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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지난 시간까지 한국 사회의 주요 특징들을, 당대의 세태와 갈등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살펴보았지요, 오늘 우리가 이야기 할 주제는 세월호입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참사라고 부를 만한 이 국가적 재난 이후 참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사실 아직 여기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인지 선뜻 말하기 어렵습니다. 절차적, 법적으로 사건이 아직 종결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사건의 파장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통의 기억으로 환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이 사건이 남긴 외상적 영향력이 여전히 그 힘을 다 소진하지 않은 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지닌 참사적인 특징 또한 이에 대한 말하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세월호 사건 직후 한국 사회가 이 사건을 체험하는 방식을 두고 병리적 진단이 속출했고, 이 사건에 대해 말할 것을 요구 받은 문인들은 예외 없이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험한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사건 이후 다양한 입장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세월호를 호명하는 정치적 수사가 범람한 것과 역설적인 대조를 이루지요.

또 이념적, 정치적, 계층적 입장과 위치에 따라 사건을 서로 다르게, 때로는 정반대로 이해하는 것 역시 세월호 사건이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갈등은 비단 세월호 뿐만 아니라 어느 사건에서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겠지만 유독 세월호에서는 해석의 갈등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문제의 발생과 대응 과정에서 모두 한국 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모순들을 응축해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라는 사건은 자신의 바깥에, 혹은 자신 이전부터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정세와 무수한 갈등 속에 불현듯 등장했고, 등장과 동시에 다른 모든 갈등들이 중첩되고 교차하는 가장 문제적인 지점을 점유함으로써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자리매김 했습니다.

세월호의 침몰 과정은 하나의 스펙타클로서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고, 한국 사회 전체가 일종의 소환 당한 군중으로서 저마다의 위치에서 시선을 강탈 당한 채 사건을 목도해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자명성과 모호성의 교차는 사건에 혼란을 더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지만 너무나 자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혼란이지요. 카메라의 눈으로 사건 현장을, 심지어 각종 중계와 보도를 통해 이에 관련한 사회 제 분야의 작동 과정까지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떠한 분석이나 추리도 이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발생했는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세월호라는 선박의 침몰과 구조 실패’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세월호 사건’이라는 기표가 행사하는 힘의 범위는 훨씬 더 깊고 넓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직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두고 볼 일입니다. 앞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이것이 단순히 여러 사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한국 사화의 수많은 입장과 관점과 갈등과 정세가 교차하고 중첩되는 지점을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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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은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해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잔해 속에서 벽돌 하나를 들고 자기 집이 한때 어땠는지 기억하려는 사람’, ‘무엇이 그 집을 부쉈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 비유합니다.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을 꼭 저들로 한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벽돌 하나를, 깨진 유리 조각 하나를, 부서진 나무 토막을, 헌 신 한 짝을 주워 들고 잔해 주변 어딘가를 서성이고 있으니까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진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남김 없이 부숴버리도록 하자, 지어야 할 집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라고. 잔해와 폐허를 차라리 긍정할 수 있는 까닭은 지어야 할 집이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7. 5. 20. / 곰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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