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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시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앞서 통성명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니 얼마나 편리한가 하는 인사를 보냈습니다만 막상 상황을 보니 서로 얼마간의 소개가 필요한 자리인 것 같군요. 우리 앞에는 앞으로 한 달 남짓의 시간이 놓여 있습니다만 함께 모인 이 자리가 어떻게 끝이 날지는 역시 끝이 나봐야 알 수 있겠지요. 보통은 세미나의 첫 시간은 주제와 방향을 공유하는 일에 무게중심을 두는 편입니다만, 오늘의 자리는 조금 예외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제를 제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앞서 세미나 요청을 받고 함께 다루면 좋을 법한 몇 가지 주제를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한 바 있고, 그래서 결국 지정받은 주제로 세미나를 시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인지 흡사 시험장에 들어온 기분이군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미나 소식을 알리며 주제에 맞춰 읽을 책도 함께 전달하는 편입니다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음에 대한 양해를 먼저 구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앞에 놓인 주제에 대해서라면 미리 공유할 수 있는 형식으로 간행된 꼭 맞는 읽을거리가 없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오늘 자리를 포함해 세미나를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자료를 필요에 맞춰 공유하고자 합니다.

일단 첫 시간이니 만큼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으로 가볍게 시작해도 좋겠지요. 아마 여러 자리, 여러 상황에서 소위 “오리엔테이션”을 경험하셨을 줄로 압니다. 때로는 참가하시기도, 또 때로는 준비하시기도 했겠지요. 적당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인지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외래어는 어느새 자연스레 일상의 말로 자리잡았는데, 언어 순화를 추구하는 국립국어원의 애타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외래어들을 너그럽고 매끄럽게 수용하는 능력은 한국어 말법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오리엔테이션은 주로 신입생이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혹은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참가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열립니다. 때로는 그런 자리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고요. 즉 오리엔테이션은 항상 어떤 시작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는 낱말에는 ‘오리엔트(orient)’이라는 의미소가 들어 있습니다. 서구적 관점에서 동양을 가리키는 표현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과 같은 낱말에서 잘 드러나듯이 ‘오리엔트’라는 표현은 흔히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의 국가나 문화를 가리키는 단어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이 낱말의 기원을 살피는 일은 퍽 흥미롭습니다. 오리엔트라는 낱말에는 낱말 자체로 동쪽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다른 의미로는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지요. 동쪽이라는 명사적 의미와 방향을 정한다는 동사적 의미가 한 낱말에 함께 들어 있는 까닭은, 쉽게 눈치챌 수 있듯이 동쪽이 바로 해가 뜨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먼 옛날, 이 낱말이 처음 만들어진 무렵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의미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칠흑 같은 새벽 시간, 길도 방향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지점이 바로 정동에 해당하는 방향 일 테니까요. 그래서 같은 철자로 이루어진 동일한 라틴어 오리엔트는 ‘떠오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방향을 잡는 오리엔테이션이 왜 중요한가 하면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또 출발하는 시점에서 거의 별 차이 없이 비슷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움직임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울기 차이를 가진 두 직선이 동시에 뻗어나가는 그래프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정밀한 계산하고 조정이 필요한 일이라면 이러한 방향 설정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겠지요.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제각각 엉뚱한 지점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 우리의 첫 시간, 모인 자리가 대학 내 시설인 만큼 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의 기원을 한번 떠올려봅시다. 일종의 몸풀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대학이라는 이 장소는 여러분께는 그저 직장에 다름 아닌 공간일까요? 오늘날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는 교육과 연구 시설뿐 아니라 이렇게 다양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시설과 조직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견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는 우선 대학이라는 시설이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와 또한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하는 대학의 기능적, 물리적 구조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놓여 있습니다.

대학이라는 기관의 기원과 변천을 살피는 것은 우리의 주제가 아니므로 간단하게만 언급하겠습니다. 대학이 ‘다양한’ 기능을 자신 속에서 수용할 수 있는 까닭은 오늘날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의미를 대단히 확장해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오늘날의 사회가 대학에 교육과 연구라는 명목 하에 요구하는 역할이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기능적, 물리적 구조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직과 기구의 구성은 물론 물리 공간까지도 이러한 목적과 역할에 부합하도록 재편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지금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평가나 가치 판단은 우선 미뤄둡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이런 변화가 비단 오늘날만의 특징적인 현상일까요?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대학의 모습은 다분히 프로이센의 훔볼트식 근대 대학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 의미에 부합하는 대학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혹은 20세기 이후 등장한 미국식 대학의 모습이나요. 고등 교육기관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고대 희랍이나 로마는 물론 동아시아의 여러 사회들에도 대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교육기관들이 물론 있었습니다만, 오늘은 대학(university)이라는 오늘날의 이름과 그 이념이 발생한 유럽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일단 출발은 12세기입니다. 12세기 초 중세 유럽에 대학이 탄생합니다. 법학을 다루는 볼로냐 대학, 신학과 ‘기초 교양(liberal arts)’을 다루는 파리 대학, 의학의 몽펠리에, 그리고 왠지 모를 옥스포드입니다. 옥스포드 역시 기초 교양을 다뤘습니다. 이 기초 교양이라는 과목이랄까요, 학과명이랄까요, 오늘날 흔히 ‘자유 과목' 내지는 ‘자유 전공’, 혹은 ‘인문교양학과' 정도로 불리는 이 분과는 실은 풍부한 교양인의 양성이랄까, 혹은 전인교육의 이념이랄까 하는 그럴듯한 포장지와는 별 관련이 없었습니다. 중세 대학에서 기초 교양 과목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천문학, 기하학, 음악을 가리킵니다. 얼핏 뭔가 다방면에 걸쳐 많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처럼 그럴싸해보이는 조합이긴 합니다만, 실상은 초라한 조합입니다. 모여서 뭔가를 공부하거나 가르칠 수 있을 만한 과목이라고는 이 일곱 가지 영역이 전부였기 때문이지요. 로마와 희랍 세계의 붕괴 이후 12세기에 이르도록 유럽인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식했지요, 아주. 심지어 황제가 문맹인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게르만 대이동이 촉발한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 문맹률은 급속도로, 막대하게 증가합니다. 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요. 통계조차 남아 있지 않은 시절이지만 그래도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사료들은 있습니다.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를 대제도 문맹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 대제라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대제라고, 심지어 영국인들도 찰스 대제라고 부르는, 게르만 침략 후 산산조각 나다시피 한 유럽을 다시 통일시킨 바로 그 사람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을 수립한 오토 1세 또한 문맹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은 심지어 13세기쯤에 이르렀을 때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재판관이 문맹이었다는 기록도 심심찮게 남아 있습니다. 법을 읽을 수 없는 판관이라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모습입니까? 15세기 성직자들 중에서도 글씨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중세의 성직은 오늘날 일부 한심한 성직자들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 그냥 아무말이나 떠드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정한 법에 따라 사람이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모든 사회적 절차를 관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직책이었는데요. 그런데도 문맹이 절반이 넘습니다. 일단 이 정도로만 해둘까요, 그러니까 처음 생긴 대학이 일부 기술 학문과 교양 학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까닭은, 간신히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긁어 모아도 겨우 그 정도가 전부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세 대학은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서 대학은 건물이 없습니다. 이상하지요? 오늘날 대학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대학이 위치한 공간,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만한 물리적 장소, 즉 건물과 토지의 집합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파리도, 볼로냐도, 옥스포드도 학교 건물이 없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 옥스포드 시의 사정은 오늘날에도 거의 비슷합니다. 시가지 곳곳에 대학 시설이라고 할 만한 건물이 흩어져 있어 마치 시 전체가 하나의 학교인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띠고 있지요. 대학에 왜 건물이 없었나 하니 애당초 대학이라는 단체 자체가 학생 조합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약간 기묘한 모순이 숨어 있는데, 닭과 달걀의 사정과도 비슷합니다. 이를테면 학생이라는 신분은 학교에 의해 만들어지고 학교가 보장하는 신분이지만, 학교라고 할 만한 기관이나 단체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공부하겠답시고 모여 있는 이 사람들을 딱히 학생이라고 규정할 만한 근거를 찾기도 좀 애매한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어쨌거나 핵심적인 변화는 이겁니다. 사람들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뭔가 새로운 걸 배우겠다고 이동도 편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살던 마을을 떠나 낯선 곳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이들은 대개 젊은이들이겠지요,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려고 모였다!

모인 젊은이들은 서로 각자가 알고 있는 것들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그래봐야 대체로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러니 뭔가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지요. 돈을 모아 장소를 빌리고 사람을 수소문해 선생을 초빙합니다. 돈이 없으면 하숙하던 다락방에서 모이기도 하고 광장이나 언덕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안 될 게 뭐 있습니까, 이미 새로운 뭔가를 배우려고 혼자 고향을 떠나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렇게 자유롭게 학생들이 모이고 강의가 이루어집니다. 소문이 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유럽 전역에서. 대학이 본래 이런 곳입니다. ‘이런 곳’이라는 표현보다 ‘이런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국가나 기업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수 모임이나 재단 같은 것과도 거리가 멀고요. 자발적인, 이동하는 학생들의 모임이 바로 대학입니다. 뭔가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진 주제를 접할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움직입니다. 파리로, 볼로냐로, 몽펠리에로, 옥스포드로 유럽 전역에서 젊은이들이 이동합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아마 12세기 르네상스, 혹은 중세 해석자 혁명 따위로 불리는 중요한 운동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이슬람 세계에 보존되어 있던 희랍과 로마의 문헌들이 다시 유럽에 돌아올 수 있었는데, 아쉽지만 이 문제는 잠시 나중으로 미뤄야겠군요, 우리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농담이니까요. 어쨌거나 이 과정을 통해 유럽은 드디어 각성합니다. 철학이나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지식들을 대거 다시 발견합니다. 희랍의 문헌이나 <로마대법전> 따위의 책들도 이슬람 세계에서 다시 입수했고요. 인류사에서 이 발견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굳이 이 자리에서 상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인류사에서 공식적으로 ‘혁명'이라는 사건명을 가진 다른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떠올려 보신다면 그 무게 만큼은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대학이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 학생들이,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그럼 이 상황은 어땠을까요? 배우지 못한 시골 출신 남성들이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도시에 모인 상황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일단 술을 많이 마십니다. 대학의 초기에 정기적인 교육 과정이라든지 상설 강좌라든지 이런 게 있을 리가 없으므로 할 일은 없고 남는 시간은 많았겠지요, 젊은이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고 마을 여자에게 집적대고 행패를 부리고 걸핏하면 분란을 일으킵니다.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무기를 휴대하고 다녔고 이따금 술집을 습격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옥스포드의 소란은 오늘날까지도 악명이 높지요. 옥스포드 시에 대학이라고 할 만한 모임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소위 ‘가운을 입은 사람들(gowner)’이라고 불리는 옥스포드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towner)’ 사이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는데, 분쟁 과정에서 학생들이 살해 당하거나 마을 어린이가 죽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피운 소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막걸리를 사발 채 주고받으며 마시거나 하는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랄까요. 여담이지만 이 싸움을 피해 동네를 옮긴 교수와 학생들이 만든 학교가 바로 케임브리지입니다. 대학 간 라이벌 관계의 시초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래서인지 오늘날까지도 학생들은 대학에 지원할 때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둘 중 한 곳에만 지원할 수 있습니다.

다시 12세기로 돌아갑시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였으니, 제일 먼저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 마련입니다. 공부를 하겠답시고 새로운 도시를 찾았지만 아무래도 같은 말을 쓰는 사람, 대체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기가 쉽겠지요. 강의를 수소문하는 것이나 선생을 초빙하는 것 등 기본적으로 모든 일을 여러 사람이 함께 수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무리짓기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같은 고향 출신들끼리 모입니다. 우리말로 ‘동향단’이라고 번역하는 ‘나티오(natio)’가 결성된 것이지요. (국가, 국민을 가리키는 그 ‘nation’과 정확히 같은 어원을 가진 표현입니다.) 파리 대학을 예로 든다면 이곳에는 프랑스, 노르망디, 피카르디, 영국까지 이렇게 네 지역의 동향단이 존재했습니다. 이 조합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바로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즉 유니버시티(university)입니다. 대학이라는 말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지요. (보편성이니 세계니 우주니 하는 것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물론 이 이후에도 대학은 흥미롭고 중요한 변화를 겪으며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만, 일단 이 정도에서 멈추도록 합시다. 아직 이 ‘조합’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대학에 도달하기까지는 제법 많은 우여곡절이 남았습니다만 언젠가 이 문제를 다시 다룰 시간이 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농담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대학의 기원을 짧게나마 소개한 까닭은 오늘날 사람들이 많은 경우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거의 모든 일들도 나름의 기원과 변천과 맥락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당대를 이루고 있는 어느 하나 예외가 아닙니다. 굳이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낡은 겪언에 기대지 않더라도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힘들의 기원과 변천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당연하게도 웃음과 농담 역시 마찬가지고요.

… (후략)

2019. 12. 5. / LG Social Cam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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