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signpost


약속을 하게 된다.

무슨 약속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어느새 약속은 이루어져 있다.

그것을 약속이 지나가는 일이라고

말해두기로 한다.

너무 많이 움직이는 자와

너무 많이 말하는 자 사이에 끼어서

약속들의 간격을 헤아리는 조용한 사람.

약속을 지키는 일보다

지켜지자마자 그 약속을 지나가는 일을

하는 묵묵한 사람.

그 사람이 시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 있던 장소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어느 계절에서건 도끼날처럼 좋은 햇볕이 꽂혀 있었다.

-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수학자의아침 #라비린토스 #labyrinthos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