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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 Night Tales: Invitation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쥘 베른이 쓴 <20세기 파리>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합니다. 시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친척들이 핀잔을 주는 장면이지요. 그들이 말합니다. “우리 집안에서 시인이 나오다니 수치다!” 80일만에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바닷속 2만 리를 항해하는 미래를 그린 소설가의 눈에는 20세기쯤이면 시나 문학 같은 건 다 사라질 것처럼 보였나 봅니다. 기껏해야 창피한 취미 정도가 되는 세상이지요.

어느덧 20세기도 훌쩍 지난 21세기의 오늘, 같은 소설가에게 다시금 문학의 미래를 그리라고 요청한다면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뭐 세기 너머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지요. 오늘 당신에게, 우리에게 소설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러 대답이 있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소설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낭만이 가득한 지혜의 보고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따분하고 유난스런 철 지난 낭만일 수도 있겠지요. 또 누군가에게는 은밀한 체험을 남몰래 함께 공감하는 유쾌한 친구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쩐지 부담스런 밀린 숙제 같은 대상일 수도 있겠지요.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원래 진짜 중요한 것들, 정말 재미있는 것들은 그리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아마 우리의 삶 또한 바로 그런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겠지요. 이야기는 삶을, 삶은 이야기를 닮은 모습으로요. 어쩌면 인간사를 통틀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모습을 바꿔가면서도 이야기가 인간의 곁을 떠나지 않는 까닭은, 삶과 이야기가 본래 뗄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미로처럼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며 파우스트는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겠지?”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답합니다. “아니, 훨씬 더 많은 수수께끼가 나올 거라네.”

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수수께끼들은 조금 독특합니다. 단순히 셈하고 답을 내놓으면 그만인 문제풀이가 아니라, 겪고 사랑하고 부딪혀야 하는 질문들, 이야기의 조각들이 건네는 물음들이니까요. 어쩐지 쑥스럽고 조금은 호사스런 취미의 공간, 이야기의 미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미로처럼 얽힌 사람들과 사물들, 시간과 공간, 사건과 상황들. 우리의 향연은 누군가는 길을 잃고 누군가는 길을 찾는 미로 속에서 펼쳐집니다. 소설의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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