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오르학 파묵, <하얀 성>


그러더니 그는 묘한 목소리로 “귓속에서 어떤 소리가 계속해서 내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어.”라고 말했다. 귓속에 있는 그 가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런 가수가 있었지만 지금의 노래는 다르다고도 했다. “내 가수는 항상 같은 후렴구를 불러.”라고 조금 부끄러워하며 그가 말했다. “나는 나다, 나는 나다, 아!”

​​

17세기 베네치아에서 한 남자가 항해에 승선합니다. 배는 나폴리를 향합니다. 순조롭던 항해는 갑작스런 불청객과 만납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함대가 배를 가로 막은 것이지요. 당시 베네치아 공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좁은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었고 곳곳에서 종종 충돌하곤 했습니다. 해상에서의 충돌 역시 꽤 흔한 일이었고요. 남자가 타고 있던 배는 순식간에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 찼고, 방향을 돌려 도주를 시도했지만 이내 나포 당하고 말았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남자 역시 포로로 사로잡혔지요.

포로가 된 남자는 제국으로 끌려가 함께 잡혀 온 이들과 함께 수감됩니다. 이곳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으로 절실하게 살 궁리에 매진합니다. 수감된 감옥에서도 간수들에게 자신이 학자였고 수많은 기술을 알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필사적으로 호소하지요.

드디어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다른 포로들의 병세를 돌보고 있다는 소문을 접한 파샤(paşa)가 그를 찾은 것이지요. (파샤는 영주에 해당하는 고관을 가리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칭호입니다.) 파샤는 그가 감옥에서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자신의 질병을 그에게 내보입니다. (파샤의 질병은 간단한 해수 천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몇 가지 처방을 제시했고 얼마 뒤 파샤는 건강을 회복합니다. 이 일로 그는 파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지요. 물론 그의 관심은 여전히 그곳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어느 날 파샤의 저택으로 불려간 그는, 그곳에서 ‘호자(hoja)’라고 불리는 사람을 만납니다. (호자는 이슬람교에서 성직자나 학교의 교사를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쏙 빼닮은 닮은 그의 외모에 놀라지요. 호자는 파샤의 저택을 드나들며 일종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친 서구의 지식에 흥미를 느낀 파샤가 자기네 선생과 그를 연결해준 것이지요. 물론 여전히 그는 포로이자 노예의 신분입니다. 얼마 후 파샤가 호자에게 그를 노예로 선물했고, 이렇게 이들의 공동 생활이 시작됩니다.

이들에게 내려진 첫 번째 과업은 파디샤(padişah)가 참석하는 결혼식을 수놓을 불꽃놀이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파디샤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 황제의 칭호입니다.) 서로 알고 있는 지식 체계는 다르지만 이들은 ‘이전까지 이스탄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불꽃놀이를 성공적으로 만들었지요. 이 일을 계기로 이들은 서로에 대해, 서로가 속한 세계에 대해 관심을 키워가며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파묵의 이야기는 그와 호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호자라는 사람은 마을에서 좀 괴짜로 통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마을 외딴 집에서 혼자 살아가고, 들어오는 혼사도 번번이 거절하며 마을 사람들과 좀처럼 왕래도 하지 않으니까요. 집에 혼자 틀어박혀 이상한 책이나 본다는 소문이 무성하고, 파샤의 저택에 출입하는 다른 사람들을 죄다 멍청이 취급하면서도 파샤의 신임을 얻을 생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싼 돈과 주변에서 쏟아지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내하며 유럽의 서적들을, 그것도 군데군데 오류 투성이인 한심한 판본으로 간신히 구해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과 꿰맞춰 보기도 하고, 지구가 둥글어 낮과 밤의 시간차가 큰 나라들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알라를 향한 기도 시간을 어떻게 맞추는가 하는 엉뚱한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노예인 ‘그’와 그가 살던 베네치아에 대한 호기심도 감추지 못하지요.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호자는 파샤를 통해 파디샤를 만날 기회를 얻습니다. 그리고 파디샤의 관심을 끄는 데도 성공하지요. 주변의 무수한 시기와 몇 차례 좌절을 비롯한 우여곡절 끝에 호자는 마침내 황실 점성가의 위치까지 올라갑니다. 그 과정에서 파디샤는 ‘그’의 존재를 알게 되지요. 호자는 점점 더 파디샤의 근거리에서 그를 모시게 되고, 파디샤는 점차 호자와 ‘그’의 관계에 관심을 갖습니다. 서로 얼마나 닮았고 어떻게 닮았는지, 한 사람은 황실 점성가, 다른 한 사람은 노예 신분이지만 어떤 생각들이 호자의 생각이고, 어떤 생각들이 호자가 ‘그’로부터 받은 생각인지, 어떤 이야기가 호자에게 속한 것이고 어떤 이야기가 ‘그’에게 속한 것인지, 따위를요. 파디샤는 흥미롭게 이들 관계를 바라봅니다. 때로 둘 모두를 불러 하나하나 그들의 차이를 일별하기도, 면전에서 그들의 닮음을 희롱하기도 하지요. 또 어느 시기에는 호자가 아닌 ‘그’만을 궁으로 불러 마치 호자에게 조언을 구하고 호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닮게 된 데는 단순히 생김새의 유사함 이상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그들은 호자의 집에서 수년간 함께 생활했지요. ‘그’는 마을에서 괴짜로 통하는 호자가 다른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고, 호자는 ‘그’가 포로지에서 알고 지내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성대한 불꽃놀이를 준비하거나, 파디샤의 명령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일, 전염병에 맞서는 일 등도 함께 수행했고 호자가 수년 간 ‘파샤와 파디샤 주변의 멍청이들’에 대해 푸념할 때 역시 늘 ‘그’가 곁에 있었지요. 호자가 파샤의 조언자에서 파디샤의 부름을 받아 궁을 출입하는 시기, 또 황실 점성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이들이 처한 상황은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합니다. 이를 따라 이들의 관계 역시 조금씩 달라졌지요. 이들은 때로 은밀하게 서로를 동경하기도, 질시하기도 하며 복잡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심하게 다툰 적도 많고요. 이런 과정들을 통해 그와 호자는 생활에서나 정서적으로나 서로에게 깊이 얽히게 되지요.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거나 서로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기도 합니다.

정체성을 주제로 <하얀 성 Beyaz Kale>을 읽어 나갈 때, 세 가지 결정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먼저 이들이 마주 앉아 각자 삶의 기억을 찾아 써내려 가는 장면입니다. 이들이 유년기의 경험이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밀한 기억까지 공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이자, 훗날 서로의 삶을 바꿀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만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호자는 조금은 멋쩍게 최근 자신을 사로잡은 질문을 그에게 말합니다: “왜 나는 나일까?”

그는 호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반쯤은 농담처럼 답합니다, 자신은 왜 그가 그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원래 살던 곳의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고 날이 갈수록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요. 대답을 들은 호자는 발끈합니다, 네가 살던 곳의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자신은 몰랐다,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들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화를 내면서요. 이야기 내내 호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 너머의, 미지의 유럽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동경은 단순히 대상을 간절히 그리워하거나 그것만을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복잡한 심경이 뒤엉켜 있어요, 호기심과 연민과 자기 부정과 갈망 등이 수많은 감정이 동시에 얽혀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갈등하면서도 계속 ‘그’의 주변에서 ‘그’와 그가 온 곳,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서성이지요.

‘그’는 호자의 질문에 거울이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심드렁하게요. 처음에는 호자의 환심을 더 사기 위해 호자의 관심에 성의 있게 대답했지만, 엉뚱한 질문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귀찮게 하는 호자에게 한 순간 화가 났기 때문이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왕이나 귀족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나 집에 거울을 가지고 있고, 자주 거울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거울이 많기 때문에 거울을 자주 보는 것이 아니라, 늘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거울을 본다고요. 호자의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럼 거울을 봐야 하나? 집에 더 많은 거울을 구해와야 할까? 그가 무덤덤히 다시 답합니다. 가서 거울이나 보라, 너는 스스로를 대면할 용기가 없는 것뿐이다.

대화가 여기까지 이르면 사태는 조금 심각해집니다. ‘그’는 종종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신분을 망각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무려 포로 출신의 노예 주제에! 주인의 말 한 마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으로 팔려갈 수도 있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곳에서 의지할 이 하나 없이 거리로 쫓겨날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어쩌면 쫓겨나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의 무성의한, 조롱하는 듯한 대답에 화가 난 호자는 그에게 용기를 증명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낱낱이 써내려가는 방식으로요.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용기가 정체성에 대한 답이라면, 어디 한 번 너는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지 보여보라는 식입니다.

호자는 그가 자신에 대해 쓴 글을 보고 때로는 수긍하기도, 때로는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가 말하는 어떤 경험들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어떤 경험들에 대해서는 무의미한 일, 누구나 쓸 수 있는 일들이라며 무시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거짓말이라면서 솔직하지 못한 그를 벌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때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그가 호자에게 제안합니다,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도 써보라! 약간의 실랑이 끝에 호자도 함께 글을 쓰기로 합의했고, 이제 이들은 서로의 기억을 담은 글을 함께 공유하며 서서히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두 번째 장면은 이스탄불에 창궐한 흑사병과 함께 펼쳐집니다.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쓰러집니다. 증상의 소문을 통해 그는 이 전염병이 흑사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경악하지요. 유럽은 이미 14세기에 흑사병을 경험했으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태연합니다. 사태의 심각성도 모르고 그저 사람이 죽고 사는 일은 알라의 손에 달렸거니, 하고 살던 대로 살지요. 이 경우만큼은 늘 그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무시했던 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흑사병의 공포에 질린 그에게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직 고백하지 못한 사악한 짓들을 회개하라,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슬람으로 개종하라, 나는 죄가 없으므로 병이 두렵지 않다, 이런 소리로 윽박지르면서요.

흑사병의 공포를 알고 있는 그에게 이런 소리가 들릴 리가 있습니까, 당장 도망치고 싶지만 갈 곳도 없으니 그저 조금이라도 전염의 가능성을 줄이고자 방에 틀어박히지요. (나중에 도망치긴 합니다, 인근의 섬으로. 하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태연히 그를 찾아온 호자에게 잡혀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호자가 그에게 말합니다, 벌레에 물린 것 같다고요. 그리고 몸에 돋은 빨간 반점을 보여주자, 그는 경악합니다. (왔구나!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호자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두려워 하는 그를 자신의 앞에 세워놓고 상처를 만진 손으로 그를 만지기도 합니다. 즐거워 하며 그의 두려움을 조롱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침울하게 말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거울 앞에서 화도 내고, 불공평한 일을 당한 사람의 분노를 쏟아내기도 하다가 그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에게 묻고 요구하지요, 그도 옷을 벗고 상처가 없는지 확실하게 보일 것을.

그들을 거울 앞에서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공포에 질려 서로의 벗은 몸을 바라보는 순간, 옴짝달싹할 수 없는 느낌, 자신을 향한 서로의 시선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마비의 순간을 경험하지요. 거울 앞에서 ‘그’를 살피고 만지며 흉내내던 호자가 마침내 입을 엽니다: “나는 너처럼 되었어. 이제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아. 나는 네가 되었어.”

마지막 장면은 폴란드에서 펼쳐집니다. 그와 호자는 그들이 발명한 무기를 이끌고 파디샤와 함께 폴란드 원정에 나서지요. 전쟁은 처음에 순조롭습니다. 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요. 막중한 세금에 폴란드인들이 반발했을 뿐, (세금을 원하거든 칼로 받아 가라!) 당시 발칸반도 인근의 유럽 국가들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으니까요. 마을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며 호자는 붙잡은 포로들을 심문하고 광기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들의 죄를 고백하도록 종용합니다. 호자도 포로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더 캐내려고 하듯이, 자신이 모르는 그들과 그들의 머릿속과 그들의 삶과 그들의 세계를 더 알고 싶다는 집착으로. 처음에는 장난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디샤와 병사들도 차츰 그런 모습에 질려 가지요.

파디샤의 군대는 마지막 하나의 요새 앞에서 고전을 거듭합니다. 전투는 지지부진하고 무기는 말을 안 듣고 병사들은 지쳐가고 지원군은 오지 않습니다. 폴란드인 외에도 오스트리아, 헝가리, 카자흐스탄까지 요새를 지키기 위해 원정을 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요.

그는 깨닫습니다. 높은 언덕 위의 성, 새하얗고 아름다운 그 성, 어쩐지 아름답고 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 성에는 영영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그리고 호자 역시 깨닫습니다. 구불거리는 숲 속 길을 따라 황급히 뛰어가면 금새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은, 참가하고 싶은 축제, 놓지고 싶지 않은 행복이 기다릴 것 같은 그 밝고 하얀 건물을 향한 길이 실은 도저히 끝나지 않으리란 것을. 그들은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세계의 경계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그 성 앞의 어느 밤,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조용히 어떤 준비를 서두릅니다. 호자는 밖에 안개가 자욱하다고 말했고 그는 그 말 뜻을 이해했지요. 날이 밝을 때까지 그는 호자에게 자신이 고국에 두고 온 것, 자신이 살던 집, 창문 너머 보이는 뒤뜰의 풍경, 엠폴리와 피렌체의 가족들,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사소한 특징들, 언젠가 자신이 그와 함께 써내려 갔던 그 설명들을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옷을 바꿔 입고, 자신의 반지와 메달을 호자에게 건네주고, 할머니의 작은 초상과 하얗게 변한 약혼녀의 머리칼까지 모두 넘겨주지요. 호자는 건네받은 메달을 목에 걸고, 천막에서 나가 안개 속으로 들어갑니다. 안개 너머의 하얀 세계를 향해.

… (중략) ...

만남은 이렇게 삶을 바꿉니다. (저들의 경우에는 맞바꿨다고 해야 할까요?) 문자 그대로, 삶을, 바꿔놓지요. 이런 만남은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서, 양쪽을 넘나드는 얼마나 많은 만남이 있는지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이지요.

1930년 프랑스령 알제리의 한 중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재직하던 그르니에는, 자신이 맡은 반 소속의 어떤 학생에게 주목합니다.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철학반 학생이었던 그는 몇 주 뒤 결핵으로 장기간 학교를 결석하게 되지요. 그르니에는 그가 병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동안 담임 자격으로 한 차례 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형식적인 방문에 그치고 맙니다. 1931년 이 학생은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철학반과 고등문과반(hypokhâgne) 소속의 학생과 담당 교사 사이에 서서히 우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선생은 학생에게 자신이 쓴 글들이나 소장한 책들을 보여주고 저명 문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한편, 학생이 관심을 갖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그의 시야를 넓혀주기도 합니다. 이후 1932년부터 1960년까지 이들은 서로 200여 통이 넘는 서신을 교환합니다. 학생의 졸업 이후 각자 사는 환경, 처한 상황, 붙잡은 고민은 달라졌지만 이들의 우정만큼은 이어졌지요.

젊은 철학 교사 그르니에가 주목했던 이 학생은 알베르 카뮈입니다. 이들의 서신 교환은 카뮈가 사고로 사망한 1960년 1월까지 이어지지요. 카뮈가 그르니에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낸 날짜는 1959년 12월 28일이고, 그르니에는 1960년 1월 1일에 이 편지에 회신합니다. 그르니에의 회신으로부터 고작 3일 뒤 카뮈는 세상을 떠나지요.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그르니에의 나이는 서른둘, 카뮈는 열여섯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우정을 쌓으며 편지를 주고받은 것은 각각 서른넷, 열여덟의 나이부터였겠지요. 물론 자주 만나며 가까이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교류를 지속한 셈입니다.

처음 편지를 주고받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우정이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또는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리라고 생각했을까요? 주고받은 편지를 대하는 이들의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그르니에는 카뮈로부터 받은 편지를 모두 간직해두었습니다. 1947년 카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르니에는 카뮈가 보낸 첫 편지부터 모든 편지를 다시 찾아서 정리했다고 밝힙니다. (물론 카뮈가 자신의 첫 작품 <이방인 L’Étanger>을 발표한 게 1942년의 일이고 작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니 그르니에가 개인적인 기념 내지는 전기적 기록물 보존 차원에서 유명 작가의 편지를 보관한 게 아니냐는 삐딱한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 관계의 정황을 감안한다면 이런 관점은 그르니에에게 여간 모욕적인 것이 아니겠군요.) 또 편지들을 타자로 옮겨 적어 잘 정리해두기도 했지요.

전 생애에 걸쳐 생을 치열하게 고민한 작가답게 카뮈는 편지가 상징하는, 편지에 담긴 우정과 자신이 가진 관계들에 대해서도 내내 복잡한 심경을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1939년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될 포르에게 보내는 편지에게 편지들을 모아둔 상자를 비우고 그 안에 쌓여있던 모든 편지를 다 불태웠노라고 고백하지요. 카뮈는 자신의 행동을 어떤 분노라고 말하지만, 분노의 정황과 맥락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르니에가 보낸 편지 역시 이 시기 카뮈가 몇 년간의 편지들을 모두 불태울 때 함께 사라집니다. 물론 그르니에의 편지를 포함해서, 카뮈가 생전에 주고받은 모든 편지가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심경의 변화인지 1940년 이후부터는 다시 편지를 잘 모아두기도 하니까요. 물론 그게 카뮈가 생전에 주고받은 모든 편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토록 내밀한 삶의 구석을.

아쉽게도 카뮈가 이 시기의 편지를 모두 불태운 까닭에 교류 초기에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전했을 말들을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후 펼쳐지는 이들의 삶을 통해 이 만남이 카뮈에게도, 그르니에에게도 결정적인 의미의 순간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지요. 훗날 다른 편지에서 카뮈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선생님(그르니에)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습작을 그르니에에게 보여주고 ‘자신이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오로지 선생님의 판단에 달렸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어떤 만남은 누군가의 정체성과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한 번의 만남, 우연한 부딪힘에 앞날의 삶이 접혀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만남이 삶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하게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카뮈는 그르니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자신에게 자신이 계획하는 그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고민하던 의심을 거두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게 되지요. 로댕을 만난 릴케 역시 비슷한 경우입니다. 릴케는 로댕의 작업실에서 그를 관찰하며 작품을 만드는 ‘어떤 자세’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 발견은 이후 시인으로서 릴케 자신의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요.

로댕은 자신이 조각가로서 어떤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숨겨진 어떤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숨은 형상을 발견하는 눈, 그리고 그것을 꺼낼 수 있는 근면한 손이지요. 그래서 로댕은 노력합니다. 창조니 영감이니 하는 말들을 비웃으며 돌과 싸우지요. 중요한 것은 돌 속의 형상을 꺼낼 수 있느냐 없느냐, 즉 자신이 그것을 꺼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므로, 로댕에게 있어 돌과의 싸움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 됩니다. 이러한 자세는 시를 대하는 릴케의 자세로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다른 한편 무수히 스쳐가는 임의의 경험이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어찌 보면 극히 드뭅니다. 대개의 마주침은 금새 지나침으로 잊혀지지요. 하지만 정확히 수를 세어 셈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침이 만남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정말, 정말 작은 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그 작은 수, 어쩌면 생에 몇 번 겪지 않을 그 찰나의 마주침이 생의 의미와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낭만적인 관념일까요?

산초 판자는 알론소 키하노를 만나는 바람에 그를 따라 어처구니 없는 여행길에 나섭니다. 갖은 고생 역시 덤으로 따라붙은 것은 물론이지요. 하지만 산초는 그 정신 나간 모험의 충직한 동반자로서 기꺼이 자신에게 새로이 주어진 삶을 받아들입니다. 돈키호테처럼 미치진 않았지만 돈키호테만큼 큰 기쁨을 누리며!

개울에서 낚시로 허송하던 강상은 서백을 만나 천하를 평정하는 재상에 오릅니다. 서백 역시 강상을 만나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요. 후대는 강상을 태공망, 서백의 이름을 주나라 문왕으로 기억합니다. 낚시터와 산책길의 우연한 조우가 대륙의 역사를 바꿔 놓은 것이지요.

예수쟁이들을 때려잡겠다고 벼르고 떠나던 사울(Saul)은 환상 속에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이 그렇게 증오하던 예수쟁이들의 선봉에 섭니다. 환상 속 부름에 따라 이제 이름도 바울(Paul)로 바꾸고요. 변변한 이론도 체계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종교 공동체에 지나지 않았던 초기 기독교는 바울로 인해 비로소 세계 종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환상 속 마주침이 세계사를 바꾼 셈이지요.

자 이렇게 만남이 바꾼 삶을 늘어놓으면 끝도 없습니다. 물론 저 거창한 위인네 삶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누구나 지금의 삶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마주침, 혹은 지나침들이 있었을 테고 기억하든 기억하지 않든 그의 정체성에는 그 마주침과 지나침의 흔적들이 묻어 있을 테니까요. 지나간 만남을 떠올리고 다가올 만남을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인 것 같습니다. 보다 많은 지나침을 마주침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오늘 밤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만남을 기다리지요.

​​

2016. 6. 2. / 아름다운가게 미아

info@labyrinthos.co.kr

#라비린토스 #labyrinthos #파묵 #하얀성 #오르한파묵 #OrhanPamuk #Pamuk #BayezKale

© Labyrinth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