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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는 직접 걸어가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보인다. 글 역시 그것을 읽는지 아니면 베껴 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을 나타낸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은 자연 풍경 사이로 길이 어떻게 뚫려 있는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에게 길은 그 주변의 지형과 동일한 법칙에 따라 펼쳐진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그 길의 영향력을 경험한다. 비행기를 탄 사람에게는 그저 펼쳐진 평원으로만 보이는 지형이, 걸어서 가는 사람에게는 돌아서는 길목마다 먼 곳,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곳, 숲 속의 빈터와 전경들이 펼쳐지는 길이 될 수 있다. 마치 전선에서 지휘관이 지형에 따라 군인들을 불러내듯이, 베껴 쓴 글만이 글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혼에 지시를 내린다. 글을 읽기만 하는 사람은 마치 원시림을 지나듯 글의 내부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몽상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자아의 움직임을 따라갈 뿐이지만, 글을 베껴 쓰는 사람은 글의 풍경들이 자신에게 내릴 명령을 기다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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