르 시학의 수용사를, 2부에서 보들레르의 시 작품과 당시 사회적 삶의 양태의 관계를, 3부에서 시적 대상으로서의 상품의 의미를 다루고자 했는데, 실제로 완성한 원고는 2부뿐입니다. (2부가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룰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입니다.) 1부는 집필하지 못했고, 3부는 집필을 위해 수집한 단상들만 남아 있습니다. (이 3부의 단상은 나중에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됩니다.)

벤야민은 시대의 이념을 포착하기 위한 깊은 관찰과 숙고의 우회로를 제안합니다. 이 우회로는 은유적인 의미에서도, 또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거리를 경유하지요. 거리는 시대를 이루는 사물들과 사건들이 성좌를 이루는 곳이자,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정형으로 부유하는 군중이 거주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벤야민은 <일방통행로>를 통해 광고 문구들, 포스터, 카페나 주유소, 식당, 문구점 등 거리를 이루는 모든 특징들에서 문화 독해를 시도한 바 있지요. 이러한 골목골목을 거쳐 거리는 마침내 파사주를 이룹니다. 벤야민에게 거리라는 공간의 특징은 무엇보다 <파사주>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벤야민은 상품의 물신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파사주의 특징에 주목합니다. 상품의 진열 공간, 즉 상품이라는 형식으로 사물의 전시와 판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파사주는 환상으로 가득한, 유혹과 욕망의 공간입니다. 이 공간 속에서 벤야민은 20세기 자본주의의 특징을 상품의 물신화로 파악합니다.

벤야민에 앞서 마르크스 또한 자본주의의 물신적(Fetisch) 성격에 대한 고찰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흔히 물신주의라고 하면 물질이나 금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배금주의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황금만능주의를 떠올리지만,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물신주의는 엄연히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사회적 관계의 근간을 형성합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활동은 상품 생산으로서의 노동이라는 특징을 갖고, 일상적인 생활 역시 모두 상품을 경유하는 활동으로 구성되니까요. 나아가 경제학은 경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 역시 상품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해명합니다. 사고의 기준마저 인간이 아닌 사물, 특히 사물의 상품적 특성을 기준으로 재편되는 것이지요. 벤야민을 포함해 루카치, 아도르노, 또 최근의 호네트에 이르기까지 비판이론의 지적 전통에 속하는 사상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공유합니다. 물론 물화, 사물화, 소외 등으로 이러한 사태를 개념화하는 방식이나 비판의 무게중심은 조금씩 다르지만요.

벤야민은 무엇보다 상품의 알레고리적 성격에 주목합니다. 그가 보들레르와 19세기를 20세기의 기원으로 재발견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알레고리는 다르다는 뜻의 ‘allos’와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agoria’가 결합한 낱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르게 말하는 것, 즉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을 통해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지요. 딱 봐도 은유나 상징, 기호 등의 개념과 유사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는데, 이들 개념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즉 어떤 표현을 두고 이것이 상징이냐, 은유나, 아니면 알레고리냐, 하고 딱 떨어지게 구분하는 것은) 꽤 까다로운 문제인 만큼 오늘은 이 개념들은 비평적 의미에서 엄밀하게 구분하기보다는 벤야민이 제시하는 알레고리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좋겠군요.

보들레르가 ‘어디에서든 암행을 즐기는 왕자’라고 산책자의 특징을 묘사할 때, 산책자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유롭게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이동합니다. 보들레르에게 파리라는 대도시의 경험은 무엇보다 경험의 빈곤과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특징으로 주어집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들레르에게서 이러한 특징은 알레고리라는 방법으로 이어지고요. 벤야민에 따르면 보들레르의 시에서 묘사된 모든 것은 일종의 표면이나 위장막에 불과하고, 그 이면에 다른 뜻을 숨기고 있습니다. 보들레르의 시에서 시장에 간 산책자는 자신이 관찰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의 구매자를 찾아 부지런히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다른 장면에서 그는 군중 속으로 사라진 여인의 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여인을 감춰버린 군중을 원망하지만 오히려 다시 발견할 수 없다는 그 특징으로 인해 여인은 산책자의 사랑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가 사랑을 앗아갔다고 원망하는 군중이 동시에 그에게 사랑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알레고리에서 의미는 항상 유동적이고 미끄러지며 복수의 형태로 남습니다. 때문에 도시를 대하는 보들레르 자신의 태도 역시 외면과 매혹이라는 양가적 태도로 드러나지요.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드러나는) 알레고리적 특징이 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상품의 세계에서도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들레르를 다루는 책의 3부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계획을 세웠지만 아쉽게도 계획을 실행하지는 못 했지요.) 벤야민에 따르면 상품은 무엇보다 ‘텅 빈 의미’로서 알레고리적 성격을 갖습니다. 물신화 과정을 통해 사물은 상품으로서 자기자신을 세계에 각인합니다. 그런데 이 각인이 조금 독특합니다. 상품은 어떤 뚜렷하고 확고한 무엇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의미가 열려 있는 상태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알레고리의 기호적 성격이 사물의 본성을 덮어버리는 것처럼, 상품의 물신화 과정은 사물로서의 사용가치를 덮어버리고 임의의 가치로 그것을 대체하기 때문이지요. 이 임의의 가치 부여는 단순히 A라는 가치를 B라는 가치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상품은 부족한 체험에 대한 보충으로서 기념품의 성격을 띠는데, 알레고리적인 물신화 과정을 통해 사물은 상품으로 탈바꿈하고, 상품은 다시 기념품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물의 객관적 의미는 사라지고 관습적인 교환가치나 전시가치만 남게 되는 것이지요.

마르크스가 상품을 둘러싼 물신주의가 단순히 소비 영역에서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특징짓는 것을 넘어 모든 사회적 관계의 근간을 이룬다고 통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벤야민 역시 상품의 알레고리적 성격이 상품과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킨다고 파악합니다. 사물-상품-기념품의 관계 속에서, 세계의 표면은 마술환등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가상의 성격을 갖습니다.

… (중략) …

물신화한 상품의 세계가 이처럼 알레고리의 성격을 지닌다면, 시인은 세계의 이러한 알레고리적 성격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또 알레고리적 언어를 통해 세계의 이러한 특징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마치 시끄러운 파도 소리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빗댑니다. 이에 따르면 보들레르는 파리의 아우성에다 대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식별할 수 있는 한 그의 말은 명확하지만, 언제나 다른 무언가가 그의 목소리에 섞여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줄곧 이 아우성에 섞여 들지요.

벤야민은 물신화된 상품이 지배하는 세계를 일종의 꿈에 비유합니다. 거리와 파사주, 전시장과 박람회, 각자의 내부 공간은 모두 이 꿈에서 유래하는 잔재라고 표현하면서요. 그리고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 역사적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일방통행로>와 <베를린>, <파사주>를 위한 여러 작업들은 모두 이러한 노력의 총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꿈의 파편을 모아 꿈 전체를 읽어내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 모두가 꿈의 달콤한 환영에 도취되어 있을 때 환상과 신화가 지배하는 세계를 진짜 역사의 공간으로 재조직하는 것이야말로 벤야민이 죽는 날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자신이 목격한 현실을 일종의 꿈이나 환영, 마술환등의 그림자에 비유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군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8. 4. 10. / Rolling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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