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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려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논하고 있었던 걸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읽고 쓰고 번역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무슨일일까요?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성서에는 교황이 높은 사람이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추기경을, 대주교 자리를, 주교 자리를 마련하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다. 교회법을 지키라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십계명을 지켜라"라고 쓰여 있을 뿐입니다. 수도원을 지으라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공의회를 열라고도, 그 결정에 따르라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성직자는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면죄부는 논할 계제도 못 됩니다. 몇 번을 읽어도 그런 것은 쓰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이상해질 정도'로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아마 돈을 빌리지 않았을까요) 성서의 일부분을 일부러 여백이 많은 종이에 베껴 쓰게 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메모를 해가며 되풀이해서 읽기까지 했습니다. 라틴어도 그리스어도 히브리어도 공부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습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단번에 검색하는 정도의 일이 아닙니다. 되풀이하고 되풀이해서 몇 번이고 읽어도 그런 것은 쓰여 있지 않습니다.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질서는 완전히 썩어빠졌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이 질서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고, 따라서 이 세계의 질서는 옳고 거기에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루터를 제외하고. 교황이 있고 추기경이 있고 대주교가 있고 수도원이 있고, 모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성서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아타루 #잘라라기도하는그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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