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프라하, 모두가 노동 계급의 승리에 도취되었던 그 시절, 스무 살 청년 루드빅은 같은 학교 다니는 마르케타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루드빅의 표현에 따르면 시덥잖은 농담을 즐기는 치명적인 성향을 가진 루드빅 자신과 달리 그녀는 농담이라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웬만큼 재능도 있고 총명한 데다 젊고 예쁜 그녀에게 있어 이런 특징은 결점이라기보다 매력에 가깝게 보입니다. 루드빅 말고도 몇몇 남학생들이 그녀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무엇이든 잘 믿는 능력을 타고난 것만 같습니다. 그럭저럭 당시의 시대 정신에 잘 부합하는 특징 같기도 하군요. 그녀는 어떤 것의 ‘너머'를 전혀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저 사물 자체를 볼 뿐이었습니다. 예컨대 식물학에 대한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지만 학교 친구들이 하는 우스운 이야기들은 무슨 영문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루드빅은 장난기가 많은 편이었지만 그가 하는 장난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의 농담은 일종의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해학이나 아이러니를 허용하지 않았으니까요. 급우들 사이에서 루드빅의 농담은 ‘개인주의의 잔재’ 내지는 ‘혁몀에 대한 관심 부족', ‘타인에 대한 냉담함’, ‘경명적인 지식인의 냉소’ 등으로 보일 때가 많았지요. 주변의 숱한 주의 끝에 루드빅은 남들 앞에서 미소를 지을 때 조금은 조심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성품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웃음을 참을 때면 어떤 희미한 균열을 느끼는 정도였지요. 

 

방학을 한 달쯤 앞둔 루드빅은 마음이 급해집니다. 생각 만큼 마르케타의 환심을 얻는 일에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루드빅은 적극적으로 마르케타에게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모든 시대의 스무 살짜리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바보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사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요. 짐짓 더 나이 든 척, 성숙한 척,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는 척, 세상 물정에 밝은 척, 남들과 달리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척하면서, 농담이 그런 거리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마르케타 앞에서 재치를 뽐내기 위해 열심이었지요.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루드빅 또한 다양한 인간 관계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여러 모임에서 루드빅은 진지하고 열성적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제멋대로 굴며 짓궂은 태도를 드러냈고 마르케타 앞에서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냉소적이고 궤변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나이 든 루드빅은 젊은 시절 마르케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며 젊은이에게는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중요한 나머지 정작 사랑의 대상은 사랑 속에서 증발해 버리고 만다고 회상합니다.)

 

방학이 다가옵니다. 마르케타는 방학 중 두 주 간 당이 주관하는 교육 연수에 참가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연하게도 루드빅에게는 전혀 달가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기껏 학교나 다른 친구들의 방해가 없는 방학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와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궁리 중이었는데,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수포로 돌아갈 형국입니다. (당연하게도 요즘처럼 전화든 인터넷이든 서로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으니까요.) 내심 서운한 마음을 마르케타에게 내비치기도 하지만 그녀는 전혀 공감하지 않습니다. 루드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연수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군요. 자, 방학이 되고 마르케타는 떠났습니다. 루드빅은 상심에 빠졌고, 원망 섞인 마음으로 마르케타를 그리워 합니다. 그러던 차에 마르케타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편지를 열어 보지만 편지의 내용은 그야말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편지는 15분 간의 아침 체조, 이런저런 보고와 토론회, 노래와 대화까지, 그녀가 겪는 모든 것을 설명하며 만족과 동의를 표현하고 있었으니까요. 교육이 효과가 있었는지, 희망과 확신이 찬 어조로 서유럽에서의 혁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견도 덧붙여 밝히고 있군요.

 

루드빅도 뭐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의 정책이나 사회주의 혁명의 노선, 혁명의 전파까지 어느 하나 동의하지 않는 것이 없군요. 루드빅이 마르케타의 편지에서 동의하지 않은 것은 딱 하나, 바로 자신은 그녀를 애타게 그리워 하고 있는데 그녀는 만족스럽고 즐겁게 지낸다는 사실입니다. 심술일까요, 상심한 루드빅은 엽서를 한 장 사서,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충격을 주고 혼란에 빠지게 할 작정으로 이렇게 씁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도발적인 루드빅의 엽서에 마르케타는 무미건조하고 아주 짤막한, 형식적인 내용의 엽서를 답장으로 보내왔고, 그것이 마르케타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루드빅이 몇 차례 더 편지를 보냈지만 마르케타의 답장은 돌아오지 않는군요. 갈수록 절박해진 루드빅은 나중에는 거의 자신의 연정을 호소하며 서글픈 열정을 토로하는 편지들을 보냅니다만 마르케타로부터는 여전히 대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 (중략) … 

이번에는 장소를 옮겨 볼까요, 1935년 5월 빈입니다. 한 학자가 연단에 오릅니다. 유럽 학문의 위기’ 운운하는 강연의 제목을 보니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늘어 놓기 직전인 것으로 보입니다. 연사는 먼저 학문 일반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했고,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청중들에게 던집니다. 학문의 위기를 논하기에 앞서 학문이라는 게 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겠지요. 학문이란 무엇인가, 학문이 왜 필요한가, 무엇을 위해 학문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 따위를요. 그런데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질문이라는 것은 본래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입장이나 관심,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학문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인간이라면, 역시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 도마에 오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문제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먹는 것이나 입는 것? 권력이나 사랑의 문제?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잘 살아가는 것? 퍽 중요하고 심오한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죄다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무엇보다 인간적인 문제,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니까요.

 

인간적인 것이나 인간의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학문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모든 학문이 궁극적으로 문제시하는 것 또한 인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물음을 던집니다. 다른 대상과 자신이 어떻게 다른지 탐색하면서요. 연사는 인간이 가장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탐색하는 작업이 바로 철학이라고 규정합니다. 물론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탐색하고 규정하는가에 따라 인간 존재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그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스스로와 세계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탐색해 들어가고 어느 정도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는 인간의 위대함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사는 학문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이것을 곧 인간성의 위기로 읽어내는군요. 그가 제시하는 논리에 따르면 한 시대의 학문이 드러내는 것은 곧 인간의 위치와 성취를 확인하는 지표인 셈이니까요. 인간이 다른 대상에 대해 탐구하는 활동으로서의 학문이 근본적으로 인간 스스로에 대한 탐색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러한 학문 활동의 위기는 곧 인간 자신에 대한 탐색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자, 이렇게 모든 학문이 인간의 삶에 기반하고 있고, 따라서 인간 삶의 모든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 인간은 이러한 탐구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인 세계에 대해 자유롭게 어떤 태도를 취할 수도, 그 세계를 능동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봄직 합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의 세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요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에 축적된 시간과 그에 상응하는 수많은 의미들로 이루어져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사는 이어서 학문의 모범은 정신적이고 역사적인 것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리와 규범과 이상을 그려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학문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이성과 이성을 지닌 인간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고 확인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강연의 제목이 ‘인간의 학문'이 아니라 ‘유럽 학문의 위기'라는 점을 벌써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강연자는 우선 방금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은 논의의 전개 과정에서 그것을 ‘유럽의 학문’으로 한정하고 있거니와, 또한 그것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자신의 진단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증주의가 유럽 학계의 지배적 경향을 차지하고 있는데,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확인 과정이 학문의 궁극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탐구 대상의 역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까지 함께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서 설정한 학문과 인간의 관계에 따라 학문 활동의 특징이 이런 방식으로 한정된다면 학문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특징에도 뭔가 변화가 생기겠지요. 학문이 감각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할 때 그러한 세계에서 성립하는 인간의 위치는 그저 세계를 감각하는 존재로 국한됩니다. 또 인간 또한 세계를 이루는 감각들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이렇게 유럽 학문의 위기는 곧 인간이 처한 위기 상황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강연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는군요. 강연자는 이 위기의 본질을 명확히 밝히고 타개하기 위해 르네상스를 비롯해 갈릴레이나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다시 폭넓은 논의를 전개하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슬슬 빠져나오도록 합시다. 연사가 말하는 ‘유럽'은 고대 희랍 문명의 탄생과 함께 출발해 차츰 지리적으로 유럽 대륙 바깥까지 확장한 정신적 동질성을 의미합니다. (역시 처음은 언제나 고대 희랍이군요.) 유럽 정신의 태동으로 이 시기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 하니, 확인할 수 있는 역사 상 처음으로 인간이 자신의 작은 경험 세계를 초과하는 ‘세계 전체’라는 이념을 발명했고, 그것을 풀어야 할 수수께끼, 즉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수수께끼를 푸는 목적이 실용적인 목적이나 실제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앎에의 열정이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지요. (이 대목에서 철학이 문자 그대로 앎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은 때로 우울한 날의 희망이 되거나 누군가의 손에 들려 삶의 무기로 휘둘릴 수 있을지언정 언제나 그것은 앎과 사랑 사이에, 오직 그 사이에서만 성립합니다.)

 

유럽 학문과 인간성의 위기를 단호하게 비판했던 사람은 현상학으로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관문을 개척한 후설입니다. 후설이 연단에 올라 유럽 학문의 위기를 설파했던 시기는 파시즘의 대두와 압도적인 기술 문명의 폐해에 대한 공포가 퍽 만연하게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으로 비춰 본다면 당시의 기술 문명이라는 것이 새삼 뭐 그리 파괴적일 수 있겠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래 어떤 대상에 대한 예민함은 그것의 세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가 아닌 그것이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가장 날카로운 법입니다. 예컨대 시끄러운 공사장 소음 속에서 몇 사람이 고함을 더 보탠들 말소리도 잘 분간하기 어렵겠지요. 반면 고요 속이라면 옆 사람의 작은 숨소리 또한 귓전에 생생하게 와닿을 겁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쿤데라는 후설에 엄중한 비판에 슬그머니 끼어들어서는 후설이 간과한 사실을 슬쩍 지적합니다. 후설이 학문의 본질로 규정했던 어떤 활동이 실은 꼭 학문 영역에 국한되는 활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하면서요. 쿤데라에 따르면 유럽 학문의 위기, 인간성의 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후설이 결정적으로 놓친 것이 있는데, 바로 후설이 위기의 배후로 지목한 근대 정신이 데카르트와 함께 시작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세르반테스로부터 출발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후설의 지적처럼 철학이나 과학이 어느샌가 인간의 존재를 망각한 것처럼 보이고, 또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치더라도, 이 망각된 존재로서의 인간, 혹은 인간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사고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으니 바로 세르반테스와 함께 시작한 유럽의 예술, 즉 소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20세기 들어 학문과 인간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극복을 모색한 사람은 비단 후설 혼자만이 아닙니다. 예컨대 하이데거에게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해결 과제이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쿤데라는 이 문제를 대체로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것 같군요. 그에 따르면 유럽의 근대, 인간성의 상실과 망각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바로 그 시기에 소설은 인간 실존의 중요한 주제들을 계속해서 포착하고 제시해 왔습니다. 쿤데라에 따르면 변화하는 시대상에 따라 소설은 나름의 방식과 고유한 논리를 찾아 실존의 상이한 면모들을 밝혀 왔습니다. 세르반테스와 함께 소설은 고정된 관성의 세계로부터의 일탈, 즉 모험의 의미를 물었고, 새뮤얼 리처드슨과 함께 인간의 내면, 즉 감정의 은밀한 움직임을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발자크는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역사에 뿌리내린 인간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플로베르와 함께 소설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합니다. 톨스토이를 통해 소설은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어김없이 개입하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조명하기 시작했고, 프루스트를 통해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들이라는 시간성을, 조이스를 통해 언제나 흐르는 것, 유동하는 시간으로서의 현재를 탐색했습니다. 맞군요. 늘 그랬습니다, 소설은. 인간사의 미지의 영역과, 혹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영역을 찾아내고, 탐사해 왔지요. 소설의 태동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처럼요.

 

소설의 발견 전체를 다루는 것은 역시나 우리의 시간을 초과하는 일일 테니 감동에서 잠시 빠져나와 웃음이라는 문제로 돌아옵시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제까지 쓴 소설들의 제목을 죄다 ‘웃음과 망각의 책'으로 바꿔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을 정도로, 쿤데라에게 웃음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개념입니다. (단순히 ‘개념'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상황, 사건, 행위… 입니다.) 우리가 방금 살펴본 <농담>이나 <우스운 사랑들>처럼 웃음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단어들을 소설의 제목으로 사용한 경우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의미의 축제>처럼 작품의 주제가 아무래도 웃음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경우도 빈번하지요.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뛰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웃음이 있겠고 뛰어 놀고 있는 아이의 웃음이 있겠지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의 웃음이 있는가 하면 옆에 누가 있든 남들이 뭘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깔깔대는 한 무리 학생들의 웃음이 있을 겁니다. 이런 웃음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발생하는 냉소나 비아냥도 어쨌든 웃음이긴 하겠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식으로 묻지마 행복론을 전파하는 작자가 아닌 이상, 쿤데라가 말하는 웃음이 그저 행복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서의 웃음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쉽게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에코가 발표한 소설 <장미의 이름>은 웃음의 본질과 근거를 다루는 두 번째 <시학>을 둘러싼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수도원의 서가에서 웃음에 대한 책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여기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눈 먼 신부 호르헤가 벌이는 연쇄살인극이 이야기의 골조를 이루고 있지요. (눈 먼 신부 호르헤라니, 얼마나 유쾌한 오마주입니니까. 독서 살인마 호르헤라니요.) 물론 두 번째 시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에코의 작중 설정에 불과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이 가진 효과의 본질을 공포와 연민의 감정으로 규정했던 것처럼 농담과 웃음의 근거에 대한 탐구 또한 그와 같은 수준의 통찰과 분석의 대상으로 놓였다면 퍽 흥미로운 내용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쯤은 얼마든지 가능할 겁니다. 애석하게도 수도원이 몽땅 잿더미가 된 바람에 이 책은 이제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았군요.

 

그렇다면 쿤데라가 말하는 웃음은 무엇일까요? 그가 한 친구에게 들은 실화를 소개하는 장면을 살펴봅시다. 이야기에 따르면 프라하의 한 엔지니어가 런던의 학술 대회에 초청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런던으로 가서 학회에 참석한 다음 프라하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지 몇 시간이 지나 그는 사무실에서 신문을 펼쳐 읽었는데, 신문에는 런던의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체코인 엔지니어가 서방 언론에 사회당을 비방하는 성명을 발표하고는 귀국하지 않고 영국으로 망명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당시 체코 사회에서 이러한 비방 성명과 망명 신청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어서, 수십 년의 옥살이쯤은 각오해야 하는 중범죄에 해당했습니다. 기사를 읽던 엔지니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신문에 나온 그 엔지니어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사무실에 들어서던 엔지니어의 비서가 그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맙소사! 여기에 다시 돌아오시다니요!”

 

이런 상황에서 엔지니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서둘러 신문사 편집국으로 달려가 편집장을 찾았습니다. 그를 만난 편집장은 진심으로 미안해 하면서도, 자신도 이번 일로 인해 정말 골치 아프다, 자신이 편집장이긴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도 속수무책이다, 그 기사의 내용은 내무부에서 직접 보내온 것이라고 그에게 대답합니다. 그리하여 엔지니어는 이제 내무부를 찾아갑니다. 내무부 사람들은 뭔가 착오로 생긴 일이 분명하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내무부에서 뭔가 직접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고도 대답합니다. 런던 주재 대사관의 정보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받았다는 겁니다. 엔지니어는 여기저기를 통해 정정 기사를 요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정정 기사는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착오가 있었다 것은 분명하니까 아무 탈 없이 전처럼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엔지니어의 생활은 이제 조용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금세 자신이 은밀하게 감시당하고 있고, 전화를 도청당하고 길에서는 미행당한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지요. 이제 그는 잠도 편하게 잘 수 없습니다.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는군요. 결국 더 이상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자신의 조국을 떠나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이리하여 진짜 망명자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의 어떤 비평가 또한 이 장면을 각색해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남한의 정치학자 K는 북한에서 열린 남북 교류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막 돌아온 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펼쳐든 신문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발견한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신문 기사는 정치학자 K가 북한에서 남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는, 북한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연구실에 들른 조교가 K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교수님, 어떻게 여기에!”

 

K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찾아가 항의합니다. 편집국장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만 이번 경우만은 정정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정원에 가보길 권합니다. 국정원은 뭔가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당장은 어떠한 조처도 취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별일 없을 테니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으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K는 조용히 지낼 수가 없습니다. 도청과 미행이 끊이지 않는 악몽 속에 시달리다가, K는 마침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합니다. 오보가 결국 사실이 되고 만 것이지요.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있습니다. 뜻을 그대로 옮기면 ‘카프카적인’, ‘카프카스러운' 정도가 되겠지요. 위의 두 이야기가 바로 전형적인 카프카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더 떠올릴 수 있어요. 엔지니어는 교수나 외교관으로 바뀔 수 있고 내무부는 국정원이나 공산당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요. 이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어떤 뼈대가 바뀌지 않는 한 나머지 역할들은 얼마든 다른 이름으로 교체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카프카가 남긴 글을 비교적 풍부하게 확인할 수 있는 까닭은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부탁과 달리 카프카에게서 전달 받은 원고를 죄다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요양원에서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줄 것을 부탁했는데, 브로트가 이를 들어주지 않은 사실을 잘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그가 카프카의 소설을 발표한 뒤에 차례로 보인 행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브로트는 <소송>과 <성>을, <아메리카>로 이름을 바꾼 다음 <실종자>를 출판했고, 카프카의 단편들을 따로 모아서 출판했고,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들을 출판했고, 야누흐의 글에 서문을 붙였고, <성>과 <아메리카>를 극으로 만들었고, <프란츠 카프카 전기>, <프란츠 카프카의 신앙과 교시>, <길을 가리키는 자,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 작품에서의 절망과 구원>이라는 네 권의 해설서를 출간했고, 자신과 카프카를 차명의 등장 인물로 내세운 <사랑의 마법 왕국>이라는 소설을 집필했지요.

 

브로트의 견해에 따르면 카프카는 무엇보다 종교 사상가입니다. 물론 카프카가 자신의 철학이나 종교적 관념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카프카의 철학을 그의 작품과 그가 남긴 잠언들, 일기와 편지들은 물론 그의 생활 방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브로트는 말합니다. 브로트에 따르면 카프카의 잠언들은 개인의 신앙과 생활을 바꾸려는 엄격한 호소를 개진하고 있으며, 그의 소설들은 바른 길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형벌을 묘사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쿤데라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이것은 터무니없는 해석일 뿐더러 부당하고 형편 없는 관점입니다. 브로트가 카프카의 부탁을 무시하고 (물론 브로트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습니다만) 카프카의 원고를 출판했다는 사실처럼 카프카가 자신의 <소송>의 첫 장을 친구들에게 읽어주었을 때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웃음이야말로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적인 웃음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갖습니다. 소설에 있어 ‘카프카스러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소설의 안팎으로 지극히 소설적인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한편으로 이 웃음 전혀 얼토당토하지 않은 상황 전개에 따른 실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 와중에 실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어떤 요소들이 놀랍도록 현실과 유사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소설 바깥의 현실에서 정작 이 웃음은 소리 없이 증발한 나머지 카프카의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는 괴이한 우화 작가로 각인되고 말았으니까요.

 

엉터리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 친구의 작품을 출간하려 드는 순간 그는 시인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됩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피카소의 소개자가 입체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화가라고 상상해보세요. 그가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 뭐라고 소개할까요? 아마도 브로트가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요? “피카소의 작품들은 바른 길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겪게 될 끔찍한 형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습니다만, 그것이 피카소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다, 혹은 그런 피카소에 대한 그런 해석도 얼마든지 온당하다고 주장한다면 실소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전혀 무의미한 어떤 것이 우리 운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맥빠지게 만들지요. 하지만 예기치 않았던 어떤 무의미의 발견은 희극성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오늘 살펴본 몇몇 장면들처럼요. 어쩌면 지난 시간 함께 다룬 철학적 농담, 즉 일종의 아이러니와 마찬가지로 소설이 들려주는 농담 또한 단순히 웃기지만은, 혹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딘가에 외따로 떨어진 웃음이 아니라 가시성 이면에 자리한 웃음을 알아차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농담의 정신이자 성숙한 지성의 특징이겠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019. 12. 12. / LG Social Cam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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