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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 요구된 것은 아들을 희생하라는 것만이 아니라 신 자체를 희생하라는 것이다. 아들은 신에 속한 이 땅의 미래이다. 약속의 땅, 곧 선민과 선민 속의 신의 진정한 유일의 거처는 실제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희생하면서 시간을 희생해야 하고, 그리고 희생된 시간은 내세의 영원 속에서도 결코 그에게 되돌려지지 않을 것이다. 내세란 미래, 시간 속의 신의 미래 이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 내세, 그것은 곧 이삭이다.

카프카에게 시련은 그 시련을 가볍게 하는 것들로 해서 한층 더 무겁다.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아들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아브라함의 시련은 과연 무엇인가? 사람들은 그 시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웃고 말 것이다. 웃음, 그것이 카프카가 겪는 고통의 모습이다.

- 모리스 블랑쇼, '카프카와 작품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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