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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의 문제


“현존의 의미의 역사는 기나긴 역사이다.”

“C’est une longue histoire, celle du sens de l’existence.”

비극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을 통해 니체는 비극적 세계관과 변증법적 세계관, 기독교적 세계관을 구분합니다. 디오니소스, 소크라테스, 예수라는 상징적 인물은 각각 이들 세계관을 나타내고요. 니체는 비극을 통해 변증법과 기독교적 관점을 비판하는데, 이러한 비판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물론 기독교적 세계관입니다. 니체의 비판은 무엇보다 현존의 의미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비판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니체가 비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존재하지 못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는 삶의 기본 속성을 고통과 죄라고 규정함으로써 삶을 속죄되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용서가 필요한 잘못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니체가 보기에 이것은 삶을 정당화되고 해명되어야 할 무엇으로 파악했던 소크라테스적인 세계관보다도 훨씬 더 악질적이고 고약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바꿈에 따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죄다 부정의한 것, 올바르지 않은 것, 구원이 필요한 것,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변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성격을 부여받으니까요. 기독교적 세계관은 삶의 본질을 죄악이자 부정의로 간주합니다. 때문에 생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고요. 기독교적 세계관은 삶이 고통스러운 까닭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인식을 근간으로 성립합니다. 게다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신이 세계에 부여한 속성인 고통은 곧 잘못된 삶의 징표이자 신의 사랑을 매개하는 계기를 이루기까지 합니다. 니체에 따르면 결국 존재하는 것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사실과 다르게)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독교가 이용하는 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지만, 바로 그 고통으로 인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비극과 대비되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니까요. 니체가 보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뒤틀린 세계관이지요. 죄라는 관념을 통해 기독교는 세계를 끔찍한 원한(ressentiment)의 굴레 속으로 던져 넣습니다. 삶을 비하하고 부정하는 힘, 죄를 묻고 책임을 추궁하는 힘 속으로요.

들뢰즈는 기독교에 비교한다면 그리스인들은 어린아이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현존의 문제, 즉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훨씬 더 순진하다는 뜻이지요. 달리 말하면 덜 뒤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체에 따르면 그리스적 허무주의는 기독교적인 완전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적 세계관 역시 (기독교적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현존을 잘못된 것, 즉 해명되어야 하고 올바르게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파악하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존에 대해 과실과 책임을 묻는 데까지 이르니까요.

… (후략)

2018. 3. 31. / Joeun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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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tzsche #GillesDeleuze #니체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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