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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uman Condition: Ch.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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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간 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입니다. 노동의 근본 조건은 인간의 삶과 생명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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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labor)과 작업(work)은 일상과 지적 전통에서 모두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서로 다른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집요하게 두 낱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했음에도 우리 언어는 여전히 서로 다른 두 단어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노동(이라는 낱말)은 일종의 동사적 명사로서 ‘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작업은 주로 일의 결과나 생산품에 관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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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육체적 노동이 아니더라도 삶의 필수재를 확보하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활동은 노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의 생산성은 노동의 생산물이 아닌 인간의 힘에 있습니다. 인간의 힘은 자신의 생계와 생존 수단을 생산하고 소진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생산에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지만, 삶 그 자체 이외의 어떤 것도 결코 생산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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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의 산물이 아닌 작업의 산물입니다. 생존 수단으로서의 소비재(consumer goods)를 노동의 산물이라고 본다면, 인간의 신체가 필요로 하고 신체의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이 소비재들은 말 그대로 소비되어 사라집니다. 반면 작업의 산물인 사용 물품(use object)은 소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고, 이 과정에서 인간은 사물과, 또 다른 인간들과 교제하는 관습이나 습관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소비재가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면 사용 물품은 인간의 세계를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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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과정 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고 부패하는 것을 일종의 필연성이라고 본다면, 이에 저항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그 자체로서 시작과 끝도 갖지 않습니다. 노동은 언제나 똑같은 순환 속에서 움직이며, 유기체의 생물학적 과정이 이 순환을 규정합니다. 이러한 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의 수단을 제공하는 활동이 바로 노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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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소비와 마찬가지로 물질을 파괴하고 게걸스럽게 삼키는(devouring) 과정입니다. 노동의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특성은 세계의 관점에서, 그리고 작업과의 구별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작업은 물질을 원료로 생산품을 만드는 반면, 노동은 신체와 물질의 결합에 해당하니까요. 거꾸로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파괴적인 것은 노동이 아니라 작업입니다. 노동이 자연의 거대한 신진대사를 이루는 반면 작업은 자연의 수중에서 물질을 취하고 다시 그것을 자연에 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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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항상적이고 끝이 없는 활동입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행위나 작업이 아닌 오직 노동만이 삶 그 자체와 일치하고, 의지의 결정이나 의미와 목적 바깥에서 무한하게 자동적으로 진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의 힘은 이러한 과정에 내재한 비옥한 다산성(fertility)에 있습니다. 유기체가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힘을 다할 때, 이 과정에서 유기체가 가진 힘은 소진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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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연적 과정이 신체에 위치하듯이, 노동은 가장 직접적으로 삶에 속박된 활동입니다. 또한 노동 그 자체만으로는 공적 존재로서의 인간 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은 인간의 가장 사적인 활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근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노동이 자신의 공론 영역을 확립한 사회가 발생했고, 소유(property)가 사유(appropriation)로 변하면서 이를 신체 활동의 결과물로 간주하는 관점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신체는 모든 소유의 정수로 자리매김하지요. 신체는 본질적으로 감각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의 매개입니다. 때문에 공유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나 공적인 것을 다루는 일에 있어 적합한 틀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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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의 무세계성(worldlessness)은 ‘훌륭한 작업’에 내재하는 세계의 공공성으로부터의 능동적 탈출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노동하는 동물은 세계로부터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신체의 사적 성격 속에 갇혀서, 즉 누구와 함께할 수도 없고 온전하게 의사소통할 수도 없는 필요의 충족에 사로잡힌 채 세계로부터 추방 당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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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성(permanence), 안정성(stability), 지속성(durability)에 기반한 인공 세계를 구축하는 제작인(homo faber)이라는 인간관은 노동하는 동물이라는 인간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노동하는 동물은 풍요(abundance)를 이상이자 목표로 갖는데,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이상이 지배하는 노동자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주변 세계를 이루고 있는 사물을 보다 빠르게 대체하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더 이상 그것들을 사용할 수 없고, 사물들 안에 내재하는 지속성을 기대하거나 보존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장과 부패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소비하는) 자연에 대항해 인간이 만들었던 세계를 다시 자연에 내맡기고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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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소비자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노동과 소비는 삶의 필연성이 인간에게 부과하는 동일한 과정의 두 측면이기 때문에 이 말은 곧 노동자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대 사회는 노동계급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 활동 자체의 해방, 즉 사적 영역에 국한되어 있던 노동 활동이 사회의 핵심으로 부상했다는 사실 위에 성립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방식의 노동 해방에 모든 인간의 자유는커녕 인류가 강제적으로 필연성이라는 멍에 아래 깔릴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동계급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을 주장했지요.) 근대 세계가 자연의 필연성에 대해 거둔 승리는 노동의 해방, 즉 사회가 노동하는 동물이 공론 영역에 자리를 잡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노동하는 동물이 공론 영역을 갖는 한 진정한 공론 영역은 존재할 수 없으며,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적 활동만이 가능할 따름입니다."

2017. 5. 19. / Sutome Apothec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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